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롯데 자이언츠)가 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은퇴식 및 영구결번식에서 차량에 올라 경기장을 돌며 팬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영웅을 떠나보내는 날. 사직야구장은 8일 이른 오후부터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푸른색, 붉은색, 흰색 줄무늬 등 알록달록 유니폼은 색깔은 제각각이었지만, 그 뒤에 새겨진 이름 석 자는 대부분 동일했다. 이대호(40‧롯데 자이언츠)의 마지막 은퇴 투어를 맞이한 부산 풍경이었다.
오후 2시15분. 경기가 시작하기 약 3시간 전부터 사직야구장 2만2990석을 가득 채운 팬들은 뜨거운 이별을 앞두고 시즌 세 번째 만원 관중으로 아쉬움의 무게를 드러냈다. ‘조선의 4번타자’, ‘거인의 자존심’, ‘자이언츠의 영원한 10번’, ‘롯데의 심장’이 적힌 빨간 수건이 야구장을 가득 채웠다.
원체 뜨거운 응원으로 유명한 사직야구장이지만, 이날은 그 정도가 더했다. 부산 시내가 날아가라는 듯, 다가온 이별의 시간마저 쫓아내려는 듯 그들은 목놓아 응원가를 불렀다. 남녀노소 롯데 유니폼을 입은 이들이 흰색 갈매기 인형이 달린 머리띠를 쓰고 목이 터져라 선수들을 응원했다.
이날 엘지(LG) 트윈스와 맞대결에서 4번 타자로 나선 이대호는 1회말 타석에 섰다. “대~호”를 외치는 팬들의 목소리가 사직야구장에 울려 퍼졌다. 이대호는 첫 타석에서 중전 2루타를 시원하게 뽑아내며 자신의 은퇴 경기 첫 득점을 장식냈다. ‘과연 이대호’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타구였다. 그는 이번 시즌 100타점을 기록하는 등 은퇴가 애석할 정도로 꾸준한 활약을 펼쳐왔다.
마지막 경기 타석에 선 이대호가 팬들 앞에서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이대호가 후계자로 꼽은 한동희는 이날 2회말 첫 타석부터 시원한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마지막까지 팀을 걱정하던 선배를 위해, 후배가 쏘아 올린 마지막 인사였다. 베이스를 밟고, 더그아웃에 들어온 한동희를 이날도 이대호는 가장 끝자리에서 기다렸다. 둘은 서로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이대호는 이날 선수들에게 보내는 손편지에서 “조카 (한)동희야. 삼촌은 떠나지만, 롯데 팬들의 영웅이 되어줘”라고 썼다.
이날 이대호는 투수로 깜짝 등판하기도 했다. 2001년 롯데 입단 당시만 해도 이대호는 투수였다. 하지만 입단 뒤 당한 부상 여파로 프로 무대에선 타자로 주로 활약했고, 결국 ‘조선의 4번타자’로 자리 잡았다. 이날 경기 전 “(등판) 준비는 21년째 하고 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준비는 계속하겠다”고 너스레를 떨던 이대호는 8회초 마운드에 올라 대타로 나온 엘지 고우석을 상대로 깔끔하게 아웃을 잡아낸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8회초 투수로 나와 역투하고 있는 이대호. 부산/연합뉴스
이대호는 이날 자신의 야구인생을 돌아보며 “내 야구인생은 50점”이라고 했다. “개인 성적은 괜찮고 편견과도 많이 싸웠다”면서도 “내가 사랑하는 롯데에서 우승을 못 한 게 감점 요인이 너무 크다. 죄를 짓고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라 마음이 편치 않다”는 이유였다. 이대호는 일본에서 뛰던 시절에는 두 차례 정상에 올랐으나, 한국시리즈에선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비록 별을 따진 못했지만, 이날 보여준 팬들의 사랑은 그가 이들의 가슴에 무엇보다 큰 별을 쏘아 올렸음을 보여줬다. 팬들은 이대호가 눈물로 고별사를 읽으며 미안함을 표할 때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라고 목놓아 외쳤다. 미국과 일본 시절을 제외하고 17년을 오로지 롯데에서만 뛴 그였다. 온 마음을 다해 “이대호”를 외친 이들도, 이날 이대호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뛴 롯데 선수들도 결코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롯데 선수단이 은퇴식을 치른 이대호를 헹가래 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팬들과 이대호는 은퇴식날 서로 같은 전광판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이대호의 역사, 아니 함께 울고 웃은 그들의 역사를 돌아봤다. 이대호는 고 최동원(11번)에 이어 롯데의 두 번째 영구결번(10번)으로 남는다. 관중석 사이에 깊이 파인 사직야구장 그라운드가 마치 거인의 발자국처럼 보였다.
부산/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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