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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구단 성남FC 판다고?”…성난 팬들, ‘정치판 바람막이’ 나선다

등록 2022-09-07 11:00수정 2022-12-14 16:46

9년 전 통일교 손뗀뒤 위기끝 성남시 인수
정치권 의혹·시장 교체 휘말리며 매각설
팬들 “경기에만 집중해, 팀은 우리가 지킬게”
성남시 “연고 이전은 사실무근, 투자 유치”
성남FC 팬들이 지난 4일 경기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2 하나원큐 K리그1 29라운드 울산 현대와 경기에서 성남 권순형의 추가골에 환호하고 있다. 응원석 밑에는 “성남FC이기에 우리가 존재한다”라는 문구의 걸개가 걸려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성남FC 팬들이 지난 4일 경기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2 하나원큐 K리그1 29라운드 울산 현대와 경기에서 성남 권순형의 추가골에 환호하고 있다. 응원석 밑에는 “성남FC이기에 우리가 존재한다”라는 문구의 걸개가 걸려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서주훈(29)씨는 2001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처음 ‘모란경기장(성남종합운동장)’을 찾았다. 성남 일화(현 성남FC) 열성 팬 아버지의 “경기장 가면 육개장 컵라면 먹을 수 있다”는 꼬드김에 넘어갔던 8살 소년은 그렇게 운명을 만났다. 서씨는 “그때 성남은 너무 잘 나갔다. 경기장만 가면 노란 (성남 유니폼) 선수들이 골을 터뜨렸다”고 했다. 2001년을 기점으로 성남은 리그 3연패를 달성했고 서씨는 “‘성남’에 미친 사람”이 됐다. 그는 “지금도 아버지랑 ‘성남’ 얘기밖에 안 한다. 김남일 감독 사퇴 때는 격론이 오갔다”면서 웃었다.

서씨를 비롯해 숱한 ‘K리그 키즈’의 마음을 훔쳤던 명문 구단 성남이 위기다. 시즌 종반을 향해 가는 현재 리그 순위는 최하위(12위)로 창단 후 두번째 강등의 그림자가 드리웠고, 경기장 밖에서는 그보다 거센 정치권발 외풍이 불어닥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 시장 재임 시절 구단 후원금을 통해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팀은 수사 대상이 됐고, 올해 부임한 후임 신상진 시장은 지난 7월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성남FC가 “꼴찌만 거듭”하는 “혈세 먹는 하마”에 “비리의 대명사”가 됐다며 구단 매각을 시사했다.

위기의 데자뷔였다. 리그 우승 7회(역대 2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등 한국프로축구 최강의 자리를 고수했던 성남은 2013년 모기업이었던 통일그룹(통일교)이 손을 떼면서 해체 직전까지 내몰렸다. 곡절 끝에 성남시에 인수되며 시민구단으로 회생했고구단주는 시장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모토를 내걸었지만, 이 회생이 9년 뒤 다시 구단의 존립을 뒤흔드는 불안 요소가 됐다. 신 시장의 발언 뒤 ‘연고지 이전’, ‘해체 뒤 K4(세미프로)팀 재창단’ 등 내용을 담은 후속 보도가 나오며 사태는 악화했다.

공황 상태에서도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이미 9년 전 한 번 팀을 구해낸 전력이 있는 성남의 팬들이었다. 성남 서포터즈 연합인 ‘블랙리스트’는 지난달 22일 호소문을 내고 “도대체 정치권은 어떤 권리로 우리가 지켜온 성남FC를 몰래 내다 팔고 있나”라고 성토했다. 성남시청 청원 게시판에는 구단을 지켜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20개 넘게 쌓였고 채택 기준인 2000명을 훌쩍 넘어서 도합 4000여명의 동의가 몰렸다. 경기장 안방 응원석에는 “정치로 23년 역사를 헛되이 하지 말라”는 대형 걸개가 내걸렸다.

성남팬들이 수원FC와 경기가 열린 지난달 28일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연고 이전 및 해체 반대” 메시지를 담은 걸개를 들고 서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성남팬들이 수원FC와 경기가 열린 지난달 28일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연고 이전 및 해체 반대” 메시지를 담은 걸개를 들고 서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팬들은 “포기 안 했다, 무조건 지키겠다”며 결의를 드러냈다. 울산 현대와 안방 경기가 열린 지난 4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만난 조재훈(18)씨는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에 학교에서 서명 운동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선생님들도 ‘팀을 지키려는 팬의 순수한 마음’이라며 허락해줬다. 3일 동안 교내에서 450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했다. 17년 차 성남팬인 박준희(22)씨도 지난달 29일 성남시청 앞 피켓시위를 하고왔다. 그는 “해체는 쉬운 길이고 살리는 길은 어려운 길이지만 우리는 구단주와 어려운 길을 갈 준비가 됐다”고 했다.

