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살아낸 것만 해도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그저 잘했다고 인사를 주고받는 2020년의 마지막 목요일. ESC와 함께한 필진과 기자들이 준비한 ‘위로 단어장’이 매일을 지탱하게 한 소소한 위안거리를 전한다. 올 한해를 돌아보는 서른한명의 짧은 글과 그림을 알파벳순으로 모았다. 걷거나 뛰는 기쁨,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빚은 소란, 떨어져 있어도 연결되는 방법과 새로 찾은 유대감 등 일상을 발견하고 탐험하는 저마다의 기술이 가득하다. 각자에게 힘이 되어준 무언가를 함께 떠올려 주시기를.
정리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Homemade recipes 집밥 오늘도 내 머릿속엔 오늘의 레시피가 있다. 웍(중식 프라이팬)에 달달 볶은 마늘이 짙은 갈색으로 변하면 얇게 썬 양파를 넣고 소금과 후추를 뿌린다. 갈색으로 변한 양파의 숨이 살짝 죽을 때쯤 손질한 새우를 넣는다. 새우가 완연한 붉은 빛을 띠기 전에 준비한 차돌박이와 얇게 썬 청양고추를 넣고 적당히 볶아낸다. 냉장고를 털어 적당히 버무린 이 정체 모를 음식이 오늘의 밥반찬이 될 것이다. 이전에도 요리를 하긴 했지만, 그건 주말에나 하는, 또는 특별한 손님을 위한 요리였다. 과거 아내와 내가 집에서 끼니를 ‘해결’할 때면, 즉석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레토르트 국의 비닐을 뜯어, 조리된 냉동식품을 반찬 삼아 후루룩 뚝딱 해치우곤 했다. 이젠 풀타임 정규 집밥 지킴이가 된 나. 업무하는 와중에도 나의 메모리 한구석에는 우리 집 냉장고의 재고를 관리하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 있다. 냉장고에 무슨 재료가 있었고 언제까지 먹어치워야 하는지를 항상 체크한다. 그러다 그 재료들로 할 수 있는 기막힌 조합이 떠오르면 대단한 레시피라도 발명해낸 듯 환호를 지른다. 닭다리살을 직접 만든 고수 페스토에 이틀 동안 재워 굽기도 하고, 간 양파에 재운 양갈비를 와인에 졸여내기도 했다. 내가 그려낸 그림대로 요리가 나오면 사진으로 저장했다. 저장만 했지, 그 어디에도 올리진 않았다. 자랑을 해버리면 어쩐지 흡족함이 달아날 것 같아서였다. 2020년은 팬데믹의 아비규환 속에 우리 부부가 집밥을 열심히 직접 해 먹기 시작한 첫해로 기억될 것이다.
박세회 (<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Ice cream 아이스크림 냉동실이 고장 났다. 남편이 주섬주섬 내용물을 꺼낼 때만 해도 더한 비극은 예상치 못했다. “냉기 순환이 문제네. 좀 비워보자.” 20분 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내 ‘최애’ 아이스크림 ‘칙촉이 퐁당 위즐’이 실온에서 죽사발 돼 있었다. 쫀쫀하고 탐스러운 결기가 사라진 채 맛대가리도 멋대가리도 없이 푹 퍼진 모습이란! 아, 융통성 없는 인간. 하고많은 냉동식품 중 왜 이거였니. 꺼낼 거면 멸치나 김을 꺼냈어야지. 말잇못…피꺼솟!!!(말을 잇지 못한다…피가 거꾸로 솟다) 그날 밤 나는 오열했다. 칙촉이 퐁당 위즐.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초 운명같이 출시된 찐 초콜릿 아이스크림. 꾸덕꾸덕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며, 고급 초콜릿 브랜드급 밀도와 극강의 단맛을 자랑하는 내 ‘최애템’. 처음 이걸 먹자마자 생각했다. ‘하늘이 나를 위해 내린 선물이구나!’ 그렇게 냉동실에 쟁였고, 주 3회씩 먹었다. 피로한 하루를 끝낸 뒤 어슴푸레한 스탠드 밑에서, 뜨거운 물이 찰랑대는 욕조에서, 넷플릭스 앞에서 희희덕대면서. 쫀득한 브라우니와 초코칩을 씹는 순간 급등하는 혈당 수치! 탄수화물 파티 속에 폭발하는 짜릿한 ‘길티 플레저’(죄책감과 쾌감을 동시에 느끼는 일)!! 자기 파괴적 행위가 아니다. 코로나 시국 이토록 우울한 내게 이 정도는 윤허해줘야 마땅한, 자기애 넘치는 행위였다. 이게 없었다면 올 한해 어떻게 버텼을지. 그러고 보니 올해 편두통이 없었다. (추신 이 글은 롯데제과와 1도 상관없음을 밝혀둔다. 덕후란 이런 것이다. ‘내돈내산’하고 동네방네 떠벌리는 존재.)
