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해설가 데뷔를 앞둔 박재홍이 6일 저녁 서울 여의도 한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별별 스타ㅣ 야구 해설가 데뷔 앞둔 박재홍
박재홍(40)은 담배 한개비를 조용히 꺼내 물었다. 30년 야구 선수 은퇴를 결정한 뒤부터 담배가 늘었다고 했다. “현역 선수로 더 뛰려는 욕심이 있었을 때는 하루 5~10㎞ 뛰었어요. 1월5일에 한 구단 입단이 최종 결렬된 뒤 등산만 2번 했는데, 이제 다시 운동을 시작해야죠.”
“‘300-300’ 클럽 달성 못해 아쉬움
선수협회장하면서 시야 넓어져
마흔 노총각…연애가 가장 어려워
팬들에 신뢰받는 해설가 되고싶어” 박재홍은 현재 방송 해설가 변신을 준비중이다. 인터뷰가 있던 6일에도 서울 여의도 <엠비시 스포츠플러스>(MBC 스포츠+)에서 방송 모의해설을 마친 뒤였다. 3시간 동안 쉴새없이 말을 해서 너무 배가 고프다며 그는 허겁지겁 2인분의 고기와 국수를 해치웠다. “몸으로 하던 사람이 말로만 하려니 적응이 필요한 것 같아요. 긴장이요? 전혀 안하죠.” 현역 때나 은퇴 뒤나 자신감은 그의 최고 무기다. “사실 존경받는 스포츠 해설가는 없잖아요. 전 후배들이나 팬들에게 신뢰를 주는, 존중받는 해설가가 되고 싶어요.” 같은 방송사에서 함께 해설가로 데뷔하는 후배 ‘조라이더’ 조용준과의 비교가 신경쓰이지는 않을까. “왜 남을 신경써요? 내 할 일만 하면 되지.” 평소 직설적인 그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난다. 적나라한 해설에 상처받는 후배들이 있겠다 싶어 물으니 돌아오는 답은 “틀린 말만 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어요? 실수하면 바로 깨끗하게 인정하면 되고”다. 박재홍의 돌직구 해설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바로 이런 솔직함 때문이다. 현역 때는 지나친 솔직함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기도 했다. 박재홍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은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었다. “데뷔 첫해이던 96년 국내 최초로 ‘30(홈런)-30(도루)’ 클럽을 달성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자신감이 넘쳤어요. 선배들한테는 건방지게 비쳤겠지요. ‘내 것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 때문에 잃은 부분도 있지요.” 2011년 12월, 단 2표 차이로 서재응(KIA)을 밀어내고 선수협회장에 뽑힌 뒤 10구단 창단, 선수협 초상권 비리 척결 등 많은 일을 겪으며 그도 달라졌다. 스스로는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했다. 1월 25일 은퇴 기자회견을 할 때는 전 선수협회장 손민한을 깜짝 대동해 사과의 장을 마련해줬다. “(손)민한이를 그냥 두면 선수협회 일로 평생 ‘주홍글씨’를 단 채 야구계에 발붙이지 못하겠더라고요. 나는 선수를 그만두더라도 후배 살 길은 열어줘야 할 것 같았어요.” 기자회견 당시 흘린 뜨거운 눈물은 아직까지도 야구팬들에게 회자된다. “기자회견 전날 저녁에도 집에서 혼자 울었어요. 그냥 야구 인생을 돌아보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라고요.” 겉보기에는 무뚝뚝한데, 드라마나 영화의 슬픈 장면을 보면서도 우는 “감성적인 남자”라고 했다. 가장 궁합이 맞았던 사령탑은 현대 유니콘스 시절을 함께한 김재박 감독. “잘못해도 꾸짖기보다는 스스로 반성하게 해주셨기 때문”이란다. 현역 연장이 무산된 아쉬움은 없을까. “어차피 정상에 올랐으면 내려와야 하는데 저는 그나마 행복하게 잘 내려왔다고 생각해요.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이고, 그 후회의 크기가 작냐 크냐의 문제겠지요.”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노렸던 ‘300(홈런)-300(도루)’ 클럽 달성에 그는 도루 33개가 모자랐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프로 17시즌 동안 1년에 도루 2개씩만 더 했으면 기록을 달성했겠더라고요. 후배들은 1군 주전이라는 점에 만족하지 말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영원한 주전은 없거든요.” 박재홍은 자신의 야구 인생에 “90점”이라는 후한 점수를 준다. “참 고집스럽게 열심히 야구 했기 때문”이란다. 그는 ‘30-30’ 클럽을 3차례나 달성하고, 통산 타율 0.284, 300홈런 1081타점 267도루의 업적을 남겼다. 야구를 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점수는 아직 모르겠다. “마흔살 넘도록 결혼을 못했잖아요. 30대에는 왜 그리 야구만 좋아했는지…. 지금도 연애는 최고 난도의 숙제 같아요.” 박재홍에게는 중학교 때부터 분신처럼 갖고 다닌 무게 850g짜리 방망이 링이 있다. 타석에 서기 전 방망이에 끼워 휘두르는 것이다. “직접 철공소에 부탁해 만들어서 배팅 포인트에 딱 맞아요. 20년 넘게 저 밥 먹고 살게 해준 것이니 보물 1호죠.” 박재홍이 해설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이제 링도 자기 할 일을 끝내고 집안 장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링 옆에는 어떤 게 놓여갈까. “어떤 일이든 자신 있다”는 그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글, 사진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선수협회장하면서 시야 넓어져
