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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 위해 죽으라’는 옛 논리 자위대·권력기구 안에 상존”

등록 2008-11-20 18:23수정 2008-11-22 11:30

일본을 대표하는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66)는 30년 넘게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수많은 당사자들을 일일이 인터뷰해 일본이 왜 어처구니없는 전쟁을 일으켰는지 탐구해왔다. 60대 중반 나이에도 왕성하게 집필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 일본 정치권과 자위대 지도부에 군국주의 시절의 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비판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66)는 30년 넘게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수많은 당사자들을 일일이 인터뷰해 일본이 왜 어처구니없는 전쟁을 일으켰는지 탐구해왔다. 60대 중반 나이에도 왕성하게 집필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 일본 정치권과 자위대 지도부에 군국주의 시절의 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비판한다.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일본 대표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
저서 130여권, 연 취재 대상 인원 4000여명.

일본을 대표하는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68)의 이력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런 수치가 나온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를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호사카라는 사람의 집요함과 끈질김을 잘 보여주는 수치다.

그러나 그가 일본에서 주목받는 것은 오타쿠처럼 한 분야만 열심히 파고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호사카 마사야스는 일본 옛 군부와 정치지도자들이 왜 터무니없는 전쟁을 일으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목숨을 앗아갔는지를 평생 추적해왔다. 언론사란 배경도 없이 독립 저널리스트로 그는 35년 동안 수천명을 만나 방대한 증언과 자료를 수집했다. 역사의 실체에 실증적으로 접근하는 그의 자세는 근대 일본의 역사를 반성하고 교훈을 새기는 작업에 무게를 더했다.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어도 그의 활동력은 더욱 왕성해지고 있다. 최근 1년 사이에만 <쇼와사의 교훈> <도쿄재판의 교훈> <쇼와를 점검한다>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책 제목들이 암시하듯 그는 잘못된 역사를 직시해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며 일본 사회의 치부를 정면으로 파고들어간다.

이런 집념 어린 취재와 저술로 그는 일본 사회에 남아 있는 군국주의적 의식 문제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최근 항공자위대 최고책임자인 다모가미 도시오 항공막료장이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일제의 식민통치를 미화한 논문을 발표해 국제적 파문이 일었을 때도 <아사히>와 <마이니치> 등 일본 언론들은 그에게 앞다퉈 인터뷰를 요청했다.

‘항공막료장 파문’ 굴절된 방위대학 교육탓
고이즈미 시절부터 역사해석 왜곡 심해져
우익들, 과거 반성을 ‘자학사관’으로 몰아

이번 파문을 계기로 그와 13일과 17일 두차례 만나 인터뷰를 했다. 4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그는 “다모가미 항공막료장의 논문은 전후 사실을 실증적으로 축적하면서 전쟁을 검증해온 60년이라는 시간을 모독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모가미 항공막료장의 논문을 보면 침략전쟁은 없고 일본은 중국의 장제스나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덫에 걸려 전쟁에 끌려들어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읽고 나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는 왜 이런 사람이 이렇게 높은 지위에 올랐느냐는 것이고, 둘째는 이건 역사도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한 자기 감정과 감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안 되는 것이죠. 이걸 이웃집 할아버지가 얘기했다면 아무런 영향력이 없지만 항공자위대 최고책임자가 주장했으니 깜짝 놀랄 일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항공자위대 최고의 자리에 올랐는지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모가미가 왜 최고책임자까지 올랐다고 보십니까?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다모가미가 나온 방위대학교의 문제가 있습니다. 헌법상 군대는 없으면서 자위대가 존재하는 모순의 한가운데에 있다 보니 방위대학교의 사고방식이 굴절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일본군 역사가 과거 천황의 군대였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사병교육이 쉬웠습니다. ‘천황을 위해 죽으라’고 교육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지금은 천황의 군대가 아니어서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를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모가미 같은 사람들의 머릿속은 천황으로 가르치면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옛 사고방식 그대로입니다. 또한 항공자위대는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목소리 큰 사람이 돋보이게 마련입니다. 일본의 권력기구 안에 터무니없는 구멍과 빈틈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게 이번 파문입니다. 일본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파문의 배경으로 보입니다.