강나연(<허프 포스트 코리아> 편집장)
July gift 7월의 선물 7월 어느 날, 한 독자가 에이전시를 통해 선물을 보내왔다. 꾸러미 안에는 작은 액세서리 선물과 쿠키 상자, 그리고 이상한 물건 하나가 들어있었다. 지난 2월에 출간한 내 책이었다. 낯선 선물 꾸러미에서 익숙한 물건을 발견하자 사고가 정지됐다. ‘반성하라는 의미일까?’ 책을 펼쳐보고서야 내가 받은 선물이 어떤 물건인지 알게 됐다. 책 중간중간에는 인쇄해서 가위로 오린 다음 본문을 가리지 않도록 깔끔하게 붙여놓은 메모가 스무개쯤 달려 있었다. 편지만큼 긴 메모였다. 글에 대한 감상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물리적인 형태의 ‘댓글’로 만들어 완성한 책이었다. 작가의 책장에 꽂혀 있는 자기 책은 어디까지나 미완성이다. ‘쓰기’로 시작된 책은 ‘읽기’를 거쳐 비로소 완성된다. 작가는 물론 어딘가에서 그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이 과정은 목격되지 않는다. ‘읽기’란 생각이나 기억, 혹은 마음의 움직임까지 포함하는 과정이어서 더 그렇다. 그래서 글쓰기는 좀처럼 완성되지 않는다. 7월에 배달된 내 책은, 글이 완성되는 과정 하나를 물리적인 실체로 바꾸어놓은 물건인 셈이다. 유일한 완성은 아니지만, 예시가 단 하나만 있어도 ‘그런 일은 세상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가설쯤은 너끈히 기각된다. 작가가 시도 때도 없이 자기 자신에게 제기하는 그 음험한 가설이 말이다. 올해 내내 수많은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았지만,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바로 이 선물이다. 덕분에 힘겨운 여름을 넘겼고, 이 기괴한 2020년을 사고 없이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배명훈(소설가)
Knitting 손뜨개 올해 확 줄어든 지출이 옷 구매였다. 대신 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9월부터 본격적으로 뜨개를 시작했고 내 손으로 내 옷을 떠서 입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어 초조한 기분이 들 때마다 뜨개 감을 붙잡고 한 줄 뜨고, 내년이라고 뭐 뾰족한 수가 나겠나 싶어 한숨이 길어지면 또 손가락을 놀려 한 바퀴를 돌린다. 바늘을 잡고 실을 꼬아 엮는 1초가 수없이 모여 형체를 갖춘 옷이 된다. 스웨터 세벌, 카디건 한벌이 불안하고 갑갑한 마음을 한 코, 한 코 엮어 짠 코로나 시대의 기념품 같다. 뜨개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면서 또 다른 사실도 알게 됐다. 배우자나 자녀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사와 돌봄 노동을 담당하는 이들은 맡은 일이 늘었고, 그 때문에 뜨개를 할 짬을 내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타격은 모두가 같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노동을 하는 이들로 유지되는 일상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올해는 뜨개로 배운 것이 참 많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Life in Jeju 제주살이 그래도 서귀포여서 다행이었다. 이곳 역시 역병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눈을 돌리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한라산과 넉넉한 바다는 언제나 숨 쉬듯 위안이었다. 봄에는 고사리 뜯고, 가을에는 밤을 주웠다. 오름을 걷다 산딸기가 보이면 따 모아 잼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잠든 밤에는 낚싯대를 들고 나가 오징어나 한치, 우럭, 쏨뱅이 따위를 잡았다. 잡은 생선은 더러 얼리거나, 주로 말렸다. 직접 잡아 손질해 말린 생선에서는 비린내가 아니라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났다. 무더운 여름엔 바다에 풍덩 뛰어들고, 서늘한 한기가 들면 주위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모아 불을 피웠다. 자연의 품에 안긴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고 생각한다. 마스크 대란 등 사태 초기의 혼란도 대충은 비켜 갔다. 아이들도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에 그대로 보낼 수 있었다. 7년 차 주부이자 전업 육아 아빠로서,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잘 안다. 아이와 씨름하는 육아 동지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응원을 함께 보낸다.
송호균 객원기자 gothrough@naver.com
Log out 로그아웃 남편의 회사 동료 가운데 사주를 볼 줄 안다는 사람이 그랬다고 한다. “와이프와 딸 사주에 물이 많아. ○○씨는 따라다니려면 힘들겠어. 물처럼 흘러서 엄청 돌아다닐 거야.” 그랬다. 우리는 틈만 나면 밖으로 나돌았다. 그리고 코로나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올 2월, 7살 딸과 단둘이 부산까지 내지른 이후 우리는 집에 갇혔다.
