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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야구·MLB

25년 설움도, 사기꾼팀 오명도…한 번에 씻어낸 ‘백전노장의 품격’

등록 2022-11-06 17:06수정 2022-11-07 02:43

2022 WS 우승 이끈 더스티 베이커 휴스턴 감독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더스티 베이커 감독이 6일(한국시각)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미닛메이드파크에서 열린 월드시리즈(4선승제) 6차전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4-1로 꺾고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휴스턴/AP 연합뉴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더스티 베이커 감독이 6일(한국시각)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미닛메이드파크에서 열린 월드시리즈(4선승제) 6차전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4-1로 꺾고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휴스턴/AP 연합뉴스

길고 시렸던 가을이 마침내 열매를 맺었다. 사반세기 동안 최고를 향해 묵묵히 싸워온 노장이 사기꾼 꼬리표가 붙은 최악의 ‘빌런’ 팀을 이끌고 위대한 승리를 합작했다. 고희를 넘겨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쥔 세칭 ‘비운의 명장’, 더스티 베이커(73) 감독 이야기다.

베이커 감독이 이끄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6일(한국시각)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미닛메이드파크에서 열린 월드시리즈(4선승제) 6차전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4-1로 제압하고 시리즈 전적 4승2패를 기록, 미국 야구 정상에 섰다. 9회 초 2사1루 우익수 카일 터커가 파울 뜬공을 잡아내는 순간 휴스턴 더그아웃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베이커 감독을 덮쳤다. 폭발하는 기쁨 속에서 베이커 감독은 왼손으로 펜스를 붙들었다.

이 승리의 의미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휴스턴의 구단 통산 두 번째 우승이자 25시즌 간 야구장을 지켜온 백장 노장 베어커 감독의 첫 우승이다. 미국 4대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최고령 감독의 우승이고, 흑인 사령탑으로는 역사상 세 번째 우승(1992년 시토 개스턴·2020년 데이브 로버츠)이며, 2002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과 2021년(휴스턴) 월드시리즈 패배 이후 2전3기, 감독 커리어로 치면 24전25기 끝에 일군 우승이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마무리 투수 라이언 프레슬리가 6일(한국시각) 열린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월드시리즈 6차전 마지막 이닝이 종료되자 두 손을 들어 승리감을 만끽하고 있다. 휴스턴/USA투데이스포츠 연합뉴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마무리 투수 라이언 프레슬리가 6일(한국시각) 열린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월드시리즈 6차전 마지막 이닝이 종료되자 두 손을 들어 승리감을 만끽하고 있다. 휴스턴/USA투데이스포츠 연합뉴스

그는 우승 반지만 빼고 다 가진 감독이었다. 올스타 2회, 실버 슬러거 2회, 골드글러브 1회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 코치를 거쳐 1993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지휘봉을 잡았다. 베이커는 직전 시즌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5위를 하던 팀을 2위로 끌어올리며 사령탑 데뷔해에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이후 첫 지구 우승을 한 1997년과 두 번째 우승을 한 2000년 두 번 더 감독상을 추가했고 2002년 월드시리즈도 나갔다.

그때부터 잔인한 가을이 시작됐다. 7차전까지 치받은 끝에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에 왕좌를 내줬고 열 시즌을 함께한 팀을 떠났다. 이듬해 부임한 시카고 컵스에서는 4시즌을 머물렀으나 ‘염소의 저주’를 극복하지 못했다. 2008년부터 6시즌을 지휘한 신시내티 레즈에서는 번번이 포스트시즌 첫 시리즈에서 미끄러졌고, 2016∼2017년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역시 2년 연속 디비전시리즈 패배로 가을야구를 마감했다.

2018년 워싱턴과 재계약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커리어가 끝나는 듯 보였던 그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온 건 2020년이었다. 위기의 휴스턴이 베이커를 구원자로 낙점했다. 2017년 창단 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휴스턴의 승리 배후에 ‘사인 훔치기’ 꼼수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구단은 중징계를 받았고 단장(제프 르나우)과 감독(A.J.힌치)이 모두 해임됐다. 우승팀의 실추였다.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제레미 페냐가 우승컵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휴스턴/AP 연합뉴스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제레미 페냐가 우승컵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휴스턴/AP 연합뉴스

이 인선에 대해 샌프란시스코 시절 제자인 제프 켄트는 “기꺼이 열기를 견디며 상황을 진정시키고 미디어를 상대하는 데 베이커보다 나은 적임자는 없었을 것”이라고 스승의 미덕을 요약했다. 베이커는 휴스턴에서 첫 시즌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진출, 두 번째 시즌 월드시리즈 진출을 일궜고 올해 기어이 우승컵을 들었다. 메이저리그 신흥 강호이자 최악의 악당인 휴스턴이 명예회복을 위해 요구받았던 단 하나의 증명 ‘실력으로 우승하기’를 해냈다.

베이커는 이제 양대 리그 챔피언십을 모두 우승한 감독 아홉 명 중 한 명이고, 각기 다른 다섯 팀에서 지구 1위를 한 유일한 감독이다. 역사상 아홉 번째로 많은 정규 시즌 2093승을 달성했고 통산 네 번째인 열두 번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일궜다.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마저 따냈으니 전부터 확실시됐던 명예의 전당 헌액도 떼 놓은 당상이다. 비로소 일흔셋 백전노장의 이력서는 완성된 걸까. “그럴 리 없다”라고 그는 월드시리즈 전 기자회견에서 미리 말해뒀다.

“저는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얼마나 더 감독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월드시리즈를) 한 번 우승하고 나면 두 번째도 우승할 것이라고 늘 말했습니다. 저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지 않아요.”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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