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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런웨이 맨 앞줄 대신 방구석 1열!

등록 2020-10-15 14:43수정 2020-10-15 14:53

20일부터 2021 봄·여름 서울패션위크 열려
코로나19 여파로 ‘디지털 런웨이’ 첫 시도
45개 브랜드 온라인 영상으로 ‘랜선 관객’ 만나
지난 8일 경기도 파주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빅팍’의 런웨이 필름 촬영 현장. 사진 빅팍 제공
지난 8일 경기도 파주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빅팍’의 런웨이 필름 촬영 현장. 사진 빅팍 제공

“레디 액션, 출발!” 지난 8일 오전,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한 스튜디오. ‘2021 S/S 서울패션위크’의 피날레 무대를 장식할 디자이너 브랜드 ‘빅팍’의 런웨이가 열렸다. 빅팍의 무대는 25일 저녁 7시로 예정되어 있지만, 런웨이는 훨씬 앞당겨 차려졌다. 코로나19로 서울패션위크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진행하기로 결정되면서 미리 런웨이 영상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큐 사인이 떨어지자 세대의 카메라가 모델을 응시했다. 온통 하얀 배경의 촬영장 한가운데에 트레드밀이 놓이고 선풍기가 돌기 시작했다. 몽환적이고 무한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판타지라는 주제에 따라 트레드밀에 올라선 모델이 옷자락을 바람에 날리며 걸었다. “컷!” 소리와 함께 모델이 걸음을 멈췄다.

이날을 전후로 수도권 일대 곳곳에서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10월20일부터 6일간 열리는 서울패션위크는 교외의 스튜디오에서, 갈대밭에서, 박물관 마당 등에서 펼쳐진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온라인 영상으로.

내년 봄·여름 시즌 패션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이번 서울패션위크는 ‘디디피 디지털 런웨이’를 표방하며 비대면으로 열린다. 2014년부터 서울패션위크의 공식 패션쇼장이었던 디디피(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대신 디자이너들이 선택한 서울과 근교의 곳곳을 배경으로 런웨이가 연출된다. 촬영·편집을 거친 영상이 쇼 당일 온라인을 통해 공개된다.

이런 새로운 시도에 디자이너들은 활력을 얻는 듯했다. 지난 8일, 촬영 현장에서 만난 패션 브랜드 빅팍의 박윤수 디자이너는 “런웨이라는 게 오감을 느낄 수 있는 무대인데, 지난 시즌이 취소되면서 소비자나 바이어와 사진으로 만나는 통에 감정을 충분히 전하지 못해서 아쉬웠다”며 “코로나가 장기화하며 컬렉션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디지털 런웨이라는 새로운 제안이 반가웠다”고 밝혔다.

지난 6일 서울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진행된 ‘카루소’ 런웨이 필름 촬영 전 대기 중인 모델들. 사진 카루소 제공
지난 6일 서울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진행된 ‘카루소’ 런웨이 필름 촬영 전 대기 중인 모델들. 사진 카루소 제공

디지털 런웨이를 준비하는 과정은 기존의 런웨이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고 한다. 박 디자이너는 “대면이냐, 아니냐의 차이이지 디자이너가 고민하고, 새로운 제안을 하기 위해 옷 만들며 준비하는 과정은 똑같았다”고 말했다. 한편 기존 패션위크를 준비할 때와 달라진 시차는 적응해야 할 요소였다고 말했다. 박 디자이너는 “평소 같으면 관객을 만나는 쇼 직전이 제일 바쁘다. 이번엔 아직 쇼가 펼쳐질 날이 한참 남았는데, 왜 이렇게 바쁘지 싶은 거다. 촬영 현장에 앞서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한다. 관객은 영상을 편집한 다음 만나게 되니 두 번 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광효 디자이너가 이끄는 브랜드 ‘카루소’ 또한 달라진 런웨이 현장을 전했다. 박성목 카루소 마케팅디렉터는 8일 전화통화에서 “쇼 현장보다 영상이 좀 더 쉬울 줄 알았는데,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 6일 서울 중구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비밀의 화원’을 주제로 런웨이 촬영을 진행한 카루소는 디자인팀, 촬영팀, 모델 등이 아침 8시부터 스탠바이를 시작해 10시간 넘게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박 디렉터는 △약 8분 분량의 영상에 △20~30벌의 의상이 잘 보일 수 있도록 △너무 추상적인 이미지보다는 옷의 세부적인 부분과 전체를 함께 볼 수 있게 제작해달라는 서울디자인재단의 가이드에 따랐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지 중심의 광고처럼 보이지 않게, 그렇다고 단순한 캣 워크(패션쇼 모델들이 걸어가는 좁은 통로) 동영상 같지 않게” 촬영을 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전미경 서울패션위크 총괄 감독은 “런웨이는 ‘12분의 드라마’라고 할 정도로 쇼 현장의 음악, 열기 등으로 오감을 자극하는데, 영상은 그보다 짧은 편이 오히려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영상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데, 정글 같은 온라인에서 국내외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지루하지 않은 영상을 준비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모델들도 새로운 경험이 낯설면서도 즐겁다는 반응이었다. 빅팍 런웨이 현장에서 만난 모델 이수민씨는 “코로나19로 업계가 많이 위축되어 있는데, 패션위크가 진행되는 것 자체가 다행”이라고 말했다. 기존 쇼와 비교하면 “바쁜 백스테이지 분위기 등 생동감은 쇼가 벌어지는 현장에서 더 많이 느낄 수 있지만, 디지털 런웨이는 하나하나 촬영하며 더 세심하게 옷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지난 9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그리디어스’ 런웨이 필름 촬영 현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델들. 사진 그리디어스 제공
지난 9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그리디어스’ 런웨이 필름 촬영 현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델들. 사진 그리디어스 제공

