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ESC] 어린이에겐 ‘어린이다운 가구’가 필요해

등록 2021-06-03 04:59수정 2021-06-03 09:46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 받으며
어린이 가구 의미도 달라져
가구이자 오브제·장난감 역할
성장 과정서 취향 만드는 첫 단추
아르텍의 어린이용 ‘N65’ 체어와 ‘E60’ 스툴. 루밍 제공
아르텍의 어린이용 ‘N65’ 체어와 ‘E60’ 스툴. 루밍 제공

‘어린이다운 가구’란 무엇일까? 어린이의 입장에서, 어린이의 생각에 높이를 맞추고, 성장 단계를 고려하는 동시에 디자인의 정도 또한 잃지 않는 가구야말로 진정 어린이다운 가구가 아닐까. 사실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는 시선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지 않다 보니 어린이 가구를 만들 때도 정작 사용자인 어린이에 대한 배려나 편의는 사실상 배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점차 어린이의 인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어린이 가구에 대한 디자인과 그 의미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대의 거장으로 불리는 유명한 디자이너들은 어린이 가구에 무척이나 진심이었다. 그들이 만든 어린이 가구의 시작은 대체로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국내 어린이가구 브랜드 바치의 ‘이사벨라’ 침대. 바치 제공
국내 어린이가구 브랜드 바치의 ‘이사벨라’ 침대. 바치 제공

찰스 앤 레이 임스 부부가 어린이 의자 겸 장난감으로 두 개의 합판으로 만들어진 ‘플라이우드 코끼리(Plywood Elephant)를 디자인한 건 1953년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곧바로 대중에게 선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소유한 사람은 그들의 딸인 루시아 임스가 유일했다. 그러던 중 2007년, 찰스 임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비트라가 1천 개를 한정 발매한 것을 계기로 대량생산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2008년부터는 현재의 다양한 플라스틱 버전도 생산됐다. 임스 부부는 그 후 태어난 손자를 위해서 굵은 철사 위에 알록달록한 나무 볼이 달린 옷걸이인 ‘행 잇 올(Hang it All)’을 만들기도 했다. CH24의자의 디자이너인 한스 J. 웨그너는 1944년, 자신의 친구이자 가구 디자이너인 보르게 모겐센의 아들 피터의 세례를 기념해 가구를 만들었다. 이름도 ‘피터스 테이블 포 키즈(CH411 Peter’s Table for Kids)’인 이 가구는 어린이의 안전을 위해 모서리를 둥글게 곡선으로 처리한 디자이너의 배려가 눈에 띈다. 가구 브랜드인 마지스는 2004년에 2~6살 아이들을 위한 가구와 소품, 오브제 등을 모은 ‘미투’ 컬렉션을 론칭했는데, 마지스의 대표가 자신의 손녀를 위해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로 아르니오가 2003년에 디자인한 강아지 모양 가구인 퍼피와 펭귄 모양인 핑기, 그리고 흔들 목마로도 사용할 수 있는 트리올리는 이 컬렉션을 대표하는 아이템이다.

