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김양희의 야구광
만화 <슬램덩크>에는 불의의 부상으로 농구를 그만뒀다가 재기에 성공해 숨을 헐떡이면서도 신들린 듯 3점슛을 쏘아대는 정대만이 등장한다.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불꽃남자’다. 요즘 프로야구 팬들 사이에서도 ‘불꽃남자’로 불리는 사나이가 있다. 연일 긴박한 상황에 마운드에 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뿌려대는 권혁(32·한화 이글스)이 그 주인공이다.
권혁. 참 아득한 이름이다. 2002년 데뷔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선동열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 사령탑 재임 시절(2005~2010년) 좌완 스페셜리스트로 활약하면서 권오준과 함께 ‘쌍권총’ 시대를 열었다. 안지만, 정현욱(현 엘지 트윈스)과는 삼성 불펜의 ‘안정권 트리오’를 완성하기도 했다. 삼성의 ‘지키는 야구’ 왼쪽 보루는 늘 권혁이었다. 2007년에는 불펜 투수로는 이례적으로 세자릿수 탈삼진(100개·전체 11위)을 기록하며 불펜의 ‘닥터 K’로 불렸다. 이닝당 탈삼진 수는 1.29개에 이르렀다. 2009년에는 5승7패 6세이브 21홀드 평균자책점 2.90의 기록으로 홀드왕도 차지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때도 그의 활약은 도드라졌다. 좌완 릴리프로 3경기(본선) 1⅓이닝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의 빼어난 투구로 대표팀이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내는 데 도움을 줬다. 192㎝의 큰 키에서 오른손 타자 몸쪽으로 꽂아대는 시속 150㎞ 안팎의 빠른 볼에 타자들의 방망이가 녹아들었다. 전문가들은 “자기 공만 던지면 볼의 각이 좋아서 타자가 시각적으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고 권혁을 평가한다.
2013~2014 시즌의 초라한 성적
하지만 2010년 이후 권혁은 하향세에 접어들었다. 조금씩 구위가 떨어지더니 2013~2014 시즌에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2013년 말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은 것도 영향이 있었다. 권혁이 주춤하는 사이 후배들이 불펜 필승조로 중용되면서 마운드에 오르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종종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용되기도 했다. 삼성 관계자는 “수술 뒤 관리 차원이었다”며 “류중일 감독은 권혁의 투구수를 조절해주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상황에 내보내려 했다. 하지만 본인으로서는 팔이 안 아픈데도 예전처럼 필승조로 기용이 안 되니까 서운한 감정이 생겼을 수도 있다”고 했다. 2014 시즌 권혁의 성적은 3승2패 1홀드 평균자책점 2.86. 등판 경기 수는 2006년 이후 가장 적은 38경기에 불과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 연속 두자릿수 홀드를 기록했던 권혁은 2013, 2014 시즌을 합해 4홀드를 따내는 데 그쳤다. 국내 최고 좌완 불펜으로서의 ‘권혁’은 그렇게 팬들 머릿속에서 지워져갔다.
