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동물대체시험법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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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투구게를 알고 계십니까?”
10월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국정감사에 투구게가 등장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손바닥만한 회색 투구게 인형을 들어 보였다. 투구게는 생김새가 둥근 몸체에 긴 꼬리가 달린 가오리를 닮았지만 딱딱한 껍질이 온몸을 둘러싼 갑각류 생물이다. 수억년간 모습이 거의 바뀌지 않아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리지만 ‘파란 피’ 때문에 죽어간다.
투구게의 푸른 혈액에는 라이세이트(Lysate)라는 물질이 들어 있는데 이 성분은 적은 양의 독소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의약용품의 독성 여부를 가릴 때 사용된다. 인간에게 주사를 놓을 때 쓰이는 물(시험용수)은 모두 이 시험을 거치게 된다. 코로나19 백신도 마찬가지다.
투구게는 시험에 이용되며 심장에서 30%가량의 혈액을 강제 채혈당한 뒤 바다로 방사된다. 이 과정에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더라도 10~30%는 스트레스로 사망한다. “투구게를 대체할 시험법 연구 및 적용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이날 국감에서 남 의원은 식약처에 이렇게 따져 물었다. 보건복지위 국감에서 ‘동물대체시험법’을 질의로 다룬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7층 남 의원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애니메이션 영화 <랄프를 구해줘>(Save Ralph)의 랄프 등신대가 먼저 손님을 맞았다. 영화에서 한쪽 눈이 실명한 걸로 등장하는 랄프는 드레이즈 테스트(Draize Test, 안구와 피부 자극성 시험)에 이용되는 실험 토끼다. 랄프는 온몸을 결박당한 채 자극성 물질을 눈에 주입당한다. 남 의원과 동물보호단체 한국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은 지난 4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 작품을 상영하며 동물대체시험법 제정을 촉구했다.
그의 책장 앞엔 또 다른 토끼도 있었다. 거친 질감의 토끼 조각상은 마치 비상하려는 듯 두 발을 하늘로 뻗고 있었다. 이 조각상은 동물대체시험 분야의 세계 최대 시상식인 ‘러쉬 프라이즈’(Lush Prize)의 트로피다. 남 의원은 지난달 21일 ‘2022 러쉬 프라이즈’에서 올해 신설된 정치·공로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동물대체시험법은 대체 뭘까. 2020년 12월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보급 및 이용을 촉진하기 위한 법률안’(동물대체시험법)을 대표 발의한 남인순 의원에게 직접 물었다.
―동물대체시험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러쉬 프라이즈를 받으셨다고요? 동물대체시험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2012년부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위가 동물실험을 직접 다루진 않지만 소관 부처인 식약처는 건강식품, 의약품, 의약외품, 화장품, 또 의료기기까지 독성 평가나 안전성 평가를 감독하거든요.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죠. 그러던 중 2017년 화장품법이 개정되면서 동물실험을 한 화장품의 유통 및 판매가 금지됐어요. 그러면 동물실험도 좀 줄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은 거예요. 저도 2018년부터는 국감에서 동물실험에 관해 묻기 시작했죠.”
10월7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에서 남인순 의원이 투구게 인형을 들어 보이며 동물실험을 설명하고 있다. 남인순 의원실 제공
―동물대체시험이란 게 사실 아직까지 생소합니다.
“동물실험이 실험실에서만 이뤄지니 국민들은 직접 보거나 현실을 알기가 쉽지 않아요. 2021년에 동물대체시험을 개발한 한 업체 시연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마스카라 등의 화장품이나 임플란트, 레진 등 치과 치료에 쓰이는 재료는 피부 자극과 알러지 실험을 거쳐야 해요. 그동안은 ‘랄프’ 같은 실험 토끼들로 드레이즈 테스트를 했는데, 인체 피부 모델을 이용하면 굳이 토끼를 희생시키지 않아도 되겠더라고요. 한국인의 피부 각질 세포를 3D로 구현해 동물실험보다 오히려 정확하고 과학적이었어요. 이걸 좀 더 확산시키고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없던 법을 만드는 작업이 쉽지는 않을 거 같아요.
“세계적인 추세는 동물실험을 줄이자는 거예요. 근데 그냥 실험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줄이려면 대안을 제시해야죠. 먼저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저도 공부가 필요한 상황이었고요. 사실 동물대체시험은 식약처뿐 아니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산업통상자원부하고도 모두 연결이 돼요. 2019년 5월 해당 부처 소속 상임위 의원님들과 ‘동물생명윤리를 반영한 4차 산업혁명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죠.
