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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통에 계절을 담는다”…나는야 ‘홈 김치족’

등록 2021-04-15 04:59수정 2021-04-19 15:41

내 입맛 대로 맞춤 가능
직접 담가 SNS 올리기도
“어렵지 않아…성취감은 덤”
양준호씨가 깻잎 김치를 담그고 있다. 양준호 제공
양준호씨가 깻잎 김치를 담그고 있다. 양준호 제공

외식과 포장·배달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집에서 김치를 담가 먹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부터 유명 연예인, 셰프들까지 김치 판매에 가세하면서 시장의 판도가 넓어졌다. 그만큼 소비자의 선택지도 다양해졌다. 담가 먹는 김치에서 가까운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그때그때 사 먹는 김치로 바뀐 것이다. 1인 가구의 증가 등으로 김장을 포기하고 김치를 사 먹는 ‘김포족’의 등장 후 김치 시장 성장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이런 추세에도 불구하고 ‘사 먹을 만큼 사 먹어 봤지만 썩 맘에 들지 않는다’, ‘비슷비슷한 맛과 향이 물린다’는 등의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다. 최근엔 위생 논란까지 가세했다. 이른바 ‘홈 김치족’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 것.

코로나19 사태도 한몫했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제대로 차려 먹는 ‘한 끼의 소중함’을 아는 이가 늘어난 탓이다. 대표적 ‘슬로 푸드’인 김치를 굳이 담그는 이들을 만나 ‘내가 김치 담그는 이유’를 들었다

경상도식 매운 김치가 그리워

커피 생두 수입유〮통 업체의 이사인 양준호(50)씨는 요즘 낙은 ‘제철 김치 담그기’다. 김치를 담근 후 에스엔에스(SNS)에 본인이 담근 김치의 인증샷과 설명을 올리는 것이 일상이 된 지도 일 년이 넘었다. 한 주에 한 종류 김치를 새로 담가 해시태그 ‘#한주에김치하나씩’을 다는 것으로도 소문이 자자하다.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양씨가 김치를 직접 담그기 시작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코로나 시국, 집에 가족과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내 입맛에 맞게 커스터마이즈한 김치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양씨는 홈 김치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경상도 출신인데다 워낙 매운 음식을 좋아하거든요. 시중에서 판매하는 김치는 제 입맛에 덜 매워 성에 차지 않았어요. 매운 청양고추 가루와 짭조름한 젓갈을 이용해 어렸을 때 먹던 매운 김치를 담가 먹은 것이 홈 김치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그는 직접 담가 먹는 김치의 또 다른 매력으로 ‘위생’을 꼽았다. “예전에는 인터넷을 통해 알음알음 소포장 김치를 주문해 먹기도 했어요. 하지만 무슨 재료가 어떤 과정을 통해 김치에 들어가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위생 상태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 뒤로는 주문하지 않게 되더군요.”

직접 만든 김치를 가족들, 그리고 주변인들과 나눠 먹을 때가 가장 기쁘다는 그가 가장 최근에 담근 김치는 나박 물김치와 겉절이, 깻잎 김치다. “지금 시기에는 제주 월동 무가 단단하고 달아요. 햇무보다 훨씬 맛있고요. 월동 무를 또박또박 썰고 알배기 배추, 미나리, 쪽파, 배를 넣어 시원한 맛을 더했어요. 월동 무는 4월 이후에는 나오지 않으니 지금이 김치 담그기 가장 좋아요. 동치미와 깍두기 담그기에 적기입니다.” 그는 김치 담그기를 “계절을 김치통 속에 담아 오래도록 보관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봄이라는 찬란한 계절을 나박 물김치 한 사발로 기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혼자 해냈다는 성취감

경기도 판교의 IT회사에서 일하는 박성윤(31)씨는 수원 본가에서 독립하면서 비로소 ‘나 홀로 살림’을 차리게 됐다. 마땅하게 할 줄 아는 요리도, 근처에 썩 먹을만한 음식점도 없는 동네다 보니 장을 봐 집에서 밥을 지어 먹는 일이 늘었다. 배달 음식과 사다 먹는 음식에 물려 생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반찬은 역시 김치였다. 김치 한 가지로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그제야 깨달았다고 했다.

“수원집에서 김치를 싸 들고 오는 것도 일이더라고요. 사 먹는 김치가 생각보다 비싸다는 것도 그때 알았어요.” 지난겨울, 그는 용기 있게 ‘혼 김장’을 감행했다. 김장을 혼자 한다는 두려움도 잠시, 근처 마트에서 김칫소 양념을 판매한다는 것을 알고 난 뒤 용기가 생겼다. “소포장으로 판매하는 절임배추를 사서 양념에 무치기만 했는데도 김치가 되더라고요. 혼자 김치를 담갔다는 성취감과 기쁨에 겨우내 그 김치만 먹었던 기억이 나요.” 지난겨울, 성공했던 김장의 추억을 살려 박씨는 올봄에는 여름에 먹기 좋은 열무 물김치를 담을 생각이다.

겉절이 김치. 김민지 제공
겉절이 김치. 김민지 제공

엄마의 김치 맛 이어 가고 싶어

식공간 디자인 그룹 꾸밈의 김민지(42) 대표는 영화와 광고 현장 등에서 푸드 스타일링을 하는 푸드 스타일리스트로도 유명하다. 그가 김치 담그기에 빠진 이유는 대중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고 싶어서다. ‘한끗’의 섬세함을 살리는 작업을 하다 보니 시판 김치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치는 맛을 좌우하는 요소가 정말 다양해요. 어릴 때부터 먹어 온 엄마의 그 김치 맛은 시판 김치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맛이에요. 엄마의 김치 맛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김치 만들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생각보다 김치 만들기가 어렵지 않아요. 겉절이나 계절 김치를 늘 담가 먹게 된 계기지요.”

그가 가장 자주 해 먹는 김치는 겉절이다. 바로 무쳐 숙성 과정 없이 먹을 수 있는 데다 샐러드처럼 쉽게 만들 수 있어서다. “냉장고에 다진 마늘, 생강, 새우젓과 좋은 태양초 고춧가루는 늘 상비해두고 있어요. 언제든 무쳐 먹을 수 있도록요.”

최근 그가 담근 김치는 봄동 겉절이와 알배기 배추 겉절이, 고들빼기김치다. “강원도 양구에서 직접 캐온 고들빼기로 담근 김치는 쌉싸래하면서도 달큰한 맛이 일품이에요. 냉장고에 넣어두면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해 언제나 든든한 밑반찬이 됩니다.” 기름에 갓 구운 전과 탁주, 고들빼기김치 삼합, 그가 추천한 최애 조합이다.

백문영 칼럼니스트 moonyoungba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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