“터무니없는 것이 존재하는 게 지금 일본의 놀라운 점 아닐까요? 고이즈미 총리 때부터 야스쿠니 참배 등으로 역사해석이 왜곡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좀 심한 정치인들이 있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무라야마 담화에서 일본은 과거 큰 잘못을 저질러 전쟁을 벌였고, 그 잘못을 출발점에 두고 현실에서 대응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런데도 고이즈미, 아베, 아소 총리까지 무라야마 담화와 거꾸로된 방향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다모가미는 도쿄전범재판이 전쟁 책임을 모두 일본에 강요해 지금 일본인들이 갈피를 못 잡게 만들었다며 도쿄전범재판을 철저히 부정했습니다.

“제 책 <도쿄재판의 교훈>에서도 줄곧 이야기한 부분입니다. 올해가 도쿄전범재판 판결 60주년입니다. 도쿄재판이 일본만 나쁘다고 규정한 연합국의 일방적인 재판이라는 주장은 계속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결함이 있습니다. 재판 기록은 읽지 않고, 재판받았다는 것만 이야기합니다. 또 전후 60년간의 여러가지 연구 결과를 완전히 무시하고 당시 일방적인 재판이었다고만 말합니다.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정치적 의도로 이야기하는 것이죠. 지식인 사회에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머리는 하얗게 셌지만 호사카의 말에는 힘이 넘쳤다. 일본 우익들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이번 파문을 보면서 오랫동안 일본 보수층의 비뚤어진 태도와 의식을 다뤄왔던 자신도 적잖이 놀란 부분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방위대학에서 도쿄재판에 대해 전혀 공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 부분조차 공부하지 않고 조직이 움직인다면 거의 군사적 쿠데타 수준의 사고방식입니다. 문민통제 원칙과 무라야마 담화를 완전히 무시하는 겁니다. 우익들은 그 시대 우리(일본인)들이 잘못했는데 왜 반성하지 않느냐고 말하면 자학사관이라고 몰아갑니다. 저는 ‘자성사관’이라고 부릅니다. 침략을 거듭했던 일본의 저 시대에 대해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일어서야 합니다.”

그의 이런 문제의식은 책으로 이어지면서 일본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은 논픽션 작가 혼자서라도 제대로 심층 취재하면 기사와 책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장과 풍토가 형성되어 있다. 호사카는 다치바나 다카시, 사노 신이치 등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논픽션 저널리스트로 손꼽힌다.

-논픽션 작가로 나서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30대 초반까지는 출판 편집자로 일했습니다. 제 또래들은 당시 대부분 좌익적이었어요. 저도 사회주의가 되면 인간이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사회주의 사관은 위에서 보게 되면 연역적입니다. 저는 기능적으로 역사를 보고 싶었습니다. 밑에서부터 사실을 축적해 ‘이런 거구나’라고 살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일본 군인이 무엇을 했는지, 대본영(일제의 전쟁수행기구)은 어떤 정책을 폈는지 조사해서 ‘그렇구나, 침략이라는 것은 이런 거구나’라고 쓰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 책이 100년 뒤 세대가 읽었으면 합니다. 침략했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병사들은 이렇게 괴로움을 겪었구나, 상대국을 이렇게 슬프게 하는구나, 전쟁으로 상처 입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 문화나 전통 같은 것이라는 걸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

-취재를 30년 넘게 해오셨는데 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만나서 취재하고 싶은 대상이 있으면 편지를 썼습니다. 전쟁 중 뭘 생각했는가, 무엇이 옳다고 판단했는가 물었습니다. 큰 언론사 기자면 바로 만났겠지만 아무 직함이 없어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A급 전범들은 여러차례 만나니 ‘실은 그 때 말이지’라고 본심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무 직책도 없는 서른살짜리 저를 왜 만났는지 생각해보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을 만나면서 개인적으로 보면 좋은 할아버지들이 조직을 움직일 때는 왜 그렇게 터무니없는 명령으로 많은 사람을 죽게 했을까 의문이 많이 들었습니다.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 명령을 내린 한 육군 참모는 왜 특공(자폭) 명령을 내렸냐고 물었더니 ‘특공은 선구적이다. 특공은 컴퓨터를 이용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의 전단계다’라고 대답해 달려들어 때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좋은 할아버지였던 그 사람에게 인간의 이면성을 실감했죠.”