‘성남 지키기’는 성남을 넘어 K리그 전체의 연대로 이어졌다. 성남과 맞붙은 수원FC, 울산의 방문 응원석을 비롯해 전국 경기장 곳곳에 걸개가 펼쳐졌다. 전북현대 서포터즈 매드 그린 보이즈는 지난달 안방 전주월드컵경기장에 성남의 마스코트 까치를 언급하며 “까치는 철새가 아니다”라는 현수막을 들었다. 울산 서포터즈 처용전사 의장인 박동준(29)씨는 “예전에도 부천(현 제주 유나이티드), 안양(현 FC서울)처럼 연고지 이전에 힘들어하는 팬들을 봐왔다. 상생하는 축구판을 만들고자 협력했다”고 했다.

성남 서포터즈 블랙리스트 부회장 박성환씨(왼쪽 위)가 4일 울산전을 앞두고 탄천종합운동장 출입구 앞에서 구단 연고 이전 및 해체 반대를 위한 연서명을 받고 있다. 박강수 기자
성남 서포터즈 블랙리스트 부회장 박성환씨(왼쪽 위)가 4일 울산전을 앞두고 탄천종합운동장 출입구 앞에서 구단 연고 이전 및 해체 반대를 위한 연서명을 받고 있다. 박강수 기자

박준희씨(오른쪽)가 지난달 29일 성남시청 앞에서 2인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본인 제공
박준희씨(오른쪽)가 지난달 29일 성남시청 앞에서 2인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본인 제공

경기장에서 만난 성남팬들이 선수들에게 전하는 뜻은 그들의 내건 현수막 내용과 같았다. “너희는 경기에만 집중해, 팀은 우리가 지킬게.” 단단하게 뭉친 팬들은 버팀목이 돼 흔들리던 팀의 중심을 잡아줬다. 3연패 중이던 성남은 지난달 수원FC전을 시작으로 이날 리그 선두 울산마저 꺾고 정경호 감독 대행 체제에서 2연승을 일궜다. 울산전 직후 ‘승리의 하이파이브 ’ 행사에서 팬들과 만난 골키퍼 김영광은 “현수막이 보여서 이 악물고 뛰었다. 성남은 팬 여러분이 가장 큰 힘이다 ”라고 했다.

아들 김지헌(7)군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21년 차 성남팬 김기정(45)씨. 김씨는 “아이가 걸음마를 할 때부터 같이 경기장에 오기 시작했다. 훗날 아들이 다 자라고 저는 할아버지가 되어 3대가 같이 성남을 응원하러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박강수 기자
아들 김지헌(7)군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21년 차 성남팬 김기정(45)씨. 김씨는 “아이가 걸음마를 할 때부터 같이 경기장에 오기 시작했다. 훗날 아들이 다 자라고 저는 할아버지가 되어 3대가 같이 성남을 응원하러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박강수 기자

지난 수원FC전 승리 뒤 성남 선수들이 “너희는 경기에만 집중해 팀은 우리가 지킬게”라고 쓰인 걸개를 배경 삼아 팬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지난 수원FC전 승리 뒤 성남 선수들이 “너희는 경기에만 집중해 팀은 우리가 지킬게”라고 쓰인 걸개를 배경 삼아 팬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한편 성남시청은 지난 1일 보도자료를 내고 “시민의 혈세 투입을 줄이기 위해 성남FC 투자 유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성남시청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연고지 이전, K4 재창단은 검토한 적이 없다. 우리가 기업 투자를 받을 수 있다면 받아내는 게 세출도 줄이고 시민이나 구단에게도 도움이 되는 길”이라며 “다양한 분야의 시민들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도 계획 중”이라고 했다. 한 발 한 발 살얼음판을 걷는 성남은 7일 잔류 경쟁 고빗길이 될 대구FC(11위) 방문경기를 떠난다. 양 팀 팬 모두 성남을 위한 걸개를 걸 예정이다.

성남/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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