마흔 노총각…연애가 가장 어려워
팬들에 신뢰받는 해설가 되고싶어” 박재홍은 현재 방송 해설가 변신을 준비중이다. 인터뷰가 있던 6일에도 서울 여의도 <엠비시 스포츠플러스>(MBC 스포츠+)에서 방송 모의해설을 마친 뒤였다. 3시간 동안 쉴새없이 말을 해서 너무 배가 고프다며 그는 허겁지겁 2인분의 고기와 국수를 해치웠다. “몸으로 하던 사람이 말로만 하려니 적응이 필요한 것 같아요. 긴장이요? 전혀 안하죠.” 현역 때나 은퇴 뒤나 자신감은 그의 최고 무기다. “사실 존경받는 스포츠 해설가는 없잖아요. 전 후배들이나 팬들에게 신뢰를 주는, 존중받는 해설가가 되고 싶어요.” 같은 방송사에서 함께 해설가로 데뷔하는 후배 ‘조라이더’ 조용준과의 비교가 신경쓰이지는 않을까. “왜 남을 신경써요? 내 할 일만 하면 되지.” 평소 직설적인 그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난다. 적나라한 해설에 상처받는 후배들이 있겠다 싶어 물으니 돌아오는 답은 “틀린 말만 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어요? 실수하면 바로 깨끗하게 인정하면 되고”다. 박재홍의 돌직구 해설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바로 이런 솔직함 때문이다. 현역 때는 지나친 솔직함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기도 했다. 박재홍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은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었다. “데뷔 첫해이던 96년 국내 최초로 ‘30(홈런)-30(도루)’ 클럽을 달성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자신감이 넘쳤어요. 선배들한테는 건방지게 비쳤겠지요. ‘내 것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 때문에 잃은 부분도 있지요.” 2011년 12월, 단 2표 차이로 서재응(KIA)을 밀어내고 선수협회장에 뽑힌 뒤 10구단 창단, 선수협 초상권 비리 척결 등 많은 일을 겪으며 그도 달라졌다. 스스로는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했다. 1월 25일 은퇴 기자회견을 할 때는 전 선수협회장 손민한을 깜짝 대동해 사과의 장을 마련해줬다. “(손)민한이를 그냥 두면 선수협회 일로 평생 ‘주홍글씨’를 단 채 야구계에 발붙이지 못하겠더라고요. 나는 선수를 그만두더라도 후배 살 길은 열어줘야 할 것 같았어요.” 기자회견 당시 흘린 뜨거운 눈물은 아직까지도 야구팬들에게 회자된다. “기자회견 전날 저녁에도 집에서 혼자 울었어요. 그냥 야구 인생을 돌아보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라고요.” 겉보기에는 무뚝뚝한데, 드라마나 영화의 슬픈 장면을 보면서도 우는 “감성적인 남자”라고 했다. 가장 궁합이 맞았던 사령탑은 현대 유니콘스 시절을 함께한 김재박 감독. “잘못해도 꾸짖기보다는 스스로 반성하게 해주셨기 때문”이란다. 현역 연장이 무산된 아쉬움은 없을까. “어차피 정상에 올랐으면 내려와야 하는데 저는 그나마 행복하게 잘 내려왔다고 생각해요.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이고, 그 후회의 크기가 작냐 크냐의 문제겠지요.”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노렸던 ‘300(홈런)-300(도루)’ 클럽 달성에 그는 도루 33개가 모자랐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프로 17시즌 동안 1년에 도루 2개씩만 더 했으면 기록을 달성했겠더라고요. 후배들은 1군 주전이라는 점에 만족하지 말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영원한 주전은 없거든요.” 박재홍은 자신의 야구 인생에 “90점”이라는 후한 점수를 준다. “참 고집스럽게 열심히 야구 했기 때문”이란다. 그는 ‘30-30’ 클럽을 3차례나 달성하고, 통산 타율 0.284, 300홈런 1081타점 267도루의 업적을 남겼다. 야구를 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점수는 아직 모르겠다. “마흔살 넘도록 결혼을 못했잖아요. 30대에는 왜 그리 야구만 좋아했는지…. 지금도 연애는 최고 난도의 숙제 같아요.” 박재홍에게는 중학교 때부터 분신처럼 갖고 다닌 무게 850g짜리 방망이 링이 있다. 타석에 서기 전 방망이에 끼워 휘두르는 것이다. “직접 철공소에 부탁해 만들어서 배팅 포인트에 딱 맞아요. 20년 넘게 저 밥 먹고 살게 해준 것이니 보물 1호죠.” 박재홍이 해설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이제 링도 자기 할 일을 끝내고 집안 장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링 옆에는 어떤 게 놓여갈까. “어떤 일이든 자신 있다”는 그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글, 사진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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