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포스터로 장식한 벽. 독일 사진가 볼프강 틸만스의 작품 ‘루이지애나 1996’. 쿠나장롱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로 점철된 지난 1년, 그래도 사람들은 위트를 잃지 않았다. 이웃집도 쉽게 건너가지 못하는 거대한 벽 앞에서, 사람들은 가상의 공간에 창을 내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위안 삼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자기 집 창밖 풍경을 공유하는 웹사이트 ‘윈도우스왑’(window-swap.com) 같은 거로.
비슷한 마음으로 이국의 풍경을 벽에 건 사람들도 있었다. 그림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픈갤러리’에 따르면 지난해 유독 많은 고객이 프랑스 몽생미셸이나 하와이 등 유명한 관광지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빌렸다고 한다. 벽에 걸린 그림을 통해 마음속 그곳으로 건너가는 듯한 상상. 어느 때보다 사방의 벽에 오래 갇혀 있는 요즘, 갑갑한 마음을 역설적으로 벽으로 풀어보는 건 어떨까.
벽 인테리어를 바꿀 때 우리는 크게 두 가지를 고민할 수 있다. 도배나 페인트칠, 벽의 구조를 바꾸는 공사 등 하드웨어를 바꾸는 것(관련 기사 ‘없던 방이 생겼네…집 더하기 빼기의 미학’ 참조), 그리고 그림이나 사진, 소품, 선반 등으로 벽을 장식하며 계절과 기분에 따라 변화를 주는 것. 이번에는 큰 부담 없이 벽에 다양한 리듬을 선사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멋진 그림이나 사진으로 벽을 장식하는 건 가장 전통적인 방식의 벽 인테리어다. 인테리어 전문가들은 그림을 골라 벽에 거는 걸 집 꾸미기의 화룡점정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그림을 걸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행여 우리 집에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닐까, 비싼 가격을 주고 샀는데 금세 질리진 않을까’ 하는 고민이 이어진다. 이럴 경우에는 덜컥 작품을 사는 것보다 그림 임대 서비스를 이용해 자신의 취향을 탐색해보자.
국내 인기 작가들의 원화를 대여·판매하는 ‘오픈갤러리’는 그림 렌털 사이트 가운데 대표적인 곳으로 꼽힌다. 3500명의 소속 작가와 4만여점의 작품 규모를 내세운다. 월 3만원대로 그림을 대여할 수 있다.
가구 색깔과 어울리는 그림으로 꾸민 벽. 최승윤 작가의 ‘반대의 법칙’. 오픈갤러리 제공
오픈갤러리 큐레이터들은 지난 한해 어느 때보다 바빴다고 한다. 김지성 오픈갤러리 아트 매니저는 “코로나 블루로 많은 사람이 소비를 축소하면서 그림 대여 고객도 줄어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문화생활을 집에서 즐기려는 고객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오픈갤러리는 지난해 4분기, 전년 동기 대비 약 350% 매출이 신장했다고 한다.
일상적으론 겨울에는 차분하고 봄에는 화사한 색감의 그림이 많이 나가는 등 계절에 따라 선호도가 명확한 편인데, 지난해에는 겨울에도 여름 휴양지나 수영장 그림, 초록의 숲을 그린 그림에 대한 수요가 유독 많았다고 한다.
계절감도 중요하지만, 집 인테리어 분위기에 따라 어울리는 그림도 조금씩 달라진다. 김 매니저는 집이 전체적으로 모던한 느낌이면 추상화나 구성화를, 원목이나 라탄 소재 등 나무 질감 느껴지는 가구가 많은 집은 동양화나 풍경화를 거는 것을 추천한단다. 그림을 걸었을 때 자칫 공간이 좁아 보일까 걱정이 된다면 여백을 많은 추상화를 걸어보길 권했다. 오히려 공간이 더 넓어 보인다고 한다.
