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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야구·MLB

넥센 염경엽 감독 “나의 야구는 없다”

등록 2016-01-15 18:39수정 2016-10-18 17:27

팀 컬러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의 선택지는 수비다. 염경엽 감독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목동 야구장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A href="mailto:viator@hani.co.kr">viator@hani.co.kr</A>
팀 컬러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의 선택지는 수비다. 염경엽 감독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목동 야구장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김양희의 야구광
넥센 염경엽 감독
짙은 어둠을 머금은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휴~. 긴 한숨을 다시 토해냈다. 오늘도 야구 센스 좋은 후배에게 밀려 선발 오더에서 빠졌다. 야구 인생 처음으로 주연에서 조연으로 내밀리며 모든 게 뒤죽박죽됐다.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다. ‘이게 다 감독님 때문이야!’ 원망은 또다른 원망을 잉태해 가슴속에 큼지막한 응어리를 만들었다. 늦은 귀가. 아내와 딸은 잠들어 있었다. ‘아차, 나는 가장이지….’ 강한 책임감에 불현듯 두려워졌다. 남 탓만 하고 있는 자기 자신도 너무 싫었다. 그의 나이 31살. 잠든 가족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그는 생각했다. ‘앞으로 선수로서는 계속 기회가 줄어들 거야. 제2의 야구 인생은 이래서는 안 돼. (조연으로) 무시당하는 위치에 있지는 말자.’ 아이러니하게도, 야구 선수로 벼랑 끝에 섰을 때 지금껏 없던 강한 목표의식이 생겼다. ‘공부하면서 준비하자. 그리고 야구에 간절해지자.’ 넥센 히어로즈를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올려놨던 염경엽(48) 감독 얘기다.

“이제 죽었다” 한탄한 코치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지만 2년 사이 히어로즈 곳간은 텅텅 비었다.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를 시작으로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가 미국으로 건너갔고 유한준(kt), 손승락(롯데)은 자유계약(FA)선수 자격을 얻어 팀을 떠났다. 부동의 팀 에이스였던 앤디 밴헤켄도 일본(세이부 라이언스)으로 이적했다. 여기에 선발, 중간계투 전천후 활용이 가능했던 한현희도 팔꿈치 수술을 해서 한 시즌을 통째로 쉬어야 한다.

홈런왕(박병호)도, 에이스(밴헤켄)도, 구원왕(손승락)도, 홀드왕(한현희)도 없다. 팀 전력이 한꺼번에 와해됐다. 염 감독은 “박병호나 유한준, 손승락은 예상을 했던 바였다. 그래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밴헤켄과 (한)현희는 계산에 없던 것이어서 충격을 많이 받았다. 정말 머리가 깜깜해졌다”고 했다.

게다가 홈구장도 이번 시즌부터 고척스카이돔으로 바뀐다. 고척스카이돔은 타자 친화적인 목동구장과는 완전히 다르다. 거리와 펜스 높이를 무시 못 한다. 팀 컬러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염 감독의 선택지는 공격이 아닌 수비다. “실점을 줄이는 야구를 하겠다”는 것이다. 막연하게 투수들의 기량을 향상시켜서 실점을 줄이겠다는 것은 아니다. “주자 견제, 투수 수비, 팀 플레이 등 당장 훈련을 통해서 줄일 수 있는 것에 최대한 집중해서 실점을 줄여보겠다”고 한다.

2011년 99개, 팀도루 최하위 팀을
2012년 179개 리그 1위로 올렸다
그의 상대 투수·포수 분석노력 덕분
늘 ‘왜?’라는 의문을 달고 살며
공부와 연구에 몰두하는 감독이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 주전 뺏기고
캐나다 이민 검토하다 지도자 길로
올해는 팀 컬러 자체가 바뀌는 해
‘나의 야구’의 틀에 맞추면 안돼
팀이 성공할 수 있는 쪽에 초점

염 감독은 도루 허용을 예로 들었다. “1년에 도루를 30개 내주는 투수와 5개 내주는 투수의 평균자책은 1점 이상 차이가 난다. 상대 타자를 출루시켜도 득점권으로는 안 보내기 때문이다. 투수나 포수가 견제를 1초 안으로만 할 수 있으면 주자의 리드를 한 폭 줄일 수 있다. 그 차이가 정말 크다. 반 폭 차이로 2루에서 세이프가 되느냐 안 되느냐가 갈린다. 안지만(삼성)이 마운드에 있을 때 주자가 도루를 쉽게 못 하는데 안지만의 견제 속도가 0.95초 나오기 때문이다. 제구력이나 새로운 변화구 장착은 한 시즌에 해내기 힘들어도 한 베이스를 쉽게 안 내주는 견제 능력이나 투수 수비 등은 스프링캠프에서 연습만 하면 충분히 된다. 투수들이 마운드에서 의식만 바꾸면 된다.”

