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검색창에 ‘박해일’을 치고 엔터를 누른다. 포털사이트 인물정보란엔 아직 ‘그 사진’이다.
2016년 7월 26일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박선영의 씨네타운〉에 출연한 배우 박해일은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러 동네 사진관에서 찍은 증명사진이 너무 잘 나와서 포털사이트에 직접 수정을 요청했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담담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연기하지 않는, 그저 공적인 규격에 맞춘 틀 안에 들어가 있는 배우의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지갑 속 신분증 사진을 엿보는 듯해 묘한 기분도 든다. 아무튼, 그 증명사진은 그의 마음에 들었고 여전히 그런 모양이다.
지난 3월 한국조폐공사는 보안 기능이 대폭 강화된 새 주민등록증 발급을 홍보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신규 발급이나 분실로 인한 재발급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사진 등 상태가 불량해 갱신을 희망하는 국민은 누구나 새 주민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고 공사는 강조했다. 조폐공사 최광언 아이디(ID)사업처장은 “새 주민증을 오이시디(OECD) 회원 37개국 신분증과 비교해본 결과 보안성이 더 우수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잠깐 시간을 내 새 주민증으로 바꾸는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솔깃했다. 하지만 증명사진을 새로 찍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색한 정면 얼굴을 찍히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새 주민증을 만들어도 결국 보안 기능이 강화된 어색한 얼굴이겠지. 반 측면으론 나를 증명할 수 없단 말인가!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이른바 ‘엠제트(MZ)세대’는 마음에 드는 증명사진을 찾는데 훨씬 적극적이다. 증명사진에 색과 개성을 더하는 혁명을 이끈 ‘주식회사 레코더스’ 대표 작가 김시현의 ‘시현하다’ 이후, 최근 2~3년 사이 ‘소장용’ 증명사진이 트렌드로 떠올랐다. 유년기부터 온라인 환경에서 디지털 이미지를 접한 세대에겐 사진이란 복제와 변형, 배포가 기본인 매체다. 사진과 실물의 내가 같은 사람임을 입증하는 전통적인 증명사진의 개념도 온라인에선 더 자유로워진다. 정말 본인인가 싶을 정도로 리터치를 한 증명사진도 자신의 다양한 모습 중 하나로 수용하고, 평소와 다른 자신을 연출해 색다른 나를 만나는 증명사진을 찍기도 한다.
“눈에 확 띌 정도로 잘생긴 사람이 지나가니까 학생들이 그러더라. ‘내가 저 얼굴이면 사진 만장 찍겠다’고.” 성균관대 문화예술미디어융합원 강혜원 선임연구원의 말이다. 나라면 잘생긴 얼굴로 아이돌이나 배우가 되는 소망부터 떠올릴 텐데. 왜 사진일까?
“요즘 대학생들은 학과 단톡방 ‘프사’(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에서 사용자를 대표하는 프로필사진)로 먼저 만난다. 프사와 단톡방 대화, 인스타그램으로 자신과 맞을지 안 맞을지 살펴보고 친구를 사귀고 그 후에 오프라인 모임을 결정한다. 우리가 마치 여러 명이 모인 술자리에서 누구 옆자리에 앉을까. 누구를 피할까 살피는 것처럼, ‘프사’로 나랑 맞는지 아닌지 재보는 것. 사진으로 탐색하는 것 자체가 인간 교류의 한 부분인 거다.” 강 연구원의 분석이다.
또, 강 연구원은 “잘 나온 사진 한장이, 인간관계를 쌓는 술자리 열 군데보다 본인들 삶에 실질적으로 훨씬 중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잘생긴 외모를 이용해 무언가 되고자 한다면, 우선 잘생김을 널리 알릴 사진부터 온라인에 찍어 올려야 하는 것. 학생들의 반응은 합리적이었다.
10~20대 사이에서 ‘증사 맛집’(증명사진 잘 찍는 곳)으로 소문난 사진관들을 둘러보다 공통점을 찾았다. 출력한 증명사진을 다시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하도록 분위기 있는 소품으로 꾸민 포토존이다. 잘 나온 증명사진은 이 공간에서 기념사진이 되고, SNS에 게시되어 ‘하트’가 찍히고, 댓글이 달리며 비로소 완성된다.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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