야구 인생에서 분위기 반전이 필요한 시점에서 권혁은 과감하게 모험을 택했다. 지난 시즌 뒤 자유계약(FA) 자격을 갖춘 뒤 “돈보다는 더 많이 뛸 수 있는 팀에 가고 싶다”며 13년 동안 몸담고 있던 삼성을 등지고 한화 이글스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계약기간은 4년, 계약 총액은 32억원이었다. 삼성이 최종적으로 제시했던 총액도 한화와 얼추 비슷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혁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나이도 들었고 야구를 하는 데 있어 전환점이 있는 시기도 겪어봤다. 한화로 팀을 옮기면서 예전 구위를 회복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야구를 한 날보다 할 날이 적게 남았으니까 스스로도 재미있게 야구를 해보자고 결심한 점도 있었다”고 했다.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사자’에서 ‘독수리’로의 변신은 일단 성공적이다. 권혁은 외국인 투수 미치 탈보트, 쉐인 유먼의 부진과 자유계약선수로 영입한 배영수, 송은범의 구위 저하, 그리고 작년 한화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이었던 이태양의 부상 이탈로 붕괴된 독수리 마운드의 마지막 버팀목이 되면서 한화의 5할 승률을 지탱하고 있다. 최근 6년 동안 다섯번이나 꼴찌를 기록했던 한화가 5할 승률을 올리는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이효봉 <스카이 스포츠> 해설위원은 “한화가 지금의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은 권혁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권혁이 삼성에 그대로 있었다면 불펜 2인자로 남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한화 마운드의 중심이 돼 있다. 과거 좋았던 때의 컨디션을 회복한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권혁은 지난겨울 동안 김성근 한화 감독의 지휘 아래 투구 밸런스를 되찾았다. 김성근 감독은 “사람의 육체는 여유가 있을 때 쓸데없는 움직임을 하는데 피곤하면 육체는 제일 편한 곳으로 움직인다”는 지론 아래 훈련 때마다 선수들을 한계치 이상으로 몰아붙인다. 베테랑이나 신인 모두 출발점은 같고 훈련량도 거의 비슷하다. 데뷔 14년차인 권혁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지훈련 동안 2500개 이상의 공을 던졌다. 니시모토 다카시 한화 투수코치는 “고지 전지훈련에서 처음 권혁을 봤을 때 상체가 조금 빨리 나가고 뻣뻣하게 서 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중심축과 머리를 뒤에 남겨놓고 디딤발(오른발)에 왼쪽 가슴이 닿는 느낌으로, 그리고 투구 뒤 디딤발로 잘 서 있도록 기본적인 면에 충실한 훈련을 충분히 했다. 무엇보다 본인이 납득하고 이해하고 연습해서 시즌 중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전성기 때보다도 투구 폼이 좋아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일언 엔씨(NC) 다이노스 투수코치도 그들 중 한명이다. 최 코치는 “최근 2년 동안 권혁은 중심 이동이 안 된 상태에서 상체의 힘으로만 빠른 공을 던지는 데 급급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 권혁은 작년과 달리 투구 밸런스가 상당히 좋아졌다”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작년에는 권혁이 투구할 때 무릎, 허리, 어깨 관절이 같이 움직이면서 릴리스 포인트가 흔들려 제구도 잘 안되고 볼끝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발목, 무릎, 고관절, 허리, 어깨로 힘 전달이 잘되면서 투구시 하체 쪽에서 충분히 밸런스를 잡고 상체로 넘어온다고 한다. 최 코치는 “투구 밸런스적으로는 전성기였던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때보다도 더 나아진 듯하다”며 “공을 던질 때 불필요한 힘이 많이 빠진 편이라 투구 폼만 놓고 보면 젊은 시절보다는 오히려 부상 위험도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삼성 불펜의 전설 ‘닥터 K’
2010년 이후 하향세였으나
한화에 새롭게 둥지 튼 뒤 반전
올 시즌 36경기 중 23경기 등판
경기당 투구수도 올해 가장 많아 김성근 한화 감독의 지휘 아래
전지훈련 때 공 2500개 던지며
안정된 투구 밸런스 되찾아
심리적으로도 삼성 때보다 좋아
팀이 지면 분해서 밤새 자책도 이렇게 공 많이 던지면 6월에 힘들다? 권혁 스스로도 구위가 좋아진 이유에 대해 “전지훈련 때 공을 많이 던지면서 투구 밸런스를 찾아간 영향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더불어 심리적인 요인도 꼽는다. 권혁은 “(최근 2년간) 부진했을 때는 마운드에서 심리적으로 쫓기는 게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마운드에 올라가서 집중하는 것이나 마음가짐이 편해졌다”고 했다. 이효봉 해설위원은 “삼성에서는 팔꿈치 수술 등을 받으면서 팀 비중 면에서 다른 투수들에게 밀렸는데 한화에서는 좋은 위치에서 많이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속구 하나(권혁이 올해 던진 공의 77.3%가 속구다)로 승부하는데도 버텨나간다. 