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내기들은 대개 회를 몰랐다. 시내에나 더러 있을 뿐 횟집 자체가 아주 드물었고, 있다고 해도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일식(日式)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말을 붙이고 장사하는 집들이 이른바 횟집이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그런 집을 ‘왜식집’(외식이 아니다)이라고 불렀으며, 매우 전문적인 기술자들이 요리했다.
일제강점기의 기술이 손내림되어 오는 경우가 흔했다. 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서울의 회는 대개 술집에서 제철에 한두 가지 안주와 같이 내는 식이었다고 한다. 주로 인천에서 오는 선어 종류였다. 내가 처음 먹은 회는 재수생 무렵 생기기 시작한 ‘아나고’(붕장어)였다. 아마도 붕장어가 남도에서 물량이 어마어마하게 잡힐 때였고, 산 채로 서울까지 수송해도 끄떡없는 녀석들의 생명력 덕이었을 것이다. ‘짤순이’로 돌려서 기름기를 빼고 회로 냈으며, 한창 유행하던 역돔이니 향어니 하는 민물고기 회도 같이 팔았다. 역돔은 말이 돔이지, 틸라피아라는 남방계 민물생선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우리 집에서 회를 뜰 때가 있었는데, 초겨울쯤 오징어회였다. 땡땡 얼린 냉동 오징어가 동네 시장에도 나왔는데, 얼어 있어서 안심(?)하고 회로 먹었다. 요리법은 별게 아니다. 냉동 오징어를 손질하고, 조선식칼로 막 썰고 식초와 고춧가루, 깨소금으로 무친 것이었다. 비빔회 내지는 자작한 물회 같은 것이었는데, 친척 손님이 왔을 때 내는 술상의 안주였다. 그걸 옆에 앉아서 몇 점 먹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아, 날것의 맛이란 이런 것이구나!(이 대목에서 회 실컷 먹고 자란 해안 도시 출신들이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오징어는 정말 흔했고, 그만큼 쌌다. 요즘 연근해 어획량은 아마도 사십년 전에 견줘 10분의 1도 안 될 것이다. 분식집에서조차 실한 오징어볶음밥이나 짬뽕을 싸게 팔았을 정도니까. 마분지 씹는 것 같은 요즘 맛없는 오징어 넣은 음식을 보면 정말 옛 생각이 난다.
1980년대 후반부터인가, 산오징어회 붐이 대도시에 일었다. 오징어 수송 기술이 좋아졌던 까닭일 것이다. 10마리에 5천원이나 1만원 했다. 정말 쌌다. 서넛이 먹다가 남겼다. 요즘은 알다시피 금징어다. 그 오징어 맛을 잊지 못해서 간혹 집에서 회를 뜬다. 산 오징어는 살 데도 없고, 비싸다. 옛날 어머니처럼 시장에서 ‘죽은’ 오징어를 고른다. 이맘때가 좋다. 날씨는 선선해지고, 오징어는 제일 클 때다. 횟감은 살이 좀 두툼해야 씹을 게 있으니까. 아니, 이것 보쇼, 그냥 시장에서 산 선오징어를 회로 뜬다굽쇼? 그렇습니다. 회를 활어로만 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대신 싱싱해야 한다. 배를 갈랐을 때 간(내장의 대부분이 간이다)이 탱탱하고 냄새가 없어야 한다. 그러니까 잘 골라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주인은 이런다. “회로 먹는다고? 아 그거 보증 못 해요.”
그렇다. 보증 못 한다. 나는 해 먹는다. 우선 배를 갈라서 내장을 수습한다. 이건 국을 끓인다. 무 넣고 마늘 다져 넣어 끓이면 시원한 울릉도나 강원도 해안식 해장국이 된다. 맑게 끓여도 좋고, 고춧가루 풀어서 맵게 끓여도 맛있다. 오징어 다리는 회를 안 뜨고 이 국에 넣는다.
오징어 배 안쪽을 칼로 삭삭 긁어서 깨끗하게 만든다. 내장이 터져서 살에 누런 물이 들었다면 회로 뜨면 안 된다. 그다음에 껍질을 벗긴다. 싱싱할수록 껍질은 잘 안 벗겨진다. 주방용 휴지로 잡고 뜯으면 쉽다. 귀(실은 이게 지느러미다. 먹을 수 있는 모든 지느러미는 질감이 뛰어나다. 오죽하면 상어 지느러미가 최고의 재료이겠는가)도 껍질을 벗긴다. 이건 좀 어렵지만 최선을 다한다. 그래야 맛있다. 흐르는 물에 몇 번이고 씻는다. 신선한 바다 냄새가 난다. 청결한 행주나 주방용 휴지로 살점의 물기를 마르게 닦는다. 원하는 대로 회를 뜬다. 간장 고추냉이도 좋고 초장도 좋다. 된장에 참기름과 마늘 넣은 소스도 잘 어울린다. 산지에서 죽어서 하루쯤 걸려서 온 놈들이라 자연스레 숙성이 되어서 부드러우면서도 혀에 찰떡처럼 붙는다. 세로로 길게 썰어서 초장 소스로 회국수를 만들어도 끝내준다. 문자 그대로 오징어살이 국수처럼 보이는 거다. 물론 소면을 삶아서 같이 버무려 먹어도 맛있다. 산 오징어만 드신 분들은 이 ‘자연 숙성’ 오징어회 맛을 모른다. 다만, 정말로 오징어가 신선해야 한다. 산오징어회보다 더 귀한 횟감일지도 모르겠다. 일식집이나 이자카야에서 선어 상태의 오징어회를 꽤 낸다. 물론 갑오징어나 한치 같은 것인데, 우리가 많이 먹는 살오징어도, 선어인 것도 싱싱하면 회로 뜰 수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다. 쫄리면 오징어볶음이나 국을 추천한다.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