‘뛰는 야구’도 비슷하다. 염경엽 감독이 작전주루코치로 있던 2012년 히어로즈는 팀 도루 179개로 리그 1위를 기록했다. 2011년 히어로즈의 팀 도루는 99개로 최하위였다. 리그 최고 느림보 구단이 1년 만에 리그 최고 발야구 팀으로 탈바꿈한 데는 상대 투수와 포수 분석 노력에 있었다. 상대 팀 동영상과 데이터를 보느라 코치 시절 그는 새벽 1시 이전에는 집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염 감독은 “주루, 수비는 코치가 되면 내가 맡을 수 있는 보직이었기 때문에 은퇴 이전까지 합하면 준비만 15년을 했다. 자료를 찾아서 시스템과 훈련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했다. ‘영웅들’(히어로즈)을 ‘거포 군단’에서 ‘발야구 팀’으로 변신시키는 데 그만한 적임자가 없어 보이는 이유다. 염 감독은 “올 시즌에는 서건창, 고종욱, 김하성 등 모든 선수에게 그린라이트(스스로 판단해 도루할 권리)를 줄 것”이라며 “지금껏 도루하다 죽으면 뭐라고 하지 않았다. 많이 뛰면서 많이 죽어봐야 느끼는 게 있기 때문이다. 비록 팀은 해당 경기에서 질 수도 있겠지만 도루 실패 속에서 팀도, 선수도 얻는 게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없이 뛰다가 횡사하는 것”은 강하게 질책한다.

염경엽 감독 밑 코치들은 사실 괴롭다. ‘공부하는 감독’ 밑에서 독자적인 훈련 매뉴얼을 만들어야 하는 등 숙제가 많다. 2012년 말 그가 히어로즈 3대 감독으로 선임됐을 때 “이제 죽었다”고 한탄한 코치들이 여럿 있던 이유다. 염 감독은 “수학 공부에도 순서가 있듯이 훈련에도 단계가 필요하다. 기초를 탄탄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리해서 가르쳐야 코치도 편하고 선수들의 혼동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워크숍이나 코칭스태프 회의 때 코치들이 파트별로 정리한 자료가 밋밋하면 염 감독이 즉석에서 꼬치꼬치 캐물으니 “호환마마보다 무섭다”고 말하는 코치도 있다. 한 코치는 “비활동기간인 12월에 쉬지도 못하고 익숙지 않은 한글 보고서를 작성하고 지인 도움으로 파워포인트까지 만들어서 제본을 위해 대학가까지 간다”며 “기존 훈련 방법에 자기만의 노하우를 접목시켜 훈련 방법을 연구, 개발해 나가니까 도움은 많이 된다”고 했다. 염 감독은 “코치들이 많이 힘들기는 할 것”이라면서도 “어떤 업종에서든 자신만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프로 코치라면 선수들에게 ‘잘 가르치는 고수’라는 인식을 줘야만 선수들이 따라오고 인정도 받는다”고 했다.

‘꿈만 갖지 말고 계획을 가져라’

염경엽 감독의 야구 밑바탕에는 ‘왜?’라는 의문이 깔려 있다. “항상 ‘왜’라는 의문을 가져야 뭔가를 찾게 되고 공부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염 감독은 “젊었을 때는 엘리트 코스만 밟아왔기 때문에 그런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안일했고 딱 그만큼에 만족했다”고 돌아봤다. 지난날의 반성에서 더 치열하게 야구에 파고드는 것이다.

그는 엘리트 야구 선수였다. 광주 충장중학교 시절 친구(김기태 현 KIA 감독)와 합숙소에서 도망쳐 나와 서울역에서 구두를 닦으며 3일을 버틴 적도 있지만 한순간 일탈일 뿐이었다. 청소년대표(광주일고)도 했고 대학 시절에는 추계리그 최우수선수(MVP)로도 뽑혔다. 대학생 때부터 차를 끌고 다닐 정도로 집안 사정도 넉넉했다. 프로 입성 또한 순조로웠다. 1991년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의 전신) 신인 2차 지명 1순위로 입단했다. 데뷔 때부터 태평양 주전으로 뛰었다. 하지만 거기가 끝이었다. ‘프로 주전’이라는 말에 스스로 도취돼버린 게 컸다. 염 감독은 “야구를 안 하더라도 충분히 먹고살 만했기 때문에 절실함이 없었다. 목표의식이 없던 것”이라고 돌아봤다.

팀이 현대 유니콘스로 바뀐 뒤 새내기 박진만에게 주전자리를 내주고 조연으로 밀린 순간 그는 캐나다 이민까지 생각했다.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차라리 외국에서 살자” 싶었다. 이주공사에 3000만원 투자 이민을 신청하고 이민 교육도 받았으며 영어학원까지 끊었다. 그런데 이주 사업계획서를 잘못 쓰는 바람에 탈락하고 말았다. 재심은 4년 뒤에나 가능한 상황에서 ‘그래, 야구 코치로라도 1등 하자’ 마음을 먹었다. 그때부터 야구 관련 책이란 책은 모조리 다 사서 읽었다. 야구 경기를 봐도 투수 버릇(쿠세) 등을 자세히 보려고 했고 상대 팀에서 작전이 나오면 항상 ‘왜지?’라는 의문을 품었다. 미스플레이를 보면서 경기 응용력도 길렀고, 번트를 대려는 타자를 압박하는 수비 시프트도 고안해냈다. 염 감독은 “너무 간절했기 때문에 경기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고 했다. 현대 스카우트, 엘지 운영팀장이었을 때도 그는 ‘왜’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면서 ‘간절하게’ 일을 했다.

