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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평랭’만큼 차갑진 않아도 맛있는 ‘차가운 국수들’

등록 2021-06-10 07:59수정 2021-06-10 09:41

각 나라 이색 냉면
한국처럼 극단적 찬 냉면 드물지만
일본 소바 대표적…서양은 샐러드 개념
안동국시 차게 먹는 ‘건진 국수’도 있어
평양냉면도 고명·육수 변주하며 발전 중
붓카케 소바. 호무랑 제공
붓카케 소바. 호무랑 제공

한국은 유독 면을 차게 먹는 나라다. 살얼음 동동 띄운 차디찬 육수에 면을 말아 먹는 건 한국 밖에선 찾기 힘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가운 냉면에 화들짝 놀라는 외국인들이 많은 이유다.

이렇게 차게 음식을 먹게 된 이유 역시 분명치 않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냉면이 지금과 같은 찬 음식은 아니었고, 그저 온기를 식혀 미지근하게 먹는 정도였다’는 것이 요리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른 나라의 식문화를 살펴봐도 냉면처럼 극단적으로 차가운 면 요리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예외는 분명 있는 법. 그나마 차게 먹을 수 있는 각 나라의 이색 냉면 요리를 모았다.

자루 소바. 조선호텔앤리조트 제공
자루 소바. 조선호텔앤리조트 제공

일본의 소바 대표적

일본은 유독 면 문화를 사랑하는 나라다. 우동, 소바, 라멘과 같은 다양한 면을 뜨겁거나 차게 먹는 문화가 발달한 곳인 만큼 우리나라의 냉면만큼이나 다양한 냉 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메밀로 만든 면을 찬 육수에 말아 먹는 평양냉면이 한국에서 사랑받듯이 일본에서는 뜨거운 여름철, 메밀 면으로 만든 차가운 소바 요리를 즐겨 먹는다. 대나무 발에 삶은 면을 담고 장국에 찍어 먹는 자루 소바, 국물에 말아 먹는 가케 소바, 면에 자작하게 국물을 뿌려 먹는 붓카케 소바까지 그 종류도 이름도 다양하다. 소박하고 가볍게 먹는 음식이지만 장국의 배합 비율, 그리고 얹는 고명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는 예민한 음식이기도 하다. 얹는 고명에 특별한 제한이나 기준은 없어 비교적 자유로운 음식에 속한다.

타이식 냉면 얌운센. 김남성 제공
타이식 냉면 얌운센. 김남성 제공

사시사철 더운 나라에서는 차가운 면 요리를 달고 살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을 테다. 하지만 타이의 경우는 다르다. 사계절이 없고 계절 별로 온도 차이가 크지 않은 환경에서 사는 만큼, 외부의 온도와 극심하게 차이가 나는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타이인들은 맥주나 청량음료도 차갑게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음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뜨거운 기운이 가신 정도, 시원한 느낌의 음식은 있지만, 냉면처럼 차가운 음식은 즐기지 않지요.” 타이 음식 전문점 ‘쿤쏨차이’ 김남성 오너 셰프의 설명이다. 열대 지방에서 더위를 식히기 위한 시원한 국수로 그는 ‘얌운센’을 꼽았다. 얌운센은 녹두로 만든 당면에 해산물이나 육류, 셀러리, 양파, 다진 고추와 고수 등을 넣고 만든, 샐러드의 일종이다. 실온 상태로 먹기도 하지만 당면의 열기를 한 김 식힌 뒤 시원하게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지근한 상태의 당면에 차가운 라임즙과 피시 소스를 넣어 온도를 적당히 맞추는 것이 관건이라고 김 셰프는 덧붙였다.

초당 옥수수 랍스터 파스타. 손영철 제공
초당 옥수수 랍스터 파스타. 손영철 제공

서양에선 샐러드 형태로

이탈리아에도 냉면이 있을까? 결론만 말하자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이탈리아 현지에서는 푸실리나 펜네 같은 쇼트 파스타 종류에 올리브유, 레몬 즙 같은 각종 향신료와 채소를 버무려 간단히 샐러드를 내기도 하지만, 국물이 자작한 형태의 찬 국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가운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냉 파스타’는 사실 친숙하다. 차가운 파스타 샐러드, 바질 페스토 같은 소스에 버무린 콜드 파스타처럼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토착화된 이탈리아 음식을 익숙하게 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보타르가’의 손영철 셰프는 ‘한국의 식재료를 이용해 이탈리아에도 없는 이탈리아 냉면을 만들어 보자’는 의도로 ‘초당 옥수수 랍스터 파스타’를 만들었다. 랍스터를 데친 스톡과 초당 옥수수, 크림을 함께 넣어 끓인 뒤 차게 식힌 소스에 성게 소와 트러플을 올린 ‘고급 이탈리아 냉면’을 구현했다. 여름이 제철인 초당 옥수수의 아삭한 식감과 달콤한 맛에 차가운 크림의 조화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듯한 풍미를 낸다고 그는 덧붙였다.

압구정 안동국시의 건진국수. 백문영 제공
압구정 안동국시의 건진국수. 백문영 제공

안동국시를 차게?

한국인의 차가운 국수 사랑은 유별나다. 냉면이 대표 주자로 나서서 그렇지, 각 지방의 양반가에서는 여름철마다 늘 차가운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손이 많이 가는 데다 얼음도 귀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양반가의 음식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경상북도 안동의 향토 음식 중 하나인 ‘건진 국수’는 그 생소한 이름만큼이나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면을 만들고, 차게 식힌 장국에 말아 내는 단순한 요리지만 그 조리법은 전혀 간단하지 않다. 칼국수 면의 절반 정도 되는 굵기로 가늘게 썰어낸 뒤 뜨거운 물에 빠르게 익혀 찬물에 식히는 과정부터가 그렇다. 과거에는 낙동강에서 잡은 은어를 고아낸 뽀얀 육수에 국수를 말아 냈으나, 은어가 귀해진 현재에는 멸치와 다시마를 기본으로 하는 멸치 육수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짭조름하고 맑은 멸치 육수에 간장을 넣어 깊은 맛을 더했다. 달걀과 김 정도의 단출한 고명이 전부지만 그 맛은 깊다.

우주옥의 독특한 평양냉면. 백문영 제공
우주옥의 독특한 평양냉면. 백문영 제공

차가운 국수라 하면 평양냉면을 빼놓을 수 없다지만, 냉면의 형태는 충분히 다양할 수 있다. 육수의 베이스에 따라, 면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것이 냉면의 놀라운 점이자 흥미로운 포인트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우주옥’에서는 곱게 만 메밀면 위에 수비드 방식으로 익힌 빨간 쇠고기 수육을 얹어 낸다. 일반적인 평양냉면이라기엔 다소 충격적인 비주얼이다. 겉모습만 화려하고 특별한 것은 아니다. 비프 카르파치오를 씹는 듯 부드럽게 입 안에서 뭉개지는 쇠고기의 식감, 툭툭 끊어지는 메밀 면의 풍미 역시 훌륭하다. 맑은 쇠고기 국물에 소금으로 간을 한 ‘청냉면’과 구수한 간장으로 간을 한 ‘진냉면’ 두 가지 모두 개성이 뚜렷하다. 스스로의 존재 가치가 확실한, 새로운 메밀 냉면의 시대가 도래했다.

백문영 객원기자 moonyoungba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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