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여자 축구대표팀의 미드필더 퀸이 지난 20일(한국시각) 호주 멜버른에서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훈련하고 있다. 멜버른/EPA 연합뉴스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의 세번째 경기였던 조별리그 B조 나이지리아와 캐나다의 경기(21일·0-0 무)에서는 경기 외적으로 축구사에 길이 남을 역사가 쓰였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트랜스젠더라고 공표한 선수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주인공은 캐나다 여자 축구대표팀의 미드필더 퀸(27·레인FC)이다. 본래 이름은 리베카 퀸이지만 그는 커밍아웃과 함께 이후 인생은 ‘퀸’(Quinn)이라는 한 단어 이름으로 살기로 했다.
퀸의 출생 지정 성별은 여성이었지만 점차 성별 불쾌감을 지각하기 시작했고, 대학에 간 이후라야 트랜스젠더로서 정체성에 확신을 갖게 됐다. 그는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다. 즉, 트랜스젠더 ‘남성’이 아니다. ‘논바이너리’(non-binary)는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으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 성 정체성이다. 따라서 퀸은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거나, 호르몬 대체요법을 받을 이유가 없다. 커밍아웃 뒤에도 별 탈 없이 여자 축구를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퀸(오른쪽)이 지난 21일 호주 멜버른의 렉탱귤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B조 나이지리아와 1차전을 뛰고 있다. 멜버른/EPA 연합뉴스
퀸은 2020년 9월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세상에 밝혔다. 그는 직후 ‘비비시’(BBC)와 인터뷰에서 “공인으로서 삶이 제 인생의 다른 부분과 단절돼 있다는 느낌이 싫었고,
더 진실한 삶을 바랐다”라며 커밍아웃의 배경을 설명했다. 퀸은 “(정체성을) 가시화하는 일은 본인의 정체성을 찾는 데 정말 큰 부분이다. 다른 이들도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낄 때 거리낌 없이 커밍아웃할 수 있도록 제가 먼저 ‘더 안전한 공간’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랐다”라고 덧붙였다.
캐나다 대표팀은 퀸의 결정을 환영했다. 베브 프리스트먼 대표팀 감독은 “퀸이 사람들의 인식을 드높이고 세상을 더 포용적인 곳으로 만들기 위해 벌이는 노력이 자랑스럽다”라고 했고, 캐나다 팀의 주장 크리스틴 싱클레어(포틀랜드 손스)는 “우리는 퀸을 받아들일 자격이 없다고 농담하곤 한다. 퀸은 그만큼
훌륭한 선수니까”라며 지지를 표했다. 피파 역시 당시 성명을 통해 “퀸의 커밍아웃을 축하하며, 앞으로 커리어와 미래에서 지속적인 성공을 기원한다”라고 밝혔다.
퀸(오른쪽)이 지난 26일 호주 퍼스 렉탱귤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B조 아일랜드와 2차전 경기 중 상대 태클을 피해 패스하고 있다. 퍼스/EPA 연합뉴스
이후 퀸은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역사상 첫 트랜스젠더 월드컵 출전 선수라는 족적도 남겼다. 피파 랭킹 7위의 강호 캐나다는 지난 26일 아일랜드에 2-1 역전승을 일구며 1승1무로 16강 가능성을 높였다. 퀸은 두 경기 모두 풀타임 활약하며 축구 통계사이트 ‘
소파스코어’ 기준 팀에서 세번째로 높은 평점(7.45점)을 받았다. 소속팀에서 경기 전 트랜스젠더 어린이를 위한 후드티를 입기도 한 그는 축구장 안팎에서 부단히 정체성 투쟁을 벌이는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참여는 첨예한 논쟁의 장이다. 논점은 주로 퀸과 달리 성전환 수술을 마친 이들을 대상으로 형성된다. 지난해 수영과 육상 등 종목을 중심으로 성전환 선수의
여성부 대회 출전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졌고, 일부 종목 단체는 트랜스젠더 선수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쪽으로 규정을 개편했다. 피파도 관련 지침을
재검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달 사이클 선수 나화린이 강원도민체육대회에
첫 성전환 선수로 출전한 바 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