자기 공에 자신감이 많이 붙은 느낌이고 책임감도 상당히 생긴 것 같다”고 평했다. 니시모토 코치가 꼽는 불펜 투수로서의 권혁의 강점은 “타자를 상대하는 데 있어 자세, 강한 마음 그리고 연투에 대한 체력”이다. “팀 승리에 있어 압박감과 커다란 부담이 있을 텐데 거기에 지지 않고 팀을 위해 막으려는 강한 정신력이 있다”고 칭찬도 한다. 권혁 또한 야구선수로서 자신의 장점을 “근성”이라고 말한다. 승부욕 또한 강해서 자신 때문에 팀이 지면 “분해서 잠을 못 자고 밤새 자책”한다. 권혁은 “공 하나에 희비가 갈리기 때문에 불펜 투수가 힘든 점도 있다. 하지만 체질이나 성격상 불펜에 맞는 것 같다”며 “필승조에 속한 불펜 투수의 경우 시즌 내내 60경기 정도에 나서서 블론세이브는 10차례 이하를 기록해야만 하는데 나 같은 경우 위기 상황을 막고 내려오는 성공률이 95%가 될 때도 실패한 5%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기억에 계속 남는 것도 나 때문에 진 경기”라고 했다.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윤규진 대신 팀 마무리의 중책을 맡고 있는 지금 그의 심정은 어떨까. 권혁은 “난 지금도 팀 마무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마지막에 나가는 투수라고 생각한다”며 “(윤)규진이가 돌아오면 원래의 내 자리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마무리는 공 하나에 승패가 결정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팀 내 가장 구위가 좋고 완벽한 투수가 맡아야 된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이어 “내가 마무리를 맡게 된다면 아마도 또다른 도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혁은 한화가 14일까지 치른 36경기 중 23경기(11경기 2이닝 이상 투구)에 등판해 36이닝을 소화했다. 김성근 감독조차 “고육지책”이라고 말할 정도로 등판 횟수가 잦았다. 현 추세가 이어지면 권혁은 단순 수치상 계산으로 시즌 144경기 중 92경기에 등판해 144이닝 이상 던지게 된다. 시즌 개막 뒤 14일까지 23경기를 던진 투수는 권혁 이외에도 팀 동료 박정진(28⅔이닝)과 임정호(18⅔이닝), 최금강(24⅓이닝·이상 엔씨) 등이 있다. 그러나 투구 이닝과 투구수에서 권혁과 차이가 난다. 권혁은 불펜 전문 요원이 된 2006년 이후 경기당 평균 투구수가 올해 가장 많다. 2009 시즌에 경기당 22.5개를 던져 가장 많은 투구수를 기록했으나 올해는 경기당 26.6개를 기록하고 있다. 4월10일 롯데전 때는 51개, 4월22일 엘지전 때는 54개를 던졌다. 권혁이 불펜에서 몸을 풀 때마다 던지는 공의 개수는 20개. 불펜 대기 이닝이 늘어날수록 공의 개수는 계속 늘어나게 된다. 권혁 스스로도 “불펜에서 두번 몸을 푸는 것은 괜찮은데 세번부터는 조금 영향이 있다”고 한다. ‘공식적인’ 권혁의 올 시즌 총 투구수는 612개(14일 현재)다. 이미 지난 시즌 내내 던졌던 투구수(554개·38경기)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이 “최근 몇년 동안 권혁이 이렇게 공을 많이 던진 적이 없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6월말 즈음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는 팔꿈치 부상 경력까지 있다. 하지만 당사자인 권혁은 “그동안 많이 못 던졌던 것은 체력 때문이 아니라 부진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이닝 소화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데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앞으로 내가 야구장에서 보여주면 그런 말들은 사그라질 것”이라고 항변한다. “나는 생계형 야구선수였다” 권혁은 한때 야구를 관뒀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작은 키(당시 165㎝) 때문에 주전에서 밀리면서 야구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아이엠에프(IMF) 때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집안이 기울었던 영향도 있었다. 하지만 고교 2학년 때 “이렇게 살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야구공을 잡았다. 그사이 키(184㎝·권혁은 22살까지 컸다고 한다)도 훌쩍 자랐다. 권혁은 “공부로는 ‘답이 없겠다’ 싶었다. 그나마 자라면서 잘한다고 했던 게 야구니까 막연하게 절박한 심정으로 다시 야구를 시작했다. 어찌 보면 18살에 제일 큰 도전을 한 것”이라고 돌아봤다. 그는 이어 “솔직히 과거에 나는 생계형 야구선수였다. 프로 데뷔 후 어려운 집안 형편상 부모님을 모셔야 했고 결혼 뒤에도 (돈을 벌자는) 목적의식 때문에 공을 던졌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야구 자체에 다시 재미를 느껴가는 중”이라고 고백했다. 그가 마운드에서 더 많이, 더 오래 공을 던지고 싶은 이유다. 권혁은 오늘도 불펜에서 스파이크 끈을 바짝 조여 맨다. 팀 승리를 지켜내기 위해, 간절하게 자신의 이름을 외쳐주는 팬들을 위해, 그리고 아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티브이 앞에 앉아 “아빠 파이팅~” 하고 응원을 보내는 아이들(1남2녀·막내딸 도은이는 이제 갓 백일을 넘겼다)을 위해…. 누가 뭐래도 그는 지금 “행복하다”.