-여러 감정이 교차했을 것 같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권력이라는 것은 인간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권력의 무서움이죠. 권력은 늘 국민이 감시해야 합니다. 전쟁을 선택하지 않게, 폭주하지 않게 감시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특정 언론사에 소속되지 않고 홀로 취재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처럼 현대사의 어두운 면에 대해 증언을 받아내 고발하는 ‘강한’ 기사를 쓰는 논픽션 작업은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수십년 동안 난제에 도전해온 그에게 취재원칙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전쟁 당시 중국에서 수십명을 학살했던 군인이 지난 일을 반성하고 싶다며 자청해 이뤄진 인터뷰의 뒷얘기를 들려주었다.

“그 사람 집이나 다방에서 인터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미다가와강 제방에 가서 이야기를 들었죠. 그 사람이 저에게 왜 그렇게 신경을 쓰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어느 신문기자가 전 일본군 병사를 취재하다기 일어났던 실화를 들려줬습니다. 그 신문기자가 전 일본군 병사의 집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이야기를 취재했는데, 마침 집에 있던 대학생 아들이 아버지의 과거를 듣고 신문기자가 돌아간 뒤 ‘아버지가 그렇게 터무니없는 짓을 했느냐’며 집을 나가버린 이야기였습니다. 심한 일을 저지른 이들 중에는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역사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그들을 공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괴로움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본 대표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
일본 대표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

호사카 마사야스는

A급 전범 등 4000여명 취재…‘군국주의 해부’ 30여년 바쳐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의 일본 근대사 취재·저작활동은 일본 지적 풍토의 두께를 실감하게 한다. 한쪽에는 다모가미 항공막료장처럼 옛 일본군의 정신구조를 전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사카처럼 30년 넘는 세월을 독자적으로 옛 일본 군부 지도자들의 터무니없음을 파헤치는 데 바친 이도 존재한다.

33살 때 편집자를 그만두고 논픽션 작가로 홀로서기를 시도한 그는 출세작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가 나오기까지 6년 넘게 방송사 시나리오 작가, 광고 카피 작가 등 부업으로 다섯 식구의 생활비를 벌며 버텼다.

이런 노력과 투자로 그는 논픽션 전문가로 인정을 받았고, 이후 점점 가속도가 붙어 나이가 들수록 왕성한 성과를 쏟아내고 있다. 올해만 벌써 9권을 펴냈고 연말까지 3권이 더 나올 예정이다.

그는 전쟁 당시 일본 군부 지도자와 정치인 등 지도부의 폭주를 철저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쟁계획을 수립했던 장본인 중 한명으로 전쟁 이후에는 한-일 국교정상화 등의 작업에 배후로 활동하며 한국의 신군부와 교류했던 일본 정계의 막후 실력자 세지마 류조에 대해서도 “속임수와 거짓말을 일삼는 교활한 군인”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또 세지마 류조가 도쿄재판에 옛소련 쪽의 증인(검찰 쪽 증인)으로 출석한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그가 이처럼 일본의 어두운 부분을 비판하는 것은 전쟁 중 잔학행위를 했던 병사들이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것을 취재 과정에서 목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중국에서 민간인들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우는 ‘3광(三光)작전’에 동원됐던 한 중소기업 사장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의 부대가 한 마을을 없애버렸는데 네살쯤 먹은 아이가 울면서 부대를 따라와 상관한테 물어보니 “처리하라”고 명령해 결국 아이를 죽였다. 그는 그 뒤로 네다섯살짜리 아이를 보는 게 무서워졌고, 결국 자신의 손자도 안아주지 못할 정도로 괴로움에 고통받으며 살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중소기업 사장이 나중에 당시 상관을 만났는데 상관은 “내가 언제 죽이라고 했느냐, 처리하라고 했지”라고 발뺌을 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작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도쿄/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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