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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김원효 “방판소년단 하고 싶은데…코로나 안돼~”

등록 2021-01-15 07:59수정 2021-01-15 09:09

‘개콘’은 사라졌지만 쇼는 계속된다
일상을 무대 삼은 코미디언 김원효
“좋아하는 일은 결국 하게 돼요”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코미디언 김원효. 사진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코미디언 김원효. 사진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그러니까, 두 분이 팀원이라는 거죠?”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스튜디오. 기자와 마주 앉은 코미디언 김원효(40)와 그의 동료 정재강(31)씨가 “그렇죠”라며 웃었다. 팀원 김원효는 2개월 전 정재강의 동료가 됐다. 김씨가 말했다.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혼자서 다 하려고 하면 안 되거든요. 뭐든 잘하고 싶으면 팀이 있어야 해요.”

최근 김씨는 패션 사업에 뛰어들었다. 정확히는 정씨가 먼저 시작한 사업에 동업자가 된 것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정씨는 한국적인 디자인 요소를 이용해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2019년 브랜드를 론칭했다. 두 사람이 이어진 것은 정씨가 지인을 통해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을 보낸 것이 계기였다. “처음에는 그냥 홍보를 바라고 보냈겠거니 했어요. 그런데 한국적인 것을 내세운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이 마음에 든 데다, 막상 이 친구를 만나보니 열정이 불타오르는 거예요.”

처음엔 <개그콘서트>(줄여서 ‘개콘’·KBS) 종영에 코로나19까지 겹친 지난해, 김씨가 패션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이 흥미로워 인터뷰를 요청했다. 오래 지켜온 큰 무대가 사라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팬데믹까지 몰려와 각종 행사나 공연도 연이어 취소됐다. 무대를 잃은 코미디언은 상실감이 꽤 크지 않았을까. 그런 그가 갈 수 있는 여러 길 가운데 왜 패션을 선택했을까.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 부질없는 것이 남 걱정이라더니, 역시나 기우였다. 그는 잘(?)살고 있었다. 여러 팀의 ‘팀원’으로서.

함께 패션 사업을 하는 김원효(사진 왼쪽)와 정재강. 사진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함께 패션 사업을 하는 김원효(사진 왼쪽)와 정재강. 사진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코미디언이 되기 전 김원효는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부산에서 상경했다. 2007년 <한국방송>(KBS) 특채 개그맨 22기로 뽑히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오랜 꿈이었던 연기를 다시 해보고 싶진 않았냐고 물었다. 김씨는 “카메오 섭외가 들어오긴 하는데, 자꾸 제가 다른 일에 민폐를 끼치게 되니까요. 드라마나 영화는 예능처럼 공연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니 무한정 대기하다 보면 다른 일에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자꾸만 ‘다른 일’을 언급하는 그에게 물었다. “하시는 다른 일이 많은 거죠?”

김씨가 웃으며 답했다. “길을 걷는데 어떤 분이 지나가다가 물으시더라고요. ‘요즘 뭐해요? 뭐 먹고 살아요?’ 라고.” 개콘 무대에서는 내려왔지만 꾸준히 방송 활동은 해왔다. 그는 지난 11월 예능 프로그램 <1호가 될 순 없어>(JTBC)에 합류했다. 지난해 4월까진 예능 프로그램 <가정경제전담반 수사반장>(K STAR)도 진행했다. “그것 말고도 많아요. 기업 강연도 나가고, 결혼식 사회는 얼마 전에 1000번을 채웠고요. 김밥집 운영, 개그 공연, 청소년 상담 관련 공연도 했고요.” 그리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홈쇼핑으로 음식 판매도 구상 중이고, 오래 관심이 있었던 뷰티 쪽도 해보고 싶고….” 안식년을 얻은 직장인 같다고 할까. 지난해는 하고 싶은 일, 오래 마음에 품어 왔던 일을 하나하나 꺼내놓는 한해였던 셈이다. 올해 만으로 마흔, 꽉 채운 40살이 된 그가 말했다. “저는 인생에서 중간이 40살이라고 생각해요. ‘100세 시대’ 어쩌고 하니까 50살이 중간이 아니냐고 하는데, 저는 지금이 그래요. 인생의 중반기에 어떤 걸 해야 할까 생각했어요. 20~30대에는 뭔가 열정적으로 살았다면, 40대에는 안정된 기운 속에서 하고 싶었던 것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런 마음에서 (2019~2020년으로 넘어갈 즈음) ‘마흔파이브’를 시작하기도 했고….”