김양희 기자
▶ 김양희 맨 처음 야구를 좋아했던 이유는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쓴 일기장을 보면 꼭 그날의 야구 스코어가 적혀 있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제주도에서 서울로 왔을 때도 맨 먼저 가고팠던 곳이 잠실야구장이었다. 혼자서 잠실야구장 구석에 앉아 캔맥주 들이켜면서 경기를 보곤 했다. 지금은 휴일에 아이들과 같이 야구장을 찾고는 한다. 어쩌다 아들 이름을 주인공으로 한 야구 동화도 썼다. ‘김창금의 축구광’과 함께 한달에 한번씩 번갈아 연재된다.
2010년 이후 하향세였으나
한화에 새롭게 둥지 튼 뒤 반전
올 시즌 36경기 중 23경기 등판
경기당 투구수도 올해 가장 많아 김성근 한화 감독의 지휘 아래
전지훈련 때 공 2500개 던지며
안정된 투구 밸런스 되찾아
심리적으로도 삼성 때보다 좋아
팀이 지면 분해서 밤새 자책도 이렇게 공 많이 던지면 6월에 힘들다? 권혁 스스로도 구위가 좋아진 이유에 대해 “전지훈련 때 공을 많이 던지면서 투구 밸런스를 찾아간 영향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더불어 심리적인 요인도 꼽는다. 권혁은 “(최근 2년간) 부진했을 때는 마운드에서 심리적으로 쫓기는 게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마운드에 올라가서 집중하는 것이나 마음가짐이 편해졌다”고 했다. 이효봉 해설위원은 “삼성에서는 팔꿈치 수술 등을 받으면서 팀 비중 면에서 다른 투수들에게 밀렸는데 한화에서는 좋은 위치에서 많이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속구 하나(권혁이 올해 던진 공의 77.3%가 속구다)로 승부하는데도 버텨나간다. 자기 공에 자신감이 많이 붙은 느낌이고 책임감도 상당히 생긴 것 같다”고 평했다. 니시모토 코치가 꼽는 불펜 투수로서의 권혁의 강점은 “타자를 상대하는 데 있어 자세, 강한 마음 그리고 연투에 대한 체력”이다. “팀 승리에 있어 압박감과 커다란 부담이 있을 텐데 거기에 지지 않고 팀을 위해 막으려는 강한 정신력이 있다”고 칭찬도 한다. 권혁 또한 야구선수로서 자신의 장점을 “근성”이라고 말한다. 승부욕 또한 강해서 자신 때문에 팀이 지면 “분해서 잠을 못 자고 밤새 자책”한다. 권혁은 “공 하나에 희비가 갈리기 때문에 불펜 투수가 힘든 점도 있다. 하지만 체질이나 성격상 불펜에 맞는 것 같다”며 “필승조에 속한 불펜 투수의 경우 시즌 내내 60경기 정도에 나서서 블론세이브는 10차례 이하를 기록해야만 하는데 나 같은 경우 위기 상황을 막고 내려오는 성공률이 95%가 될 때도 실패한 5%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기억에 계속 남는 것도 나 때문에 진 경기”라고 했다.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윤규진 대신 팀 마무리의 중책을 맡고 있는 지금 그의 심정은 어떨까. 권혁은 “난 지금도 팀 마무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마지막에 나가는 투수라고 생각한다”며 “(윤)규진이가 돌아오면 원래의 내 자리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마무리는 공 하나에 승패가 결정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팀 내 가장 구위가 좋고 완벽한 투수가 맡아야 된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이어 “내가 마무리를 맡게 된다면 아마도 또다른 도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혁은 한화가 14일까지 치른 36경기 중 23경기(11경기 2이닝 이상 투구)에 등판해 36이닝을 소화했다. 