프랑스 화가 기욤 브루에르의 2019년 취리히 미술관 개인전 아트 포스터. 쿠나장롱 제공
파블로 피카소, 데이비드 호크니 등 한 세기를 장식한 작가를 비롯해 현재 활동 중인 세계 작가들의 전시 포스터도 벽면 분위기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 아트 포스터를 취급하는 ‘쿠나장롱’의 김규나 대표는 “네덜란드, 스위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에서 전시를 기념하기 위해 발행하는 아트 포스터는 디자인과 그래픽적 요소가 뛰어나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출력물의 품질이 좋고, 원작의 느낌을 고스란히 살리기 때문에 (고객)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감각적이고 가성비 높게 감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복도나 거실 등 넓은 공간에 걸기 좋은 가로 90㎝, 세로 130㎝ 정도의 대형 포스터는 액자를 포함해 20~30만원대, 좀 더 작은 가로 50㎝, 세로 70㎝ 정도의 포스터는 10~20만원대에 마련할 수 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숲, 바다, 강 등 자연을 배경으로 한 볼프강 틸만스의 아트 포스터와 비행기에서 위스키를 먹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 실린 윌리엄 이글스턴의 포스터가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어느 곳에서나 잔잔하게 어울리는 클로드 모네의 아트 포스터도 스테디셀러라고 한다. 김 대표는 “일반 가정에서는 주방과 거실 사이, 소파 위 벽 등에 작품을 많이 거는데, 요즘은 그림을 꼭 벽에 걸지 않고 작품 여러 개를 바닥에 놓아두고 자연스럽게 연출하기도 한다”며 인테리어 팁을 전했다.
거실 한 면은 티브이, 반대편은 소파라는 한국형 거실 인테리어의 공식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최근엔 다른 시도를 하는 이도 많다. 티브이 대신 무엇을 걸 수 있을까.
넓은 벽면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시스템 선반을 짜서 넣는 것이다. 2010년대 초반 북유럽 인테리어가 유행할 때부터 유명세를 이어온 스웨덴 브랜드 ‘스트링’의 시스템 선반이 대표적이다. 컬러풀한 색감의 몬타나의 박스형 선반이나 깔끔한 비초에 선반 등도 인테리어 전문가들이 자주 언급하는 제품이다. 최근에는 국내도 해외 브랜드 못지않은 품질과 디자인 선반이 출시되고 있다.
언커먼하우스의 대물림 시스템은 40년간 가구를 제작해온 아버지와 딸이 대를 이어 작업한 시스템 선반이다. 단단한 결의 나무로 만든 대물림 시스템은 가로 80㎝ 사이즈의 선반과 지지대, 황동으로 만든 브래킷 등으로 구성된 선반 하나가 한 개의 유닛이다. 90㎝, 120㎝, 180㎝ 등 다양한 사이즈의 세로 기둥 두 개에 선반을 여러 개 부착하면 좀 더 수납을 많이 할 수 있는 열을 만들 수 있다. 유닛 한 개, 혹은 하나의 열에서 시작해 가로나 세로로 시스템을 확장할 수 있다. 선반 외에 수납장을 다는 것도 가능하다. 공간에 따라 여러 형태로 주문이 가능하고, 살면서 규모를 확장해갈 수 있다는 점이 시스템 선반의 장점이다.
언커먼하우스의 정영은 대표는 “시스템 선반은 누가 쓰는지에 따라 용도가 조금씩 달라지는 점이 재미있다”고 설명했다. 고객들의 사용 후기를 살펴보면 책장이 되기도 하고, 술·찻잔 등 본인이 수집하는 것들을 올려두는 장식장이 되기도 한단다.
선반 ‘시스템 000’의 스테인레스스틸 버전. 레어로우 누리집 갈무리
깔끔한 형태의 레어로우 시스템 선반도 인테리어 마니아들의 위시리스트에 자주 오른다. 언커먼하우스 대물림 시스템이 따뜻한 나무 느낌이라면 금속성이 강조된 레어로우는 좀 더 모던한 느낌이다. 3만원대부터 시작하는 가로 60㎝ 선반부터 벽면 지지대와 기둥, 거울, 바구니, 옷걸이, 서랍 등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구성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걸 수 있다. 윤소연 아파트멘터리 대표는 “요즘 힙한 사람들은 컬러풀한 러그를 작품처럼 거실에 걸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인스타그램이나 이미지 공유 플랫폼 핀터레스트 등을 검색하면 바닥의 러그를 벽으로 옮겨놓은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인테리어 유튜버 ‘나르’ 옥수정씨는 “커튼도 큰 틀에선 벽의 연장”이라며 벽을 뚫어 무언가를 거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 커튼으로 가장 손쉽게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은한 꽃무늬부터 벽에 과감하게 시도하기 어려운 레트로풍의 체크 커튼 등 기분과 계절에 따라 바꿔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덴마크 디자인 브랜드 무토의 옷걸이. 무토 누리집 갈무리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추구한다면 독특한 모양의 옷걸이나 작은 선반을 포인트로 걸어도 좋다. 특히 무토, 헤이 등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톡톡 튀는 색감의 옷걸이는 물건을 거는 용도는 물론 평소 빈 벽일 때에는 장식품처럼 기능한다. 로얄디자인, 노르딕네스트 등 인테리어 직구족들이 자주 찾는 사이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