40대가 된 김원효(사진 왼쪽)는 “하고 싶은 일을 잘 하기 위해선 좋은 팀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40대가 된 김원효(사진 왼쪽)는 “하고 싶은 일을 잘 하기 위해선 좋은 팀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지난겨울 그는 마흔이 된 동료 개그맨 허경환, 박성광 등과 함께 마흔파이브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스물마흔살’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그 겨울이 벌써 아득하다. 제목은 다소 낯간지럽지만 “마흔대로 살지 말고 마음대로 사는 거야 괜찮을 거야”라는 후렴구가 귓전을 자꾸만 때린다. 마흔파이브 얘기를 하며 그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마흔파이브는 사실 제가 하는 여러 가지 일 가운데 젤 안 되는 팀 활동이에요. 친한 친구들끼리 하다 보니까 호흡이 잘 맞는 게 오히려 단점인 거죠. 친한 친구들끼리는 같이 놀기만 해야 하나 봐요. 지금도 (정)형돈이 형이 작사 작곡해서 준 좋은 노래가 있는데, 모이질 않으니….(웃음)”

그렇다면 그가 속한 ‘잘 되는’ 팀은 무엇일까. “2016년부터 시작한 코미디쇼 ‘쇼그맨’은 연간 국내 공연 횟수 1위를 기록한 적도 있어요. (코미디쇼가) 원래는 현장에서 보면 (티브이로 보는 것보다) 훨씬 재밌거든요. 원래는 이런 쇼를 볼 기회가 적은 해외에 사는 교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는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원하는 공연에 뽑혀서 전국 여러 지자체에서 공연하기도 했죠.” 박성호, 김재욱 등 동료 개그맨들과 함께 하는 쇼그맨은 개그, 마술, 노래, 연기, 춤 등을 한 무대에서 보여주는 종합 퍼포먼스다. 2018년 문체부에서 지원하는‘민간예술단체 우수공연 프로그램 방방곡곡문화공감사업’에 선정돼 전국 순회공연을 열기도 했다. 그런데 이도 처음부터 순항했던 것은 아니다. “첫 공연이 미국 뉴욕이었어요. 그런데, 공연 날짜는 다가오는데 표가 4장 팔렸나? 그때 하필 슈퍼볼 경기도 있는 데다 한국 가수 중에 거미, 김태우도 뉴욕 공연이 잡혀 있고…. ‘와, 이거 어떡하지’ 싶은 거예요. 결국 공연 날짜보다 일찍 가서 직접 홍보하러 다녔죠. 한인 마트, 병원, 교회, 술집, 고깃집 가서는 직접 고기 잘라드리면서…. 10분, 20분 같이 있다 보면 상대방이 먼저 물어요. ‘근데 미국 왜 오셨어요?’ 그러면 그제야 공연 얘기하고….” 그렇게 1400석이 매진됐다.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공연도 연이어 성공했다.

김원효, 정재강씨가 함께하는 패션 브랜드 ‘메이드한멋’ 제품. 사진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김원효, 정재강씨가 함께하는 패션 브랜드 ‘메이드한멋’ 제품. 사진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쇼그맨의 성공으로 가능성을 엿본 것이 최근 몰두하는 패션 사업이기도 하다. “해외에 다니다 보면 이상한 문구가 쓰여 있는 한글 프린트 옷을 입고 있는 외국인이 많거든요. 웃기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드는데, 한국적인 것에 대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고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브랜드 ‘메이드한멋’은 훈민정음 프린트를 새긴 클러치백, 지갑 등을 주력으로 한다. “한글로는 뭔가 예쁘다는 느낌이 들기 어려운데, 이게 우리는 매일 보는 글자니까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고요. 의외로 외국에 계신 한인 분들이 물류비까지 내고 주문하기도 해요.” 정씨가 덧붙였다.

좋아하는 일을 ‘문어발식’으로 벌여놓은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오히려 첫 번째로 하려던 질문은 한참 뒤로 미뤄졌다. “지난해 <개그콘서트> 종영 이후, 오래 서 왔던 코미디 무대가 사라졌다는 데서 오는 헛헛함이 있지 않았나”라는 질문 말이다. 거기에 김씨는 이렇게 답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차라리 잘 사라졌다고 생각해요. 시대가 변해서 개콘이 안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개콘이듯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2017년 종영)든 아쉬움이 크죠. 근데 (코미디언이) 요리사라고 치면 썩은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라는 상황이었어요. (심의 때문에) 하지 말라는 건 너무 많은데, 우리한테는 재밌게 해봐라, 그러는 거예요. 그거 있잖아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우리는 새우깡을 새우깡이라 부르지 못하고 새우 과자라고 해야 했던 거죠.”

코미디언 김원효. 사진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코미디언 김원효. 사진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내가 좋아하는 건 결국 하게 되는 것 같아요.” 10년이 넘게 월~금요일까지 직장인처럼 방송국에 출근하며 쇼를 짰던 코미디언은 이제 일상을 무대 삼아 좋아하는 일을 자꾸 벌여가며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좋아하면 잘하고 싶고, 잘하려면 욕심에 ‘삑사리’가 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강조한다. ‘팀원’의 마음가짐으로 임하기를. “아, 코로나만 아니면 (패션 아이템으로) 방판소년단 하나 만들자 할 텐데 말이에요. 가방 들고 해외로 나가는 거예요. 자전거 타고 횡단해도 좋고요.” 방탄소년단이 아니다. 방판소년단이다. 때가 되면 방판소년단의 날개짓을 볼 수 있으리라. 그의 열정 정도면.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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