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이나 친구 만날 때 한잔하게 되면 결단의 순간이 있다. “회냐 고기냐.”
고기는 돼지냐 소냐, 아니면 닭에서 골라야 한다. 물론 더러는 양고기가 있긴 하지. 회도 대체로 뻔하다. 광어로 할 것인지 ‘광어 아닌 무엇’으로 갈 것인지 정하는 게 보통이다. 선어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활어회 먹는 문화를 바꿔보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활어만 찾는 문화가 회의 다양성을 해친달까, 그런 주장이었다. 심지어 한국은 생선의 신선도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눈앞에서 보고 고르는 활어만 찾는다는 말도 있다. 회는 숙성하면 더 맛이 좋아진다. 뭐 이런 얘기도 끌고 나왔다. 틀리지 않은 얘기지만, 초장 찍어서 먹을 때 생선 숙성도(감칠맛)가 그렇게 맛에 영향을 줄까 싶다. 내 생각인데, 활어는 활어대로 맛있다. 펄펄 뛰는 활어회가 어때서. 세계 어디서 활어를 이렇게 싸고 편리하게 회 떠서 먹을 수 있냐. 일본은 활어회 안 먹는다고? 천만에. 활어 판다고 자랑하는 선전 많이 봤다.
각설하고. 활어를 좋아하더라도 선어밖에 먹을 수 없는 생선도 많다. 등 푸른 생선이 거의 그렇고, 이른바 성질 급한 생선들은 선어 상태로 고른다. 갈치가 그렇다. 배 위에서 ‘유리 거울’처럼 반짝이는 갈치 낚시를 해서 바로 떠먹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 다른 생선도 대개 그렇지만 갈치도 클수록 비싸다. 손바닥을 갈치 몸통에 가로로 놓고 ‘몇 지’를 따진다. 손가락 몇 개 너비인가 보는 것이다. 보통 5지(폭 8㎝ 내외) 넘으면 큰 놈이다. 더러 7·8지도 나온다. 이런 건 마리당 10만원도 넘는다.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큰 갈치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이 있다. 내가 생조당원(생선조림당)이라는 걸 얘기했었다. 내 친구 당원은 입만 열면 이런 소리를 한다. “큰 갈치, 뱃살에 기름 오른 갈치 한번 실컷 조려 먹고 싶어.”
뱃살이 구분될 정도로 큰놈은 당연히 비싸다. 지방이 올라서 흐물흐물할 정도다. 검은 막이 있는 내장 쪽을 공략하면 당신은 선수다. 조림 국물에 적셔서 입에 가져가면 환상이다. 그런데 내 주머니는 얇다. 자, 팁을 드린다. 어중간하게 비싼 대자, 중자 건너뛴다. 자잘한 소자로 간다. 갈치는 굵어질수록 가격이 폭등하고, 가늘어질수록 말도 안 되게 싸진다. 박스당 40미(생선은 꼬리 ‘尾’자로 마릿수를 센다) 이하 갈치는 우리도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제주도 탑동이나 한림, 성산, 서귀포 어시장에 아침나절에 나가면 헐값에 구할 수 있다. 올여름에 제주 현지에서 40미 정도 되는 게 위판장 가격 10만원 밑으로 떨어질 때가 많았다. 50미, 60미는 더 싸다. 문제는 이 작은 갈치를 어떻게 먹느냐는 것. 조리거나 굽자니 가시가 많아서 인기가 없다.
우선 튀김을 고려한다. 갈치튀김은 갑 오브 갑이다. 정말 맛있다. 요리 좀 하는 선수들은 작은 갈치도 포를 뜬다. 얇은 살이 먹을 게 없으니 포 떠서 튀겨버린다. 튀김가루 묻혀서 튀기면 살살 녹는다. 포 뜨고 남은 뼈도 튀긴다. 바삭바삭한 게, 죽이는 술안주다. 튀김이 맥주에 잘 맞으니 온갖 튀김들이 맥주에 딸려 나오지만, 갈치튀김을 빼면 섭섭하다. 많이 사서 남는 건 냉동하면 된다. 냉동했다가 생각날 때 튀겨도 크게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자, 다음은 회다. 잔갈치를 회로 어떻게? 천만에. 나는 잔갈치 회가 더 좋다. 두툼한 갈치 회는 껍질이 질기다. 껍질 안쪽으로 살점을 떠내야 하는데 고난도 기술이다. 껍질이 보통 생선처럼 벗겨지는 어종이 아니어서 그렇다. 일반 횟집에 가 봐도 대개는 은분(은가루·비늘의 일종) 벗겨서 껍질째 회로 주더라. 그러니 질겅거린다. 어중간한 대갈치 회에 실망한다. 그러니 잔갈치가 낫다. 이른바 뼈째 썰기, 시중 언어로 세꼬시다. 껍질이 질기지 않아서 벗기는 수고 없이 그냥 썰면 된다. 내장과 머리, 꼬리만 손질하고, 은분 차분히 긁어내고 뼈째 썰어버린다. 손질 후 살짝 얼렸다가 썰면 좋다. 지느러미는 가위로 자르는 게 편하다. 잔갈치여서 등뼈도 잘 씹힌다. 참기름 넣은 막장이나 초장 다 좋다. 미나리를 송송 썰어서 같이 내고, 물미역 있으면 싸먹어도 맛있다. 진짜 별미다. 선어회가 이런 거다. 서울에 이걸 파는 집이 없는 것 같다. 뼈째 썰기 한 건 대개 동해안에서 오는 물가자미류가 인기 있더라. 왜 잔갈치는 그렇게 안 파는지 모르겠다. 정말 맛있는데.(나만 먹겠다)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