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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오징어눈깔 vs 문어눈깔? 아니, 떡볶이!

등록 2021-02-19 07:59수정 2021-02-21 12:53

떡볶이. 박찬일 제공
떡볶이. 박찬일 제공
기괴한 안주벽(癖)이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난 사실 음식을 먹기 위해 안주를 시키는 쪽이라 그 벽을 다 이해하진 못한다. 왕년에 전설의 선수들은 사이다 ‘크라스’(글라스를 이렇게 발음한다)에 소주 25도짜리 반병을 따르고, 손등에 소금 몇 알 올려서 쓱 핥곤 했다. 테킬라 마실 때와 비슷하다. 진짜로 그걸로 충분해서 그런 사람도 있고, 더러는 겉 폼으로 그랬다. 전자라면 상당히 위험하다. ‘알중’(알코올 중독)의 길은 대개 안주를 멀리하면서 시작되니까. 꼭 오징어눈깔(실은 이게 입이다)만 고집하는 알중 술꾼도 있었다. 가겟방 앞 평상에 앉아서 스테이플러로 푹 찍어서 벽에 걸어놓은 안주를 뜯어 먹는 식인데, 오징어눈깔을 입에 넣고 굴리면서 퉤퉤, 뼈만 뱉어내는 위인이었다. 이 위인을 위해서 주인아줌마가 떨어지지 않게 주문을 해놓고 있었다. 장마철이 되면 오징어눈깔에서 눅눅한 곰팡냄새가 났다. 좀 다른 얘기지만, 고흥 녹동항에는 문어 눈깔만 구워 파는 집이 있다. 몇 년 전에 우연히 들러서 한잔 마셨는데, 올겨울에 가보니 여전했다. 당시 아줌마가 허리가 아파서 얼마 못 하겠다고 하셨는데, 이번에 보니 멀쩡해 보이시는 게 아닌가.

“어떻게 나으셨소?”

“낫긴 뭘 나서요. 참는 거지.”

여전히 문어 장사하는 동생에게서 문어눈깔이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이 집에만 문어눈깔이 들어오는 이유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문어눈깔 구이 파는 집은 이곳밖에 없을 것 같다. 문어눈깔에 양념을 한 후, 수제 철판을 용접한 후 페인트를 칠해서 만든 아주 특별한 탁자에 앉아서 구워 먹는다. 가게는 바람에 이기도록 낮은 지붕을 하고 있고, 어항 풍경이 그렇듯 신산한 노동이 군데군데 눈에 들어온다. 갯가에서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나그네들은 더 싱숭생숭해지는 그런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봄에 다시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

시장에서 술 마시는 건 선수이거나 돈이 없거나 둘 중 하나다. 광장시장도 원래는 아주 끝내주는 저렴한 한국식 타파스 바가 줄지어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요새는 빈대떡, 육회가 유명세를 얻는 바람에 골목 자체가 시끌벅적해져서 일부러 안 가는 편인데, 하여튼 알아주는 낮술의 전당, 선수의 가나안이다. 굳이 광장시장이 아니어도 시장에 가면 언제든 값싸게 술을 마실 수 있다. 나는 진안주 건안주 따지지 않고 아무거나 안주로 먹을 수만 있으면 다 좋다는 주의다. 분식이 그중 하나다. 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예전에는 분식집에서도 더러 술을 팔았다. 물때가 낀 플라스틱 잔에 소주를 따라 잔술로 팔고, 안주는 뭐 라면이나 찐만두(공장제품일 것이다.), 철판에 볶고 있는 떡볶이가 고작이었다. 술집인지 분식집인지 애매한 포지션의 그런 가게가 더러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오리알을 삶아 파는 분식집이 우리 동네에 있었는데, 동네 아저씨들이 애들 사이에 앉아서 그걸 까서 소금 찍어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아주 가관이었다.

기왕 분식을 파는 집이라면, 리어카에 포장 둘러놓은 집이 좋다. 서서 마시는 거다. 미지근한 소주를 한 병 따고, 떡볶이를 시켰다. 요새는 어묵 넣은 떡볶이가 거의 정형화되고 있는데, 오래전에는 어묵 시켜서 떡볶이에 넣어 먹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흐물흐물하게 푹 익은 사각어묵을 졸아붙어 진득한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안주가 여간 좋은 게 아니었다. 그리고는, 국물로 매운 속을 다스리곤 했다. 철판 떡볶이는 팔리면 새로 싹 만드는 게 아니라, 익어서 바로 팔 수 있는 놈들은 한쪽으로 밀어놓고 미리미리 다른 쪽에서 떡을 새로 넣고 국물도 부어서 만들어가곤 한다. 손님이 보거나 말거나 다시다며 설탕을 봉지째 붓는 장면은 보너스였다. 뭐, 그런 거지. 떡볶이가 그럼 양지 육수 내어 만들겠는가. 떡볶이란 산업시대의 음식이고, 당연히 그런 초자연적인(?) 물질이 맛을 내게 되어 있다. 아무개 유명한 집은 비결이 별 게 아니라 라면수프를 넣는 것이라던가, 물엿을 처음 떡볶이에 넣을 생각을 한 아무개집은 또 어떻고, 다시다의 출시가 떡볶이에 복잡다단한 플레이버(풍미)와 테이스트(미각)와 피니시(잔향)를 주지 않았던가.

어쨌든 떡볶이를 집에서 만들어서 안주로 하는 것도 참 좋다. 맛있지, 얼큰하지(국물떡볶이도 있다!), 싸지, 옛날 생각나지, 술 안 먹는 식구들도 간식 삼아 먹지. 안주 떡볶이의 비결 몇 가지. 파를 갈아서 넣는다. 떡볶이 양념에 깊고 유혹적인 맛을 주기 때문이다. 라면수프? 좋다. 아예 따로 판다. 어묵이 중요하다. ‘얄브리한’(얇디얇은) 사각어묵을 사되, 싸구려일수록 맛있다는 게 정평이지만 가능하면 봉지 뒷면에 ‘국산 생선’이라고 적힌 게 맛이 깊다. 아마도, 싸구려일수록 맛있다는 얘기는 튀긴 기름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진하고 묵직해진, 오래 쓴 기름 맛에 우리가 더 끌리는 게 아닐까 싶어서 불안, 불안!

기왕에 맛을 더 보고 싶다. 분식집의 사이드디시 에이스, 바로 튀긴 만두다. 이것이야말로 ‘싸구려’일수록 더 맛있다. 기억 때문이다. 딱딱한 싸구려 튀긴 만두를 떡국(떡볶이 국물)에 적셔 먹는 맛이란! 이건 튀김은 바삭해야 한다는 진리를 벗어나, 소스에 적셔져서 조금씩 무너질 때의 식감을 즐기는 거다. 마치 탕수육이 ‘부먹’일 때 또 다른 튀김의 맛을 선사하는 것처럼. 자, 건배.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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