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33)의 메이저리그 행선지는 텍사스 레인저스였다.
양현종은 스플릿 계약을 통해 메이저리그 입성을 노린다. 메이저리그 승격 시 보장 연봉은 130만달러(14억원)이며, 성적에 따른 보너스 55만달러(6억7000만원)가 별도로 걸려 있다.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 현재 텍사스는 선발진이 매우 불안정하다. 그나마 제 역할을 해줬던 랜스 린(34)도 이번 겨울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됐다. 린을 보내면서 유망주 투수 데인 더닝(27)을 받아왔지만, 당장 개막전 선발 투수가 누가 될지도 알 수 없다. 린과 함께 선발진을 구축했던 카일 깁슨은 지난해 성적이 2승6패 5.35(67.1이닝 투구)였다. 조던 라일스는 1승6패 7.02(57.2이닝 투구)다. 이 두 선수가 구단 공식 누리집에 1, 2선발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 텍사스 선발진의 현주소다.
지난해 텍사스는 선발진에 대단히 공을 들였다. 새롭게 개장한 글로브라이프필드는 텍사스 무더위를 막아주는 개폐식 돔구장이었다. 이에 투수 보강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믿었던 선발진이 부상과 부진 속에 무너졌다. 선발진 평균자책점(5.32)은 메이저리그 전체 7번째로 나빴으며, 선발진 승률 0.263(10승28패)는 팀 역대 최악의 기록이었다.
또 한 번 좌절한 텍사스는 이번 겨울 선발진을 재정비했다. 린을 보낸 후 선발투수 두 명을 영입했다. 일본인 투수 아리하라 고헤이(29)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출신 마이크 폴티네비치(30)다. 하지만 두 선수가 선발진 전력을 얼마나 높여줄지는 미지수다.
아리하라는 2년 620만달러(68억원) 계약 규모에서 알 수 있듯이 하위 선발을 기대하는 투수다. 폴티네비치는 지난 2년간 포심 패스트볼 구속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2019~2020년 두 시즌동안 22경기에 나와 8승7패 평균자책점 4.86을 기록했다. 빠졌던 체중이 불으면 구속도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두 시즌을 허비한 만큼 반등이 쉽지는 않다. 1년 200만달러(22억원) 계약을 준 텍사스가 갖가지 옵션을 포함시킨 건 폴티네비치에 대한 물음표가 남아있다는 방증이다.
선발진에 좌완 요원이 부족한 점도 고무적이다. 좌완 선발감은 콜비 알라드(24)와 웨스 벤자민(28) 정도다. 그러나 알라드는 텍사스에서 선발 기회를 살리지 못했으며(17경기 4승8패 평균자책점 6.48), 벤자민은 선발 등판 경력이 한 경기뿐이다. 참고로, 지난해 아메리칸리그에서 좌완 투수 상대 타율이 가장 낮았던 두 팀은 텍사스와 같은 서부지구의 시애틀 매리너스(0.190)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0.220)였다. 텍사스로선 자주 만나는 두 팀을 공략하려면 좌완 투수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마이너리그 유망주 중에서도 올라올 투수가 마땅히 없다. 양현종에게 기회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텍사스는 작년 12월 크리스 영이 단장으로 부임했다. 구단 수뇌부 교체는 팀 방침의 변화를 예고한다. 존 다니엘스 사장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기존 선수들을 정리하면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팀에서 가장 오래 뛴 엘비스 안드루스(33)를 오클랜드로 보낸 건 놀라운 트레이드였다. 이는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뒤로하고 다른 방향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다. 한 선수에게 완전히 주전을 맡기는 대신 경쟁을 거쳐 적임자를 찾아내는 것이 텍사스의 계획이다.
구단주 레이 데이비스는 “텍사스는 더 젊은 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KBO리그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양현종과 어긋나는 부분이다. 다만 젊은 팀에도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 선수는 필요하다. 팀 전력에 보탬이 되는 선수를 마다하는 팀은 어디에도 없다. 양현종이 가진 기량만 제대로 보여준다면 텍사스도 기꺼이 자리를 마련해줄 것이다.
양현종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르기 위해 자존심을 버렸다. 오직 자신의 꿈만 바라보고 미국행을 결심했다. 누군가는 응원했지만,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했다. 이제는 자신을 둘러싼 우려를 실력으로 지워야 할 때다.
일단, 주사위를 던질 최적의 장소는 골랐다. 남은 건 최고의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18일(한국시각)부터 시작되는 텍사스의 스프링캠프가 기다려진다.
이창섭 메이저리그 전문가 pbbles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