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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황학동 곱창집 아주머니는 ‘요리의 과학자’였다

등록 2021-03-04 07:59수정 2021-03-04 09:54

곱창볶음을 만들어 먹으면 이만한 안주도 없다. 클립아트코리아
곱창볶음을 만들어 먹으면 이만한 안주도 없다. 클립아트코리아

얼마 전에 용두동 주꾸미골목을 간 적이 있다. 대개 무슨 ‘골목’이 생기면 원조 다툼이 벌어진다. 원조도 모자라 시조, 태조, 원원조에 고조라고 써놓는다. 아니면 ‘1박2일 방송’ 싸움도 벌어진다. 속초 갯배 타는 청호동 언저리엔 이승기가 다녀간 집이 열댓 곳은 되는 것 같다. 진짜는 한군데일 텐데, 그렇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복불복이다. 촬영하기 좋고, 섭외 잘 된 집이 간택되었을 게다. 하도 신문, 방송, 잡지에 온갖 매체가 취재하자고 오니, 시큰둥해진 어떤 집은 나중에 땅을 쳤을지도 모른다. 이런 푸념을 하면서.

“1박2일 뭐라고 해서, 제길 1박2일 동안 찍는다는 얘긴 줄 알고 거절했지.”

하여튼, 용두동에서 원조 격인 할머니 말씀을 듣는데 옛날 장 보던 얘기가 나왔다. 중앙시장에서 주꾸미며 반찬거리며 사들였다고 한다.(주꾸미 스토리는 다다음 회쯤에) 중앙시장이 어드멘가. 청계8가도 되고, 황학동이라도 하고, 신당동이기도 하고, 옛날엔 중고시장이 있어서 ‘개미시장’이라고도 했다. 복잡한 미로가 개미굴 같았고, 사람들이 개미처럼 몰려든다고 해서 그리 불렀다. 고등학생 시절 해적판을 사러 드나들었는데,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애들은 잠바 입은 아저씨가 불러 세웠다.

“어이, 너 여기 왜 왔어. 가방 까봐.”

“왜요.”

“(뒤적거리다가 뭔가를 발견한다)너 이거 어디서 났어.”

훔친 물건 팔러 나온 놈들 잡아들이는 도범계 형사였다. 도둑놈 검거 전문. 당시 말로 ‘후리가리’. 일제 단속이다. 대도 조세형이나 신창원을 잡으면 좋겠지만 머릿수 채우기에는 중고시장에서 좀도둑 잡는 게 제일 쉬웠을 것이다. 이 동네로 말할 것 같으면, 중고품은 물론이고 음식도 제일 허름하고 싼 건 다 팔았다. 특히 돼지곱창볶음이 일품이었다. 열개가 넘는 포장마차 같은 곱창집이 몰려 있어서, 초저녁이면 벌써 매운 연기가 시장을 가득 채우곤 했다. 아줌마들이 얼마나 억센지, 골목을 돌파하기도 전에 세 번째 집 정도에서 냉큼 팔뚝을 잡아 채였다. 이 아줌마들은 슈퍼맨이었다. 한 손으로 곱창을 볶으면서, 한 손을 길게 뻗어 벗어나려는 손님을 목로에 앉혔다. 누런 알전구가 환하게 포장마차를 밝혔고, 철판에는 시뻘건 양념을 뒤집어쓴 곱창이 익었다. 입술이 부르트게 매운 곱창에 맑은 소주 반병을 마시면(그때는 잔술도, 진로 반병도 팔던 시대였다), 딱 좋았다. 너, 그때 고등학생이었다며? 이런 건 묻지 말자.

돼지곱창이란 게 워낙 이취가 있다. 이걸 잘 씻어서 삶은 후 볶아낸다. 연탄불을 때서 요리하는데, 초저녁에 가면 불이 덜 붙어서 매캐한 가스 냄새가 났다. 싼 음식이니, 얼마나 빨리 볶아내는가 하는 게 중요했을 것이다. 이런 쪽의 요리라는 게 다대기라고 부르는 뭐든 다 되는 엑기스, 종합믹스 양념 하나면 끝나는 법이다. 철판에 식용유 좀 뿌리고 삶은 돼지곱창 한 줌, 양파며 깻잎 따위를 촤악 뿌린 후 비장의 양념을 푹 퍼서 끼얹고 주걱으로 볶다가 당면을 넣어서 양념이 배게 한 후 하얀 점이 드문드문 박힌 연두색 접시에 휙, 담아냈다.

그게 그거 같은데 집집마다 맛이 좀 달랐고, 평판이 생겼다. 내가 잘 가던 단골집은 양념 맛도 맛이지만, 묘한 기술이 있었다. 철판에 당면을 배합한 후 볶을 때 마지막에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 그러면 당면이 들러붙는다. 보통은 이 상태까지 가면 고춧가루가 타고, 당면도 타서 망치게 마련인데, ‘기술’을 넣는 찰나이기도 했다. 매운 양념이 적당히 타면서 당면도 누룽지가 되는 절묘한 타이밍에 식용유를 휙, 한번 살짝 뿌리면서 쓱쓱 긁는 것이었다. 지글지글거리면서, 양념이며 당면, 심지어 곱창 표면도 한번 지져지는 효과를 한꺼번에 얻는 기막힌 묘수였다. 생각해보면, 단골집 아줌마는 부엌의 과학자였다. 요새 유튜브에서 난리 난 마이야르 반응인가 뭔가 하는 그런 걸 이미 구사하고 있었던 거다. 재료는 자욱하게 타 붙었지, 조금 더 볶았으니 재료의 수분이 날아갔으므로 입안에 뻑뻑하게 말리면서 씹히는 물리적 감촉 있지(그거 아시지 않는가. 꾸들꾸들한 당면이 입천장에 붙는 맛), 넉넉히 넣었을 설탕과 고추장도 캐러멜라이즈 효과를 냈지. 끝판이었다. 여담입니다만, 여러분은 이 대목에서 요리과학을 절반은 배우신 셈입니다….

연전에 이 동네를 다시 찾았다. 재개발해서, 명물을 거의 잃었다. 중고시장은 동묘 쪽으로 옮겨갔다. 그래도 브라운관 중고 텔레비전이며 독수리표 천일 전축에 커다란 일제 녹음기와 누가 사갈까 싶은, 두 손가락으로 눌러 끼우는 옛날 핸드폰 충전기 같은 걸 파는 골목을 늙은 아저씨들이 지키고 있었다. 곱창 골목은 뭔 캐슬인가 하는 아파트가 들어서서 거의 사라졌고, 그나마 몇 집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듯, 형광등을 켜고 있었다. 곱창을 볶으면서 한 손으로는 손님을 불러 앉히던 아줌마의 신기도 이제 없으리라.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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