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 프로야구 LG 감독
[36.5℃ 데이트] 박종훈 프로야구 LG 감독
달리면 꼴찌 산골 소년
뛰고 뛰어 도루왕까지 타격왕 후보 잘 나가다
빈볼에 부상 입고 미 유학 지속적인 훈련과 경쟁
선수들에게 열정 강조 프로야구 엘지(LG) 트윈스 박종훈(51) 감독은 동해안 백암해수욕장에서 2010년 새해를 맞았다. 수평선 너머로 고개를 내민 붉은 해를 바라보며 빈 소원은 ‘엘지를 강한 팀으로 만들게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강원도 홍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올해 프로야구 감독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 1막 1장-거북이 날다 홍천중학교 입학 뒤 감독이 “야구를 그만두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이유는 “발이 너무 느리다”는 것이었다. 운동장을 뛰면 늘 꼴찌였다. 그것도 앞 사람과 운동장 한 바퀴 이상 차이 나는 느림보였다. 옥수수빵이 먹고파서 시작한 야구였지만, 유니폼을 벗기가 싫었다. “어떻게 하면 빨라지느냐”며 감독에게 매달렸다. “내리막길을 뛰라”는 감독의 권유에, 하루도 빠짐없이 혼자서 강원도 산골 내리막길을 뛰었다. 6개월 뒤, 그는 야구부 단체 달리기에서 늘 다섯 손가락 안에 들게 됐다. 고려대 시절에는 도루왕까지 했다. 박 감독이 반문했다. “어릴 적 발이 느리다는 이유로 야구를 그만뒀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 1막 2장-운명을 바꾼 공 한 개 1983년 프로야구 최초 신인왕(1982년에는 신인왕이 없었다)을 받았다. 용모도 수려했고, 매너도 깔끔해 인기도 많았다. 1985년 전성기가 왔다. 타율 0.380을 넘나들며 장효조와 시즌 중반까지 타격왕 경쟁을 했다. 하지만, MBC 청룡(LG 트윈스 전신)과의 경기에서 상대 투수가 던진 빈볼에 그만 허리를 맞았다. 이후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허리 통증은 끈덕지게 그를 괴롭혔다. 허리 부상은 계속 악화됐고, 결국 1989년 7년 동안의 짧은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박 감독은 “마운드의 투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빈볼이 날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피하고 싶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고 회상했다. ■ 2막 1장-낯선 이방인 그는 실눈을 뜨고 몇 번째 “밀크(milk)”라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카운터의 흑인 여성은 연신 고개만 갸웃댔다. 이국땅에 도착한 첫 날,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이가 먹고픈 우유를 사다가 영어의 벽을 느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국 생활의 환상이 한 순간에 냉혹한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랭귀지스쿨을 거쳐 서든코네티컷주립대에서 체육교육학 석사 과정을 밟을 때도 시련은 많았다. 기말고사 공부를 하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갑자기 서러움이 북받쳐 엉엉 울기도 했다. 그래도 4년 동안의 미국 생활 동안 ‘글’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미국에는 야구 전문서적이 널려 있어요. 그 속에 답이 있었지요. 몸으로만 체득했던 야구를, 머리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거죠.” ■ 3막 1장-대화의 기술 1993년 지인의 소개로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더블 A팀에서 야구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년 뒤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선수 시절 ‘악연’이 있던 엘지에 둥지를 틀었다. 처음에는 그가 가르치면 다 잘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여러 차례 좌절을 겪으면서 “기술을 가르치기 전에 선수들의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다. 그때부터 선수들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시작했다. 최근 김명제(두산)의 교통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눈물을 글썽인 것도, 결코 선수를 선수로만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 3막2장-야구의 필 잭슨을 꿈꾸며 박종훈 감독은 “야구 유니폼만 입으면 행복하다”고 했다. 좌절의 순간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야구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그가 6일 선수단 시무식 때 엘지 선수들에게 강조한 것도 열정이었다. 그가 꿈꾸는 감독 이상형은 미국프로농구(NBA) 전설의 명장 필 잭슨(현 LA 레이커스 감독)이다. “포용력이 있으면서도 해박한 지식으로 깊이가 있기 때문”이란다. 박 감독은 “지속적인 훈련과 견제 세력 육성을 통해 팀 자체 경쟁력을 높이겠다. 그래야 엘지는 기복이 심한 팀이 아니라 항상 강한 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구단이 약속한 5년의 시간이 있고, 이제 그는 감독으로서 막 첫 페이지를 넘기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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