어린이용 바르셀로나 체어. 르위켄 제공
어린이용 바르셀로나 체어. 르위켄 제공

그의 어린이 가구는 의자나 오브제인 동시에 장난감이어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무한하게 만든다. 스페인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인 하비에르 마리스칼 또한 미투 컬렉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인데, 고양이를 형상화한 ‘줄리앙 칠드런스 체어’와 8가지 얼굴 모양의 선반 받침으로 각기 다른 디자인의 선반을 완성할 수 있는 ‘라드릴로스’ 시리즈는 어린이의 취향과 개성을 존중하는 제품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 디자인 아이콘’으로 인정받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의자들 중에는 성인용 가구의 외형은 그대로 유지한 채 크기만 축소해 어린이 가구로 출시한 제품들이 많다. 하지만 단지 크기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체형과 눈높이에 맞는 가구도 생산됐다. 핀란드의 국민 디자이너인 알바 알토(Alvar Aalto)는 1933년에 디자인한 ‘스툴60’을 1935년에 아르텍(Artek)에서 대량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작은 사이즈의 테이블과 스툴, 의자도 함께 만들었다. 이 제품은 지금까지도 신제품과 빈티지를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60년에 베르너 팬톤이 디자인한 ‘팬톤 체어’는 일체형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의자다. 비트라(Vitra)는 1967년부터 팬톤 체어의 어린이 버전인 ‘팬톤 주니어’를 생산하고 있는데 성인용보다 훨씬 다양한 색상이 있다. 미스 반 데 로에가 디자인한 놀(Knoll)의 ‘바르셀로나’ 체어,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프리츠 한센의 ‘세븐 시리즈’ 체어,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카르텔(Kartell)의 ‘루 루 고스트(Lou Lou Ghost)’ 체어도 역시 성인용과 다를 바 없이 크기만 작아진 디자인 체어들이다. 루 루 고스트의 성인용 의자 이름은 루이 고스트(Louis Ghost)인데 주니어용의 이름을 위트 있게 바꾼 점이 인상적이다.

마지스의 ‘트리올리’. 루밍 제공
마지스의 ‘트리올리’. 루밍 제공

국내에도 대형 브랜드가 아니라 부모의 마음을 담아 디자인한 특별한 어린이 가구 브랜드가 있다. ‘스마일, 문(Smile, Moon)’은 디자이너 엄마, 아티스트 아빠가 디자인하고 40년 동안 가구를 만들어 온 외할아버지가 이를 현실로 만드는 어린이 가구 브랜드다. 선과 면, 그리고 도형을 이용한 디자인은 단순하면서도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수영장 사다리에서 영감을 받은 ‘래더 체어 포 키즈’가 대표 아이템인데 핀란드산 자작나무에 친환경 도장을 해서 더욱 믿음이 간다.

비트라의 ‘팬톤 체어 주니어’. 비블리오떼끄 제공
비트라의 ‘팬톤 체어 주니어’. 비블리오떼끄 제공

‘장인’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인 ‘바치(Bacci)’는 취미로 가구를 만들다가 어린이 가구까지 만들게 된 대표가 엄마의 마음으로 운영하는 브랜드다. 특히 어린이를 위한 ‘바치 포 칠드런’ 컬렉션의 가구는 활짝 핀 꽃 같은 프레임이 인상적인 침대를 비롯해 캔디처럼 달콤한 파스텔톤의 소파, 책장, 의자 등을 선보이고 있다. 제품마다 잭슨, 로이, 이사벨라 등 어린이들의 이름을 붙이는 점이 독특하다.

어린이들이 좋은 가구를 사용해 보는 것은 유년시절의 큰 추억이자 자산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소유하는 자신의 책상, 침대, 책장….어릴 때부터 함께한 가구들과의 추억은, 어쩌면 어른이 되어가며 만들어지는 취향의 첫 단추가 아닐까. 그 첫 단추를 근사하게 채워주는 것 또한 어른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일 것이다. 정윤주(라이프 칼럼니스트)

찰스 앤 레이 임스 부부의 ‘행잇올’. 비블리오떼끄 제공
찰스 앤 레이 임스 부부의 ‘행잇올’. 비블리오떼끄 제공

플라이우드 소재의 ‘엘리펀트’. 르위켄 제공
플라이우드 소재의 ‘엘리펀트’. 르위켄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숲 여행도 하고 족욕도 하고…당일치기 기차 여행 1.

숲 여행도 하고 족욕도 하고…당일치기 기차 여행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2.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쉿! 뭍의 소음에서 벗어나 제주로 ‘침묵 여행’ 3.

쉿! 뭍의 소음에서 벗어나 제주로 ‘침묵 여행’

[ESC] 지구에서 가장 오래 안 잔 사람이 궁금해! 4.

[ESC] 지구에서 가장 오래 안 잔 사람이 궁금해!

인간이 닿지 않은 50년 ‘비밀의 숲’…베일 벗자 황금빛 탄성 5.

인간이 닿지 않은 50년 ‘비밀의 숲’…베일 벗자 황금빛 탄성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