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스포츠·마이스(MICE) 복합공간 조성 민간투자사업 부지 전경. 한화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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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시즌이 끝나면 (매일) 6시반에 만나는 내 친구와 이별하는 기분이에요.”
한화 이글스 팬이기도 한 배우 조인성이 유재석의 유튜브 콘텐츠 ‘핑계고’에 나와서 한 말이다. 프로야구 한 시즌은 시범경기 포함, 7~8개월 가량 이어지기 때문에 팬들은 야구단과 세 계절을 함께한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올해 41년이 됐으니 길다면 41년 지기라고나 할까. 사건, 사고 잦은 친구지만 그래도 팬들은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며 야구장을 찾고 목청껏 응원을 보낸다. 그런데, 그런 친구를 응원할 곳이 한동안 곁에서 사라지게 생겼다. 잠실야구장을 나눠쓰던 엘지(LG) 트윈스, 두산 베어스가 6년간 떠돌이 신세가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18일 잠실돔구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만 놓고 보면 그동안 야구계 숙원이던 3만석 이상의 돔구장이 서울에 생기는, 그럴듯한 계획이다. 그런데 찬찬히 뜯어보면 의문이 생긴다. 서울시 안에는 엘지, 두산이 공사 기간(2026~2031년)에 대체 야구장으로 쓸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고척 스카이돔(고척돔)과 목동야구장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키움 히어로즈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고척돔은 다른 야구단이 임시로 쓸 만한 공간이 없다. 게다가 키움 경기가 없는 주말마다 고척돔에서는 K팝 가수나 국외 유명 가수의 내한 공연이 있는데, 만약 다른 구단이 같이 쓰게 되면 프로야구 시즌(3월~10월)동안 서울에는 2만석 이상의 실내 공연장이 단 한 곳도 없게 된다. 야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목동야구장을 두 구단이 번갈아 가면서 쓰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개보수한다고 해도 빛, 소음 공해를 차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목동야구장에서는 아마야구 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낮에도 응원 자제 요청이 들어온다. 오후 6시 이후에는 아예 경기 자체를 할 수 없게 합의가 돼 있다. 조명탑이 있는 데도 쓰지를 못한다. 그런데, 강남과 더불어 대표적 학군인 목동에서 144일 동안 응원전이 펼쳐지는 프로야구 경기를 펼친다? 서울시가 양천구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더 큰 문제는 목동야구장에서 프로 경기를 하면 아마 대회를 치를 곳이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2007년 오세훈 시장의 주도로 아마야구의 메카, 동대문야구장이 헐리면서 한동안 경기를 할 곳이 없던 아마야구가 이번에는 아예 서울시 밖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만큼 서울시에는 스포츠 인프라가 부족하다.
그렇다고 엘지, 두산이 수원(케이티위즈파크)이나 인천(에스에스지랜더스필드)에서 더부살이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1~2년은 몰라도 6년의 시간은 너무 길다. 프로 스포츠의 근간은 연고지 팬들인데 이를 부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엘지, 두산 두 구단이 보존을 결정한 잠실주경기장을 리모델링해 6년간 임시 구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하는 이유다.
서울시는 잠실주경기장 일대가 공사장으로 변하기 때문에 관중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난색을 보이지만 야구위 측의 의견은 다르다. “구름다리 등을 만들어 관중 통행로를 확보하면 된다”고 말한다. 한편에서는 애초 계획대로 한강 변에 야구장을 지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때 계획도 현재의 야구장을 전부 허물고 호텔, 컨벤션 등을 짓는 것이었다. 원안대로라도 대체 야구장은 필요했다.
야구계는 폐쇄형 돔구장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낸다. 미국, 일본에서는 최근 돔구장을 지을 때 거의 개폐형으로 짓는다. 하지만 서울시나 2조1000억원 규모의 잠실 스포츠·마이스(MICE) 프로젝트를 수주(2021년 12월)한 한화건설 컨소시엄 입장에서는 야구장과 함께 들어설 호텔 등을 고려해야만 한다. 매일 밤 9시 이후까지 야구장 조명탑 빛과 소음을 견딜 호텔 투숙객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야구인은 이에 대해 “새로운 야구장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상업적 시설 안에 야구장 등 스포츠 시설을 끼워 넣은 것”이라는 거친 표현까지 썼다.
이상 기후로 경기 우천 취소가 잦아지는 상황에서 돔구장 건설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대체 구장이 마땅찮은 상황에서 프로 구단을 6년 동안 바깥으로 내모는 것은 구단과 팬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야구팬들도 서울시민이다. 서울시와 엘지, 두산 두 구단이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를 바라본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