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당구 차세대 간판인 용현지(왼쪽)와 한지은. PBA 제공
“한번 붙어볼래?”(용현지)
“좋아, 해보자.” (한지은)
여자프로당구 차세대 간판으로 꼽히는 두 선수의 장난끼에 주변은 금세 웃음바다가 됐다. 복싱을 하는 듯한 자세도 제법 그럴듯하게 취했다. 용현지(하이원리조트)는 “지은이는 탄탄해요. 제가 안 될 것 같다”고 했지만, 한지은(에스와이)은 “현지가 보기보다 힘이 세다. 운동 신경도 좋다”라며 추어올린다.
최근 경기도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한겨레와 만난 둘은 2023년 프로당구의 빛나는 별이다. 22살 동갑내기로 아마추어 무대에서 정상을 휩쓸었고, 프로에서는 한 단계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소속팀에서도 핵심 자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날 둘은 하이원리조트-에스와이의 팀리그 4라운드 대결에서 6세트 여자단식에 출전했는데, 한지은이 ‘행운의 샷’으로 이겼고 풀세트 결과 에스와이의 4-3 승리로 끝났다.
절친인 용현지(왼쪽)와 한지은이 하트 모양으로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PBA 제공
전화 추가 취재를 통해 둘의 심정을 물어보니, 한지은은 “플루크로 들어가 미안했다”고 했고, 용현지는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다. 다음엔 꼭 이길 것”이라고 답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3쿠션 절친이 된 둘은 중·고교, 아마·프로 무대까지 10년 우정의 ‘절친’이다. 고교 2학년 때 당구에 전념하기 위해 중퇴하고 검정고시로 고졸 학력을 딴 것도 똑 같다. 용현지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부모님이 허락해주었다”고 했고, 한지은은 “현지와 함께 운동하고 공부해서 힘들지 않았다”고 밝혔다.
프로 무대에 먼저 진출했고, 올 시즌 우승후보로 급부상한 용현지는 한지은과 함께 뛰고 싶어했다. 용현지는 “지은과 수다떨 때마다 프로의 분위기나 선수들의 멘털, 규칙 등에 대해서 얘기했다. 지은이가 세계정상의 꿈을 이룬 뒤 프로로 전향했는데 내가 더 기뻤다”고 말했다.
한국 1위로 세계3쿠션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한지은은 ‘친구따라’ 올해 프로에 입문했다. 한지은은 “현지에게 워낙 프로 세계에 대해 많이 들었고,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며 고마워했다. 한지은은 지난달 개인전 7차 투어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에서 8강까지 내달리는 등 여자당구 ‘태풍의 눈’으로 커가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친구인 용현지(왼쪽)와 한지은이 권투 흉내를 내고 있다. PBA 제공
둘 다 팀리그에 소속돼 뛰고 있지만, 아무래도 프로선수 최고의 영광은 개인전 우승이다.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3주간의 휴지기에도 쉴 수 없는 이유다.
두 차례 개인투어 결승전에 올랐던 용현지는 “1월초에 재개되는 팀리그와 개인투어를 위해 기존의 임팩트 스트로크에 더해 부드럽게 치는 방법을 연마하고 있다”고 전했다. 파워샷 무기를 갖추고 있지만, 다양한 공 배치에서 가장 효과적인 타격을 위해 팔로 샷을 다듬고 있다는 얘기다. 연습 게임까지 하루 훈련시간은 6시간을 넘는다.
연습벌레 한지은도 마찬가지로 휴식기를 허투루 보내지 안는다. 그는 “매일매일 자세를 집중적으로 가다듬는다. 자세가 틀어지면 두께를 조정하기 힘들고, 두께가 달라지면 득점할 수 없다”고 했다. 큐는 상-하, 좌-우 흔들려서는 안되며, 큐잡는 위치와 브리지, 몸의 무게중심까지 자연스럽게 일치해야 한다.
프로 선수들은 워낙 민감해 미세한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용현지는 지난달 하이원리조트배 64강전 첫판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그는 “공이 살짝살짝 엇나갔다. 테이블 상황을 잘못 파악했고, 뒤늦게 조정할 수 있었지만 너무 늦었다”고 설명했다. 한지은은 “신발굽도 경기력에 영향을 준다. 대회 중에는 절대로 새 것으로 갈아 신지 않는다”고 밝혔다.
발랄하고 힘찬 용현지와 차분하고 노련한 한지은의 플레이는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당구팬들의 관심은 스타성 넘치는 둘의 개인투어 맞대결에 쏠린다. 아직까지 프로무대에서 둘이 개인투어에서 만난 적이 없고, 아마추어 시절에도 결승이나 4강전에서 격돌하지 않았다.
팬들께 새해 인사를 하는 용현지와 한지은. PBA 제공
둘이 프로 무대 결승전에서 만나면 어떻게 될까. 용현지는 “내가 탈락한 대회에서는 지은이를 응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승 길목에서 절친은 없다”고 못박았고, 한지은은 “우승을 향한 여정에서 우정은 접어두겠다. 이기는 게 먼저다”라고 했다.
장난으로 복싱 포즈를 취할 때 서로를 위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다. 둘은 강력한 멘털의 프로 최강 선수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