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축구협회가 공개한 차별 반대 무지개 완장. 네덜란드축구협회 누리집 갈무리
카타르월드컵이 2022년 11월20일(현지시각) 막을 올렸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보내며 전세계인이 기다려온 ‘지구촌 축제’지만 카타르 인권 실태와 개최국 자격을 둘러싼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먼저 국제축구연맹(FIFA)이 성소수자의 인권을 뜻하는 ‘무지개 완장’ 착용을 제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서 잉글랜드·독일·네덜란드·벨기에·덴마크·스위스·웨일스 7개 팀 주장들은 무지개색으로 채워진 하트에 숫자 ‘1’과 ‘원 러브’(One Love)가 적힌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피파의 경고를 받고 착용을 포기했다. 대신 피파가 제안한 ‘NO DISCRIMINATION’(차별 반대) 완장을 착용하기로 했다. 11월21일(현지시각) 이란과 경기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 해리 케인이 무지개 완장 대신 이 완장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영국 축구대표팀 주장 해리 케인이 2022년 11월21일(현지시각) 카타르월드컵 이란과의 경기에서 국제축구연맹의 ‘차별 반대’ 완장을 팔뚝에 차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축구 선수가 무지개 완장을 차고 경기를 치르는 캠페인은 네덜란드가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에 앞서 차별에 반대하고 다양성과 포용을 촉진하기 위해 시작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카타르 월드컵까지 이어졌다. 여기에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와 이주노동자에 대한 가혹한 인권 침해를 둘러싸고 비판을 받아온 카타르의 상황도 작용했다.
7개 팀은 같은날 공동성명을 내어 “복장·장비 규정 위반에 적용되는 벌금을 낼 준비가 돼 있었지만 선수들이 옐로카드를 받거나 경기장을 강제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할 수는 없었다”며, “피파의 전례 없는 결정에 매우 실망했다”며 다른 방식으로 포용의 뜻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2016년 네팔의 한 마을에서 카타르에 일하러 갔다 숨진 채 돌아온 노동자의 장례를 치르고 있다. AP 연합뉴스
한편 카타르 월드컵은 ‘피의 월드컵’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외국인 노동자 수천 명이 월드컵 경기장 등 기반시설을 짓는 과정에서 희생됐기 때문이다.
2021년 영국 <가디언> 보도를 보면, 카타르가 월드컵 개최권을 획득한 2010년부터 2020년 말까지 카타르로 이주한 남아시아 5개국(인도·네팔·방글라데시·스리랑카·파키스탄) 출신 노동자 중 6751명이 사망했다. 인도 노동자가 2711명으로 가장 많았고 네팔 1641명, 방글라데시 1018명, 파키스탄 824명, 스리랑카 557명이었다. 케냐와 필리핀 등 다른 국가 출신 노동자는 조사되지 않아 실제 사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는 2016년 카타르월드컵의 이주민 노동 착취를 조사해 ‘아름다운 경기의 추한 단면’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당시 보고서에는 이주노동자가 불결하고 비좁은 숙소에 살며 낮은 급여, 사기, 체불, 강제노동, 여권 압수 같은 불법행위에 시달려왔다는 내용이 담겼다. 살릴 셰티 앰네스티 사무총장은 “선수와 팬들에게 카타르월드컵 경기장이 꿈의 장소지만, 이주노동자에게는 지옥 같은 곳이 될 수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카타르가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잇따른다. 카타르는 혼외 성관계를 한 남녀에게 형법 제281조에 따라 징역 7년까지 선고한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이 법이 성폭행을 당한 여성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HRW는 “카타르 경찰은 성폭력 신고를 한 여성을 종종 믿지 않고, 여성이 남성 범죄자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나 암시만으로도 여성을 기소해왔다”고 비판했다.
성소수자 인권을 탄압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카타르는 월드컵 기간에 한해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한 법을 중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11월8일 칼리드 살만 카타르월드컵 대사가 언론에 “동성애는 정신적 손상”이라며 “해롭고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앞서 HRW는 10월 “2019~2022년 카타르 경찰이 성소수자 시민을 임의로 구금해 구타한 사례는 6건, 성추행을 저지른 사례는 5건”이라고 지적했다.
2022년 11월19일(현지시각) 오후 카타르 도하 지하철 코르니쉬역 인근에 마련된 팬 페스티벌 행사장 버드와이저 부스에서 맥주를 팔고 있다 . 도하/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편 카타르 정부는 월드컵 개막을 이틀 앞두고 갑자기 경기장 내 주류 판매를 금지했다. 카타르가 주류를 허용하지 않는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이다. 월드컵 기간에 특별히 8개 경기장 주변에서 판매하기로 한 맥주는 개막 이틀 전 돌연 금지됐다. 경기장 내에선 공식후원사인 버드와이저의 제로(비알코올 맥주)만 살 수 있다. 11월21일(현지시각) 2022 카타르월드컵 개막전(A조 첫 경기) 관중석에선 “우리는 맥주를 원한다”는 이색 구호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여러 논란이 일자 피파는 당장의 논란 진화에 급급한 모양새다. 잔니 인판티노 피파 회장은 11월4일 월드컵 본선 출전국에 “제발, 지금은 축구에만 집중하자. 축구가 이념적, 정치적 싸움에 끌려가게 두지 말자”며 편지를 보냈다. 이에 유럽 10개국 축구협회는 공동성명을 내어 “인권은 보편적이고 어디에서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우리는 축구가 지속가능하고 진보적인 변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힘이 있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