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이 16일 강원 춘천 송암스포츠타운에서 열린 2022 하나원큐 K리그1 강원FC와 경기에서 리그 우승을 확정한 뒤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우승. 혹여 부정이라도 탈까 쉬이 입에 올리지도 않던 이 말을 울산 현대 팬들은 이제 원 없이 외치게 됐다. ‘푸른 파도’가 천하를 휩쓸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울산 현대가 16일 리그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두고 우승을 확정 지었다. 울산은 이날 강원 춘천 송암스포츠타운에서 열린 2022 하나원큐 K리그1 37라운드 강원FC 방문 경기에서 2-1 역전승을 거두면서 시즌 22승10무5패(승점 76점) 고지에 올랐다. 남은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리그 6연패를 꿈꿨던 2위 전북 현대의 역전 가능성을 지워버렸다. 울산의 통산 세 번째, 2005년 이후 17년 만의 리그 정상이다.
서러운 세월이었다. 리그 준우승만 10회(최다)에 이르는 울산의 씁쓸한 별명은 ‘준산’(준우승+울산). 시즌 내내 치열하게 우승 경쟁을 벌이다가도 주요 일전에서 무너지길 반복했다. 2013년 리그 최종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결승골을 얻어맞으며 포항 스틸러스에 트로피를 내줬고, 2019년 이후 3시즌은 연달아 전북에 근소한 차이로 밀리며 막판 역전을 허용했다. 반복된 좌절은 ‘준우승 트라우마’가 됐다.
울산 팬들이 2022 하나원큐 K리그1 36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 ‘동해안 더비’가 열린 지난 11일 포항 스틸야드를 찾아 응원을 벌이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울산 선수와 스태프들이 지난 8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2022 하나원큐 K리그1 35라운드 전북 현대와 맞대결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뒤 함께 환호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2022년은 달랐다. 지난 3월 리그 3라운드부터 1위로 올라선 울산은 이후 단 한 번도 선두를 뺏기지 않고 우승까지 내달렸다. 시즌 중반부터 맹렬하게 쫓아온 전북이 리그 후반 승점 5점 차로 붙으며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맞대결에서 결판을 지었다. 지난 8일 ‘현대가 더비’에서 96분을 0-1로 끌려가다가 마틴 아담의 ‘
3분 멀티 골’로 2만 관중 앞에서 역전승을 일궈냈다. 시즌 마지막 현대가 더비에서 울산이 이긴 건 7년 만이다.
이후 리그 정상까지 울산의 매직 넘버는 승점 2점이었다. 남은 3경기에서 울산이 전패하고 전북이 전승해야 순위가 뒤집히는 상황. ‘사실상 우승’이라는 평이 타당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울산은 11일 포항 스틸야드 방문 경기에서 1-1로 비겼고, 같은 날 저녁 전북은 승점 3점을 보탰다. 이번 강원전에서도 후반 20분 페널티킥 실점으로 암운이 드리웠다. 그러나 엄원상의 오른발 발리슛(후 29분)과 아담의 세트피스 욱여넣기(후 40분)가 우승 가도를 열었다.
한준희 <한국방송>(KBS) 해설위원은 “자격 있는 팀이 우승했다. 다른 팀에 비해 공격진 빌드업, 기회 창출에서 한 수준 위에 있었다”고 평했다. 울산의 빼어난 경기력은 데이터가 뒷받침한다. 울산은 올해 리그 36라운드까지 경기당 슈팅 2위(12.25개), 유효슈팅 1위(4.47개), 패스 2위(528.17개), 공격진영 패스 1위(107.75개), 탈압박 1위(4.89개)를 기록했다. 공격 빌드업 지표에서 고르게 1∼2위를 석권한 팀은 울산뿐이다.
울산의 엄원상이 16일 강원전에서 동점골을 넣은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울산 마틴 아담(왼쪽)이 16일 강원전 역전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환호하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울산의 바코(왼쪽)가 지난 11일 포항 스틸러스와 ‘동해안 더비’ 방문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울산의 이청용(왼쪽)과 아마노 준.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바탕에는 출중한 선수진이 있었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누구 하나를 딱 꼽을 수 없다는 점이 울산이 강팀이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광주에서 넘어온 엄원상은 12골6도움을 퍼부으며
리그 최고의 윙어로 도약했고, 바코(8골)는 매 경기 꾸준하게 탈압박 마술을 부리며 공격의 활로를 열었다. 여기에 아마노 준(9골), 레오나르도(11골), 이청용(2골) 등 ‘축구 도사’들이 어우러졌고 여름에 합류한 아담(9골)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부임 2년 차에 울산의 비원을 이뤄낸 ‘홍명보 리더십’도 빛난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재능 있는 선수들이 공통된 목표를 향해 끝까지 달려갈 수 있게 하는 것이 감독에게는 중요한 덕목이다. 홍 감독은 성공했다”고 했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홍명보는 90년대 이후 한국 축구 역사를 같이한 인물이다. 선수·행정가·감독으로서 이룩한 경험치, 브라질 월드컵에서 실패 등 아픔과 곡절이 내공 있는 지도자를 만든 것”이라고 평했다.
이로써 홍 감독은 조광래, 최용수, 김상식에 이어 선수(1992년·포항)와 감독으로 K리그 정상에 선 4번째 감독이 됐다. 그는 경기 뒤 “지난해는 K리그 (감독) 첫해였다. 두 번째 해에는 (전북에 역전 우승을 허용한)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믿고 응원해주신 팬들께 감사드린다”라고 했다.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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