김성근 감독조차 “고육지책”이라고 말할 정도로 등판 횟수가 잦았다. 현 추세가 이어지면 권혁은 단순 수치상 계산으로 시즌 144경기 중 92경기에 등판해 144이닝 이상 던지게 된다. 시즌 개막 뒤 14일까지 23경기를 던진 투수는 권혁 이외에도 팀 동료 박정진(28⅔이닝)과 임정호(18⅔이닝), 최금강(24⅓이닝·이상 엔씨) 등이 있다. 그러나 투구 이닝과 투구수에서 권혁과 차이가 난다. 권혁은 불펜 전문 요원이 된 2006년 이후 경기당 평균 투구수가 올해 가장 많다. 2009 시즌에 경기당 22.5개를 던져 가장 많은 투구수를 기록했으나 올해는 경기당 26.6개를 기록하고 있다. 4월10일 롯데전 때는 51개, 4월22일 엘지전 때는 54개를 던졌다. 권혁이 불펜에서 몸을 풀 때마다 던지는 공의 개수는 20개. 불펜 대기 이닝이 늘어날수록 공의 개수는 계속 늘어나게 된다. 권혁 스스로도 “불펜에서 두번 몸을 푸는 것은 괜찮은데 세번부터는 조금 영향이 있다”고 한다. ‘공식적인’ 권혁의 올 시즌 총 투구수는 612개(14일 현재)다. 이미 지난 시즌 내내 던졌던 투구수(554개·38경기)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이 “최근 몇년 동안 권혁이 이렇게 공을 많이 던진 적이 없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6월말 즈음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는 팔꿈치 부상 경력까지 있다. 하지만 당사자인 권혁은 “그동안 많이 못 던졌던 것은 체력 때문이 아니라 부진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이닝 소화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데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앞으로 내가 야구장에서 보여주면 그런 말들은 사그라질 것”이라고 항변한다. “나는 생계형 야구선수였다” 권혁은 한때 야구를 관뒀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작은 키(당시 165㎝) 때문에 주전에서 밀리면서 야구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아이엠에프(IMF) 때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집안이 기울었던 영향도 있었다. 하지만 고교 2학년 때 “이렇게 살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야구공을 잡았다. 그사이 키(184㎝·권혁은 22살까지 컸다고 한다)도 훌쩍 자랐다. 권혁은 “공부로는 ‘답이 없겠다’ 싶었다. 그나마 자라면서 잘한다고 했던 게 야구니까 막연하게 절박한 심정으로 다시 야구를 시작했다. 어찌 보면 18살에 제일 큰 도전을 한 것”이라고 돌아봤다. 그는 이어 “솔직히 과거에 나는 생계형 야구선수였다. 프로 데뷔 후 어려운 집안 형편상 부모님을 모셔야 했고 결혼 뒤에도 (돈을 벌자는) 목적의식 때문에 공을 던졌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야구 자체에 다시 재미를 느껴가는 중”이라고 고백했다. 그가 마운드에서 더 많이, 더 오래 공을 던지고 싶은 이유다. 권혁은 오늘도 불펜에서 스파이크 끈을 바짝 조여 맨다. 팀 승리를 지켜내기 위해, 간절하게 자신의 이름을 외쳐주는 팬들을 위해, 그리고 아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티브이 앞에 앉아 “아빠 파이팅~” 하고 응원을 보내는 아이들(1남2녀·막내딸 도은이는 이제 갓 백일을 넘겼다)을 위해…. 누가 뭐래도 그는 지금 “행복하다”.
김양희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