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LG) 트윈스 선수들이 13일 저녁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케이티(KT) 위즈와 2023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통합우승을 확정짓고 기뻐하고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엘지(LG) 트윈스는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 마해영에게 백투백 홈런을 얻어맞고 패자가 됐다. 그 이후 20년 동안 한국시리즈 무대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2023년 11월13일, 엘지는 드디어 시즌 마지막 경기 가장 높은 곳에서 묵은 한을 털어냈다. 안방인 잠실야구장이 온통 팀 상징인 유광 점퍼와 노란색 머플러로 물든 가운데 치러진 한국시리즈(4선승제) 5차전에서 케이티(KT) 위즈를 6-2로 꺾었다. 1패 뒤 4연승으로 엘지는 1994년 이후 29년 만에 한국 야구 정상에 섰다. 염경엽 엘지 감독 또한 팀 사령탑으로 우승을 맛봤다. 구광모 엘지그룹 회장은 임원진과 함께 잠실야구장을 찾아 아버지(고 구본무 회장)의 생전 숙원이던 우승 모습을 지켜봤다.
■ ‘발야구’ 아닌 ‘한 방 야구’
엘지는 지난해 정규리그 2위를 하고도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진 뒤 팀 재정비를 했다. 류지현 감독과 결별하고 염경엽 전 히어로즈, 에스케이(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감독을 새롭게 영입했다.
2년여 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염 감독은 올 시즌 거침없이 뛰는 야구를 선보였다. 팀 타율(0.279), 출루율(0.361), 장타율(0.394) 1위 엘지는 ‘발야구’까지 곁들이며 상대 진용을 뒤흔들었다. 도루사와 주루사가 많기는 했지만 경기당 평균 1.15개의 도루(1위)를 성공시켰다.
포스트시즌 때는 다소 달랐다. 정규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해 3주가량 쉬면서 힘을 비축한 덕인지 ‘발야구’가 아닌 ‘한 방’의 야구가 나왔다. 정규리그 때는 홈런이 경기당 0.65개(전체 6위)에 불과했으나 한국시리즈 때는 경기당 1.6개가 뿜어져 나왔다. 2차전(8회 박동원 2점 홈런), 3차전(9회 오지환 3점 홈런) 모두 결승타가 홈런포였다.
엘지(LG) 트윈스 오지환이 13일 저녁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리그 한국시리즈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다음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포기를 몰랐던 오지환
고빗길은 1승1패로 맞섰던 3차전이었다. 두 팀은 역전, 재역전의 명승부를 펼쳤다. 8회말 일격을 당한 엘지는 패색이 짙었으나 9회초 ‘캡틴’ 오지환의 3점 홈런이 터져 나왔다. 8-7, 엘지의 승리.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오지환의 ‘한 방’으로 엘지 선수단 분위기는 한껏 들끓었고, 반대로 케이티는 심한 내상을 입었다. 엘지는 기세를 몰아 4차전(15-4), 5차전까지 쓸어담았다.
시리즈 동안 19타수 6안타 3홈런 8타점의 성적을 낸 오지환은 기자단 투표(93표 중 80표·득표율 86%)로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면서 고 구본무 회장이 남긴 롤렉스 시계를 부상으로 받게 됐다. 구본무 회장은 1998년 한국시리즈 MVP에 주겠다며 당시 8000만원 상당의 롤렉스 시계를 구입했고, 시계는 25년 가까이 구단 금고에 보관돼 있었다. 그는 KBO로부터 상금 1000만원도 별로로 받았다.
엘지(LG) 트윈스 선수들이 1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케이티 위즈와 경기에서 승리한 뒤 염경엽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연합뉴스
■ 플럿코 공백 메운 불펜진
엘지는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대형 악재를 만났다. 8월 말 골반 타박상을 입은 아담 플럿코(11승3패 평균자책점 2.41)가 미국 주치의의 소견에 따라 더이상 던지기 힘들다는 의견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결국 엘지는 플럿코를 제외하고 한국시리즈를 준비했다.
케이시 켈리, 임찬규, 최원태, 김윤식으로 꾸려진 시리즈 선발진은 케이티(윌리엄 쿠에바스, 고영표, 웨스 벤자민, 엄상백)보다 무게감이 떨어졌다. 그러나 엘지는 선발의 약세를 불펜진으로 극복해냈다. 이정용, 정우영, 김진성, 백승현, 유영찬, 함덕주, 고우석 등 선수층이 두꺼웠기 때문. 엘지는 1차전 패배 뒤 2차전에서도 선발 최원태가 아웃 카운트 하나만 잡고 무너졌으나 7명의 불펜진이 차례로 등판하며 추가점을 막았고 결국 역전승에 성공했다. 2차전 승리는 터닝 포인트가 됐다.
케이티는 엔씨(NC) 다이노스와 플레이오프 5차전을 치르면서 손동현, 박영현, 김재윤 등 불펜진 소모가 심했던 게 패인이 됐다. 2년 만에 우승을 노렸던 케이티는 패하기는 했으나 6월초 꼴찌(10위)에서 정규리그 2위까지 올라오고, 플레이오프 때도 2패 뒤 3연승을 하는 저력을 선보였다. 결코 실패하지 않은 시즌이었다.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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