토론회를 열 때만 해도 어디가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한다고 정해진 건 없었어요. 동물실험을 대체할 기술만 나온다고 해서 확산이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니 주도할 부처가 필요했죠. 그러다가 규제기관이 중심이 되어서 진행하는 게 낫지 않으냐고 해서 식약처가 도와서 진행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한국법제연구원이 그해 12월 최종 연구보고서를 냈고, 2020년 6월 전문가 간담회를 거쳐 12월21일 제가 법안을 제출하게 된 겁니다.”
―법안 마련까지 거의 3년이 걸렸네요. 그간의 변화가 감지되세요?
“변화가 느껴지는 건 동물대체시험법에 대한 정부 연구개발(R&D)이 상당히 많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2020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수행 중인 연구사업이 총 59개였고,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투자된 정부 연구비도 1260억원에 달했습니다. 현재도 여러 부처에서 적극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요. 이건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거든요. 오이시디(OECD) 주요 국가들이 동물대체시험 개발 연구에 매진하고 있고, 산업적인 측면으로도 한국의 기술이 각광받으면서 법에 대한 필요성이 더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연구는 활발한 것 같은데 활용은 어떤가요?
“활용은 아직 미진합니다. 신약 개발 분야에서도 인체 장기와 유사한 칩을 만드는 등 다양한 대체 방법들이 등장하고 있거든요. 기업, 부처들이 관심을 갖고는 있어요. 하지만 관련 법도 만드는 중이고 아직 규정이나 기준은 없는 상황이잖아요. 윤리적인 소비가 세계적인 흐름 아닙니까. 동물대체시험법으로 개발된 신약이 있다면 소비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전망해요. 아직 강력하게 주도하는 국가가 없는 상태니, 저는 이 분야가 우리나라로선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 산업이란 측면도 있겠지만 실험동물을 실질적으로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정확한 예측이 어렵긴 해요. 우리가 이미 실험동물법과 동물보호법으로 동물실험의 일반적 원칙인 3아르(R·replacement, reduction, refinement. 비동물실험 대체, 동물실험 감소, 고통 최소화)를 가지고 동물실험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긴 해요. 그렇지만 지난해 국내 각종 실험에서 쓰인 동물의 수가 488만마리였어요. 실험동물 수는 매해 늘어나고 있어요. 이런 선언적 원칙만 가지고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거죠.
남인순 의원은 지난달 21일 동물대체시험법 추진과 발의의 공로를 인정받아 ‘2022 러쉬 프라이즈’ 정치·공로상을 수상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또 그걸 적극적으로 확산시킬 법안이 그래서 필요해요. 실험동물의 고통을 줄이자? 이제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실험은 줄어들지 않을 거예요. 현재 발의돼 있는 동물대체시험법은 시험법 개발은 물론 보급 및 이용 촉진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연도별로 계획을 세우고, 5년마다 실태조사를 실시해서 실제로 얼마나 개체 수가 감소했는지 조사하자는 거죠.”
―이번 국회 회기에선 계류됐어요. 조속한 법안 통과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스토킹처벌법’같이 10년 걸려 만든 법안도 있는데요, 뭐.(웃음) 느리다 생각 말고 내년엔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죠. 2020년 한국휴메인소사이어티가 리얼미터에 의뢰한 동물실험 인식조사를 보면 국민 80%가 동물실험 대체를 위한 지원에 세금을 쓰는 것을 찬성한다고 답했어요. 이미 국민들의 공감대는 형성되었다고 봐요. 반면, 코로나19로 국민 건강권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물실험이 필요악이 아닌가 하는 여론도 있거든요. 이 부분에 대해 저희가 좀 더 과학적이고 윤리적인 방법으로 실험이 가능하다는 걸 지속적으로 알려야죠.”
남인순 의원은 대화 도중 2016년 총선 포스터에 함께 등장하기도 했던 반려견 ‘설이’가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전했다. 반려견 설이와 반려묘 ‘멜리’는 남 의원이 국회의원 연구모임인 ‘동물복지국회포럼’의 초기 멤버로 참가 하도록 만든 ‘가족’들이다. 남 의원은 “반려동물이나 실험동물 모두 다르지 않은 생명이다. 관계를 맺음으로 발생하는 감정이 다르게 느껴질 순 있겠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희생당하는 실험동물에게 더 관심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