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대표팀 선수들이 10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 본선 1라운드 B조 조별리그 일본과 경기에서 4-13으로 패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2017 세계야구클래식(WBC) 때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나왔다. 리그 질은 나날이 떨어지는데 선수 몸값은 해마다 치솟는 상황에서 국제대회에서 조기 탈락했다. 당시 KBO리그는 2016시즌 800만 관중을 돌파해 화양연화를 맞고 있었다. 그런데 국제대회 졸전으로 의구심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 후 6년이 흘렀다. 이 기간에 한국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지만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 때는 무관에 그쳤다. 아시안게임의 경우 선수 선발 잡음으로 선동열 대표팀 감독이 국정감사에까지 출석해야 했다. 악화한 여론 탓에 금메달의 영광 따위는 없었다. 도쿄올림픽은 변명의 여지 없이 처참했다. 그리고 2023년 3월, 한국 야구는 또다시 실패했다. 3개월 동안 세미 프로리그를 이어가는 호주에 패해 3회 연속 WBC 1라운드에서 떨어졌다. 호주 한 구단의 전체 샐러리캡은 1억원 안팎에 불과하다고 한다.
2023 WBC 대표팀 면면을 보면, KBO리그 현주소가 보인다. 시속 155㎞ 안팎을 던지는 투수는 거의 없었고, 37살의 야수가 4번 타자를 맡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박병호(kt 위즈)는 지난 시즌 홈런왕이었다. 과거 학교 폭력 문제로 리그 최고 투수 안우진(키움 히어로즈)이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한 것은 별개의 문제다. 2018 아시안게임 때를 돌아보면, 안우진이 뽑혀서 팀 성적이 나왔더라도 대표팀은 크게 생채기가 났을 것이다.
한국 야구는 왜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 이후 점점 퇴보했을까. 여러 악수가 거듭됐다. “공격 야구가 재미있다”라는 기조 아래 극단적인 타고투저 리그가 한동안 이어진 것도 컸다. 눈앞의 달콤한 성과에 취해 사무국은 조정 시기를 놓쳤다. 극심한 타고투저 리그는 곧 경기의 단순화를 불러왔다. 1, 2점을 안 주기 위한 수비 중요성은 간과됐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뜀박질 야구는 실종됐다. 리그는 다양성이 사라진 채 그저 ‘뻥야구’로 획일화됐다.
이런 거친 환경 속에 내던져진 ‘가능성 있는’ 어린 투수들은 마운드에서 볼넷을 남발하거나 실투에 얻어터졌고 당장의 승리에 목마른 현장 감독들은 경험 있는 투수를 더 중용했다. 외국인 투수가 선발 두 자리를 꿰찬 터라 공 빠른 어린 투수는 불펜으로 기용되기 일쑤였다. 리그에 공 빠른 선수가 없는 게 아니다. 그들은 거의 중간계투로 있다. KBO 사무국은 뒤늦게 지난 시즌 공인구 반발력을 줄이고 스트라이크존 확대 카드를 꺼내 들었으나 이마저 시즌 중반부터는 흐지부지됐다.
이정후(키움) 정도를 제외하면 야수 쪽 사정도 좋지는 않다. ‘탱탱볼’로까지 불리던 공인구 반발력을 줄이자 원래의 실력이 드러났다. 지난해 타격 톱10에 든 선수 중 이정후 외에 김혜성(키움), 문보경(LG)만이 20대였다. 한 일본 언론은 “은퇴를 앞둔 40대 이대호(롯데)가 타격 4위를 하는 리그”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홈런 쪽은 더 심각했다. 이정후(공동 5위·23개)를 제외하고 20개 이상 홈런을 쳐낸 20대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난해 일본인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56개)을 깬 이는 22살의 무라카미 무네타카(야쿠르트 스왈로스)였다.
일부는 프로팀 훈련 부족을, 또 일부는 아마추어 선수들의 전반적 기량 하락을 한국 야구 위기 원인으로 짚는다. 분명한 것은 한국 야구가 바닥이 어딘지도 모를 깊은 우물 속으로 침잠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무국의 안일함과 구단의 현실 안주에 따른 결과물이다.
21세기에 우물 안 개구리는 돌에 맞아 죽지 않는다. 우물 안에만 갇혀 있다가 서서히 도태돼 결국 사라진다. 그리고, 언제 우물 안의 물이 마를지 모른다. 우물 안 물이 마르기 전에 물을 채울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베이브 루스의 말처럼 어제의 홈런이 오늘의 경기를 구원해주지는 않는다.
도쿄/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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