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소설·드라마에 녹아든 떡 이야기
구한말 선교사들 번역 결과 ‘빵→떡’
당대 풍습과 생활상 대변한 떡
떡, 드라마 속 갈등 드러내는 단골 소재
구한말 선교사들 번역 결과 ‘빵→떡’
당대 풍습과 생활상 대변한 떡
떡, 드라마 속 갈등 드러내는 단골 소재
조롱이떡국. 클립아트코리아
웬 떡일까! 서양떡, 호떡, 왜떡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개신교인이 아니어도 귀에 익은 유명한 성경 구절이다. 영문판 성경에는 ‘브레드’(bread·빵)인데 어째서 ‘떡’이 되었을까? 한국인의 주식인 ‘밥’이 더 쉬운 번역이 아닐까? 문학평론가 이어령 교수는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에서 40일을 단식한 예수 앞에 나타난 마귀가 돌을 건네며 떡으로 바꿔보라고 시험하는 ‘마태복음 4장’을 살핀다. 이 교수는 만약 돌로 밥을 지어보라고 번역했다면, 뜻은 전해져도 돌덩어리에서 빵 덩어리로 이어지는 이미지 연상이 깨어질 것이고, 매일 먹는 양식을 의미하는 빵을 어쩌다 먹는 떡으로 옮긴 것 역시 ‘잘못 번역하는 과오’라고 했다. 요즘 같으면 ‘빵’이라고 옮겼겠지만,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성경을 번역한 개신교 선교사들에겐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1888년 조선에 들어와 1892년부터 번역에 참여한 선교사 제임스 게일은 ‘한국에는 빵도 없고 양도 없는데 이를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시기상 빵이 있긴 했으나 백성에게 익숙한 음식은 아니었다. 임오군란 때 제 나라로 돌아갔던 일본인 관리와 상인들이 1883년 한반도에 다시 들어와 한성에 거주지와 상점을 조성하면서 일본식 빵(팡·パン·포르투갈어 팡 ‘pão’에서 유래)도 들어왔다. 밀가루 공장이 들어선 1920년대가 되어야 ‘앙빵(팥빵)’, ‘다마고빵(계란빵)’, ‘겐마이빵(현미빵)’ 등 빵이라는 단어가 퍼졌다. 그때 빵 역시 일상식으로 자리 잡기 이전이고, 우리말로 옮기는 성경에도 적절치 않았을 테다.
명절 설을 앞두고 손님이 주문한 가래떡을 뽑고 있는 영월 ‘세천년방앗간’의 주인 원성희씨.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웃집 방아 찧는 소리 선교사 게일은 <춘향전> <구운몽> <심청전> 등을 번역해 영어 문화권에서 출판하고 우리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책도 여러 권 썼다. 그 중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에는 설 풍속에 대한 재미난 관찰이 있다. “(이곳에선) 나이 먹는 걸 태양이나 달의 절기에 근거하여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설날 떡국을 몇 번 먹었느냐’로 결정했다.” 조선의 나이 계산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과장 섞인 너스레를 떠는 이방인에 앞서, 이 풍습을 시로 남긴 이가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떡국에 ‘첨세병’(나이를 더하는 떡)이라 별명을 붙이고 “천만번 방아에 쳐 눈처럼 둥그니 저 신선 부엌의 금단과도 비슷하네. 해마다 나이를 더하는 게 미우니 서글퍼라. 나는 이제 먹고 싶지 않다네”라고 노래한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살이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거문고의 명수 백결선생은 설을 앞두고 이웃집 방아 찧는 소리가 들리자, 떡을 장만하지 못하는 가난한 살림을 한탄하는 아내를 위로하려고 거문고로 떡방아 소리를 내었단다. 한편 떡방아 소리가 담을 넘지 않게 조심조심 떡을 만들어 먹던 시절이 있었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 <미망>의 한 대목이다. “가끔 몰래 떡도 해 먹었다. 동네 눈치가 보여 떡을 철썩철썩 치지 못하고 떡메로 지그시 누르고 문질러서 겨우 꼴을 만든 조롱이떡으로 떡국을 끓였더니 풀어지고 입천장에 눌어붙어 못 먹겠다고 불평할 만큼 입맛들도 여전했다.” 개성의 거상 전처만이 아끼던 손녀 태임은 사업을 벌여 독립군 자금을 대었고, 쌀 수탈이 극심했던 일제강점기 말에도 여기저기 흩어진 일가친척을 모아 먹일 만큼의 여유는 있었다. 대를 이은 부잣집에 인심이 박하지 않았음에도 동네 눈치를 보았다는 배경에는 일제의 설 말살 정책이 있다. 박완서 작가는 “도시에서는 떡 방앗간의 영업을 못 하게 했고 농촌에서는 떡 치는 소리만 들려도 고발의 대상이 됐다”며 에세이를 통해 그 시절을 회고한다.
조롱이떡. <한겨레> 자료 사진
떡으로 빚은 갈등 눈사람 모양의 귀여운 조롱이떡이 고부갈등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일일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57.3%)을 기록한 임성한 작가의 <보고 또 보고>(MBC)는 1999년 2월16일 설 당일 방영분에서 극 중 개성 출신 시할머니(사미자)가 조롱이떡 만드는 시범을 보인다. 큰 손주 며느리 은주(김지수)는 나무칼로 작은 떡 조각의 허리를 눌러 능숙하게 모양을 만들고 칭찬을 듣는데, 맞은편 시어머니(김민자) 표정이 뚱하다. 결혼을 모질게 반대했던 며느리와 함께 사는 것도 거북하고 살림까지 사사건건 비교당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은주는 나름 잘 보이고 싶어서 결혼 전에 개성음식 전문 식당에서 배워 둔 기술을 써먹는 중이고, 떡 허리를 연신 끊어먹는 시어머니에게 “어깨에 힘을 빼고 살살 굴리시라”고 조언한다. 드라마의 인기를 타고 조롱이떡에 대한 관심까지 급상승했다. 2008년 2월 설 특집극으로 방영된 김정수 작가의 <쑥부쟁이>(MBC)에는 한국형 불효자식이 총출동한다. 자만심 가득한 자수성가형 장남, 주식투자로 파산한 차남, 사고만 치고 다니는 삼남, 형편이 넉넉지 않은 장녀와 각각의 배우자들 때문에 애가 타는 늙은 부모의 이야기는 방송 후, 소설로 출간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표지에는 ‘<쑥부쟁이>를 읽고 밝게 웃을 수 있다면, 당신은 효자입니다!’라는 홍보 문구가 들어갈 정도였다. 여기도 떡이 등장한다. 큰아들 영일(현석)네 집에 들른 창순(권성덕)과 순심(김용림)이 아침상으로 찰떡과 우유를 받고 황망해 하는 장면이다. 속병이 재발한 창순은 밥을 달라 청하지만 큰며느리 수희(김영란)는 “저희는 밥 안 먹은 지 오래되었다”며 떡을 권한다. 김정수 작가의 드라마에서 밥을 소홀히 다루는 인물은 부정적으로 그려지는데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드라마 의 한 장면. 한서진(염정아)네 이웃으로 이사를 온 이수임(이태란)이 이사 떡을 건네고 있다. 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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