이제 프로 감독 4년차. 그가 생각하는 ‘염경엽 감독만의 야구’가 있을 터.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넥센 감독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 우리 팀은 타격의 팀을 만드는 게 가장 빠르다고 생각해서 ‘김성근+로이스터’의 야구를 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팀 컬러 자체가 바뀌기 때문에 추구하는 야구도 달라져야 한다. 팀을 ‘나의 야구’에 맞추면 실패한다. 그 팀이 가장 성공할 수 있는 쪽에 초점을 맞춰 야구를 해야 한다. 올해 넥센은 투수를 수비 쪽으로 강화시켜서 지키는 야구를 할 것이고 야수는 주루 쪽을 강화해서 빠르면서 디테일한 전략적인 야구를 할 것이다. 그게 나의 올해 야구다.” ‘감독의 야구’라는 틀로 보면 ‘카멜레온 야구’가 염경엽 감독, 아니 염갈량(염경엽+제갈량)의 야구라고 하겠다. 변화에 두려워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따라 자신의 야구 색깔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염경엽 감독이 15일부터 시작되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강조하는 것은 목표의식이다. 그는 ‘막연함’을 가장 싫어한다. “‘꿈이 있는 사람은 평범하다. 하지만 계획이 있는 사람은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꿈만 있는 사람은 계획이 없고 막연하게 열심히만 한다. 그러나 계획이 있는 사람은 한 단계씩 밟아나간다. (김)하성이에게도 늘 말한다. 처음부터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가 되려고 하지 말라고. ‘메이저리거’ 강정호의 현재 모습이 아닌 프로 1년차, 프로 2년차 때의 강정호를 봐야만 한다고. 막연하게 강정호의 메이저리그 모습만 보고 따라 하는 것, 그게 바로 ‘꿈’이다. 하지만 강정호의 프로 1년차, 2년차 모습을 보고 단계별로 따라가는 것은 ‘계획’이다. 2군 선수들은 1군에 대한 꿈을 매일 꾸는데 1군에 올라오면 상처만 받게 된다. 계획을 세우고 단계를 밟아가면서 싸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 계획과 방향을 잡아주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다.”

서건창에게서 ‘정근우’를 봤던 염 감독은 김하성에게서 ‘발 빠른 강정호’를 보고 있다. “김하성을 20(홈런)-20(도루)을 항상 하는 유격수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김하성과 함께 외야수 임병욱에게서는 엘지의 큰 이병규의 모습을 보고 있다. “아직은 콘택트 능력이 떨어지지만 싹이 보인다”고 한다.

그의 카멜레온 야구, 어떤 색깔 보여줄까

김성근 한화 감독은 염경엽 감독에 대해 “우리나라에 전략이나 선수 육성에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감독”이라고 말한다. 이번 시즌 전력 손실이 많은데도 “그 친구(염 감독)라면 선수를 만들어갈 것”이라며 믿음을 보인다. 3년 동안 염 감독이 보여준 결과물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다.

가난한 가장(구단)이 어떤 식재료(선수)를 갖다줘도 맛깔스런 음식(결과)을 차려냈던 염경엽 감독. 통산 타율 1할대(0.195)의 사령탑은 올해 가장 큰 시험대에 오른다. 주전부터 백업 선수까지 거의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다시 ‘히어로즈 군단’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래도 김 감독처럼 믿음이 생기는 것은, 염 감독이 막연하게 꿈만 좇는 지도자가 아닌 장기적인 계획과 방향을 잡고 일을 진행하는 지도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염 감독은 “올 시즌 분명 과도기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키는 야구와 발야구로 팬들에게 재미있는 야구를 선보이고 싶다. 지금껏 스프링캠프 때 준비한 것의 40% 이상 이뤄진 적이 없는데 올해는 60% 이상 이뤄지도록 어느 해보다 더 많은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빠른 야구로의 변신을 꾀하는 그의 ‘카멜레온 야구’는 올해 과연 결과물을 낳을까.

김양희 기자
김양희 기자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 김양희 맨 처음 야구를 좋아했던 이유는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쓴 일기장을 보면 꼭 그날의 야구 스코어가 적혀 있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제주도에서 서울로 왔을 때도 맨 먼저 가고팠던 곳이 잠실야구장이었다. 혼자서 잠실야구장 구석에 앉아 캔맥주 들이켜면서 경기를 보곤 했다. 지금은 휴일에 아이들과 같이 야구장을 찾고는 한다. 어쩌다 아들 이름을 주인공으로 한 야구 동화도 썼다. ‘김창금의 축구광’과 함께 한달에 한번씩 번갈아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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