디지털을 통해 더 많은 관객과 만나다 보니 디자이너들은 대중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듯하다. 빅팍의 박 디자이너는 “런웨이는 멋있게 꾸면서 마치 걸어 다니는 예술작품처럼 보이게 했는데, 이번에는 더 많은 대중을 관객으로 만나면서 덜어낼 부분은 덜어내고 쉽게 다가가려 애썼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디자인재단 쪽에서도 이번 패션위크에 대해 “국내외 유명 인사와 해외 의류 구매자가 차지하며 패션쇼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프론트로우(런웨이 맨 앞줄)가 사라지고, 전 세계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패션쇼를 즐길 수 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코로나19로 다 함께 어려움을 겪는 이 상황을 함께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디자이너도 있었다. 지난 9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스튜디오에서 런웨이 촬영을 한 브랜드 ‘그리디어스’의 박윤희 디자이너는 “천국으로 가기 전, 마지막 아홉 번째 계단인 ‘클라우드 나인’(행복의 절정)을 영상으로 표현했다. 매일 마스크를 끼고 다녀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지금의 상황이 전 세계적 위기이자 슬럼프라면 이제 어려움을 이겨내고 좋은 일이 올 거라는, 긍정적인 것을 생각해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콘셉트를 설명했다. 그래서 그리디어스의 런웨이 영상에서 모델들은 춤도 추고 사선으로 걷기도 한다. 박윤희 디자이너는 “인생은 직선도 있고, 사선도 있고 여러 방향이 있지 않나. 이렇게 간다고 놀라지도 말고, 당황하지도 말자는 뜻”이라고 전했다.

‘빅팍’ 런웨이 촬영 현장에서 모델과 스태프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 빅팍 제공
‘빅팍’ 런웨이 촬영 현장에서 모델과 스태프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 빅팍 제공

이번 서울패션위크에는 디자이너 45명이 참여한다. ‘서울컬렉션’에 포함된 35명의 디자이너가 꾸린 런웨이와 신진 디자이너 10명으로 구성된 ‘제너레이션넥스트’ 무대를 온라인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오프닝 무대를 여는 ‘올해의 명예 디자이너’ 지춘희의 <미스지컬렉션>만 당일 서울 동대문구 디디피에서 무관중 무대로 생중계한다. 지난 시즌이 취소되며 ‘100벌 프로젝트’를 펼쳤던 모델 한혜진과 그가 출연하는 방송 <나 혼자 산다> 출연진들이 이번 시즌 100벌 프로젝트에 참여한 영상도 관객들과 만난다. 쇼가 끝나면 매일 밤 9시부터 그날 무대에 오른 의상을 판매하는 라이브 커머스 쇼도 열린다. 업계 관계자뿐만 아니라 일반 고객도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구매할 수 있다.

서울에 앞서 런던, 밀라노, 파리, 뉴욕에서도 코로나19의 여파로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패션쇼가 열렸다. 세계적인, 혹은 어쩔 수 없는 추세인 셈이다.

그래서 업계 사람들은 이번 경험을 통해 패션 산업에서 작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박윤수 디자이너는 “오늘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초석이라 생각한다. 가보지 않았던 길이어서 상당히 어색하긴 하지만, 이런 경향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패션 관련 미디어 콘텐츠를 기획하는 와이지케이플러스의 최지은 본부장 또한 “패션 런웨이 필름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겨난 셈이다. 브랜드는 한 시즌을 기록물로 남길 수 있게 되었고, 관객 입장에서는 하이엔드 브랜드를 좀 더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가 얼렁뚱땅 가져다준 또 다른 패션 민주화인 걸까. 일단 이번 서울패션위크의 최고 브이아이피(VIP)석, 방구석 1열에서 쇼를 감상해보자.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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