고인 물처럼 지내던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소소한 즐거움은 있었다. 이를테면 재택근무로 집에서 기사 마감을 하고 노트북을 ‘탁’ 하고 덮는 순간 같은 것.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사내 온라인망을 로그아웃하고 나올 때는 그런 짜릿한 기분이 든 적이 없었다. 내일 또 비슷한 일이 이어질 테고, 지난한 퇴근길을 거쳐야 안락한 집에 겨우 가닿을 것이므로. 하지만 재택근무를 마치고 노트북 앞을 떠나는 순간은 달랐다. 평소 주중엔 도통 함께 저녁 먹을 일 없었던 아이와 밥상을 마주할 수도 있고, 소파에 누워 책을 읽을 수도 있었다. 퇴근 직후, 노트북을 덮자마자 누리던 온전한 로그아웃. 이 시간만큼은 나중에 또 그리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Mountains 뒷산 코로나19를 피해 서울을 탈출한 건 아니었다. 고층 아파트와 빌딩이 밀집한 도심을 걷다가 문득 <메이즈 러너>가 떠올랐다. 영화 속 청년들은 영문도 모른 채 회색 장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내동댕이쳐진 후 미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악전고투한다. 나는 생각했다, 이제 그만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미로에서 벗어나 너른 하늘을 보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부르제의 말에 맞장구치며 인구 8만인 소도시로 이사를 했다. 새 둥지에서 사계절을 경험한 후 다시 긴 여행을 떠날 작정이었다. 근데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발생했다. 해외여행은 말할 것 없고 국내여행을 가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급적 원거리 여행은 자제해 달라’는 총리의 당부도 있었던 터라 정부시책을 적극적으로 따르기로 했다. 봄꽃 놀이도, 여름 물놀이도 인근에서 해결하고 단풍이 절정기를 맞았을 때도 주야장천 뒷산만 오갔다. 아, 물론 뒷산이긴 한데 따로 이름이 있다. 설악산. 속초로 이사를 온 덕분에 뒷산이 설악산이고, 앞바다가 동해였다. 내년엔 마스크 벗고 영랑호 벚꽃 길을 달릴 수 있겠지?
노동효(<남미 히피 로드> 저자·여행 작가)
Naengmyeon 냉면 ‘같이 식사 한번 하자’는 섣부른 말이 실례처럼 느껴지는 시절이다. 딱히 즐거울 일도, 축하하거나 경망하게 나다닐 일도 없었던 올해는 유난했다. 그저 조용하고 안전하게 지내는 것이 관건인 올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홀로 먹고 마시는 일뿐이었다. 혼자도 어색하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을 찾게 됐다. 1인분을 시켜도 눈치 볼 필요 없는 식당, 무엇보다도 소주 한 잔 곁들일 수 있는 곳, 그곳은 냉면집이었다. 북적거리는 시장통의 자극적인 ‘공장제 냉면’도, 장안의 면 전문가들이 칭찬하는 평양냉면도 가릴 것 없이 좋았다. 분식집의 정신없는 꾸밈부터 잘 삶아 정갈하게 똬리 튼 모양새까지, 가리지 않고 좋았다. 적당히 차가운 냉면에 면수 한 잔, 혹은 육수 한 모금을 머금고 마시는 소주는 특별했다. 그저 위안이 됐다. 잠깐이나마 마스크를 벗고 마시는 소주가 유난히도 달았다. 힘든 일, 절망적인 일, 짜증 나는 일이 있을 때면 꾹꾹 면을 씹어 삼켰다. 그러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정말 단순한 이 한 그릇이 올 한해의 큰 위안이었다.
백문영 (전<럭셔리> 리빙 에디터)
Online 온라인 3월, 봄과 함께 코로나가 창궐했다. 4학기차에 접어들었던 나의 대학원 생활, 필수과목을 다 수강하고 드디어 정말 듣고 싶던 과목을 수강하게 된 터라 기대감이 가득했으나, 캠퍼스엔 가보지도 못한 채 컴퓨터 앞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풍경을 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애를 써도 화면 앞에만 앉으면 병든 닭처럼 졸음이 밀려와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렇게는 공부를 할 수 없다며 휴학까지도 고민했지만, 누군가의 단 한마디 ‘올해 안에 코로나가 멈추지 않을 수도 있어.’ 그 한마디에 꾸역꾸역 견디며 한 학기를 공부했다. 온라인에서의 경험들은, 그렇게 고통이고 갑갑함이며 ‘견뎌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12월, 나는 이제 온라인으로 가족과 만나고, 공부를 하고, 인도 선생님과 명상을 하고, 업무 미팅을 하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 만나는 것의 소중함을 마음에 간직한 채, 이렇게라도 연결되어있음에 감사한 채, 문명의 이기를 통해 연결된다.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불평과 불만에서 수용과 감사로 전환되는 이 고차원의 멘탈 스킬을, 그래 그러니까 ‘인터넷’이 가능하게 했다. 오늘도 이렇게,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은 채 나 홀로 방에 앉아 글을 쓰고, 그것을 ‘인터넷’으로 보낸다.
곽정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