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메 아욘과 나니 마르키나가 협업한 카펫, ‘아욘x나니’(Hayon x Nani). 사진 루밍 제공
한때 카펫은 겨울에만 사용하는 인테리어 소품이었다. 발바닥에 닿는 바닥 감촉이 어느 순간 서늘하게 느껴지면 카펫을 까는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예전 카펫들이 주로 천연섬유인 양모·면 등의 장모(長毛)로 만들어서 닿는 순간 따뜻하고 푹신한 느낌을 줬다면, 이제는 달라졌다. 몇 해 전, 먼지를 흡수하지 않는 무독성 스웨덴산 피브이시(PVC·플라스틱 재질의 얇은 실)로 만든 파펠리나(Pappelina) 카펫, 브리타 스웨덴(Brita Sweden) 러그가 크게 유행했다. 사계절 카펫의 시대를 연 것이다. 덕분에 집먼지진드기 알레르기나 아토피로 고생한 이와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도 카펫을 별 고민 없이 고를 수 있게 됐다. 이런 종류의 제품들은 물로만 세탁해도 오염이 쉽게 제거되고 건조도 빨라서 실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열대식물인 용설란 잎을 가공한 사이잘 대신 폴리프로필렌을 사용해 사이잘의 느낌을 살린 사이잘룩(Sisal-look) 카펫의 등장은 여름에도 카펫이 깔린 풍경을 보는 게 더는 어색하지 않게 만들었다. 폴리프로필렌은 관리가 편리한 소재다. 패턴이 아름다운 러그를 거실 바닥에 깔지 않고 벽에 걸어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것도 새로운 트렌드다.
덴마크 브랜드 무토의 페블 러그. 사진 짐블랑 제공
물 세탁이 가능해 편리한 ‘브리타 스웨덴’의 사프미 러그. 사진 브리타 스웨덴 제공
한편 예전엔 카펫이 단지 바닥의 냉기를 막아주던 쓰임새였다면, 이젠 열기를 차단하고, 층간 소음을 방지하며, 허전한 공간에 포인트를 더해주는 용도로 발전했다. 카펫 특유의 겨울 감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편리와 실용성, 그리고 디자인 면에서 카펫의 영역은 확장되고 있다.
좀 더 카펫의 다양한 종류를 알아보기 전에 카펫과 러그의 차이를 한번 짚어보자. 카펫은 좁게는 거실, 넓게는 집 전체 등 비교적 넓은 공간에 사용하는 소품이다. 러그는 카펫보다 크기가 작아 현관, 부엌 등 집 바닥 일부분 등에 사용하는 소품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 구분을 명확하게 하진 않는다.
페르시안 카펫 느낌이 물씬 나는 롤로이의 로렌 컬렉션. 사진 에이치픽스 제공
짜임새가 경쾌한 ‘크바드라트’의 트위스트 러그. 사진 비아인키노 제공
카펫을 고를 때 가장 먼저 찾는 건, 단연 카펫 전문 판매 브랜드다. 미국 러그 전문 브랜드 롤로이(Loloi)의 제품은 예전 어머니들이 많이 사랑했던 페르시안 카펫을 떠올리게 한다. 롤로이의 러그들은 고급스러운 페르시안 카펫 특유의 디자인은 살리면서도 폴리프로필렌을 사용해 관리하기 편리하게 한 게 특징이다. 터키의 숙련된 장인들이 제작해 짜임새가 견고하다. 20년 전통의 스페인 브랜드, 로레나 카날(Lorena Canals)은 친환경 면과 무독성 천연염료로 수작업한 러그와 쿠션을 선보인다. 숫자나 우주선 패턴 러그는 아이 방에, 요즘 유행하는 테라초 대리석 패턴 러그는 거실이나 침실에 잘 어울린다. 좋아하는 가구 브랜드가 있다면 그 브랜드에서 출시했거나 추천하는 카펫을 선택하는 것도 좋다. 국내에 북유럽 디자인을 널리 알리는 데 한몫 톡톡히 했던 브랜드 헤이(Hay)와 무토(Muuto), 펌리빙(Ferm Living)의 러그는 색과 디자인 측면에서 브랜드 특유의 느낌이 살아 있다. 같은 브랜드의 가구나 소품을 갖고 있다면 세트처럼 잘 어울릴 것이다. 특히 펌리빙 특유의 생동감 있는 동물 모양 러그는 아이 방에 잘 어울린다. 국내 가구 브랜드 비아인키노(Wie Ein Kino)는 전통 있는 덴마크 패브릭 브랜드 크바드라트(Kvadrat)의 원단으로 제작한 가구들을 선보이는데, 같은 브랜드의 러그도 소개한다. 원단으로 유명한 브랜드 카펫답게 감촉과 빛깔이 남다르다.
벽에 걸어 장식한 펌리빙의 사파리 러그. 사진 루밍 제공
하이메 아욘이 디자인한 나니 마르키나의 실루엣 러그. 사진 루밍 제공
북유럽 디자인 유행의 중심인 브랜드 ‘해이’의 비아스 러그. 사진 이노메싸 제공
‘카펫은 기성품’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디자이너가 창의력을 발휘한 카펫도 있다. 스페인 여성 카펫 디자이너인 나니 마르키나(Nani Marquina)가 대표적이다. 그는 소비자의 생각을 바꾸는 데 큰 몫을 했다. 1987년께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하며 전통적인 수작업 카펫 제조 방식에 현대적인 디자인을 도입해 예술작품에 가까운 카펫들을 선보였다. 그 후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과 더불어 국내에도 잘 알려진 하이메 아욘(Jaime Hayon), 로난&에르완 부룰레크(Ronan & Erwan Bouroullec) 형제 같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협업한 제품들을 출시했다. 그들이 디자인한 카펫을 보면 디자이너 본연의 감성과 취향이 넓은 카펫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어 그 자체가 아름다운 작품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디자이너와 협업한 카펫 브랜드가 많지만, 국내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최근 국내 카펫 대표 브랜드이자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일카페트가 아티스트와 협업을 한 카펫을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공간 디자이너 김종호, 순수예술 위주로 활동하는 김서진 작가와 함께 ‘O&O’(One & Only) 시리즈의 새로운 ‘쎄씨’(CeCi) 컬렉션을 선보인 것이다. 이 컬렉션은 마치 꽃들이 만개한 것처럼 과감한 색상과 패턴이 인상적이다.
한일카페트와 작가 김종호·김서진이 협업한 ‘O&O’ 시리즈의 ‘쎄씨 컬렉션’. 사진 한일카페트 제공
사계절 사용할 수 있는 ‘파펠리나’의 에디 러그. 사진 로쇼룸 제공
카펫과 러그처럼 한순간에 집 안의 분위기를 드라마틱하게 바꿔놓을 수 있는 아이템도 드물다. 하지만 제품이 차지하는 면적이 크고, 한번 사면 오래 사용해야 하기에 깔릴 공간의 크기, 집 안 다른 인테리어, 소재와 직조 방식, 디자인 등을 충분히 따져야 한다. 물론 가족 구성원들의 취향과 건강까지 생각해 선택해야 한다. 꼼꼼하게 고른 카펫은 겨울뿐만 아니라 사계절 내내 가족의 포근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정윤주(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로낭&에르완 부흘렉 형제가 디자인한 나니 마르키나의 라티스 러그. 사진 루밍 제공
아이 방에 잘 어울리는 ‘로레나 카날’의 유니버스 러그. 사진 루밍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