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유(성남시청 장애인탁구팀)가 성남종합스포츠센터에서 훈련 도중 활짝 웃고 있다. 도쿄패럴림픽에서 단체전 은메달, 개인전 동메달을 땄던 윤지유는 전국장애인체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처음에는 그저 취미에 불과했다. 수영도 했었지만 종일 물속에 있는 것이 성격에 맞지 않았다. 탁구는 “실내에서 하고 날씨 등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아서” 좋아했다.
3살 때 혈관 기형으로 생긴 하반신 장애. 탁구를 시작한 뒤부터 주위 사람들은 그의 다리가 아닌 팔에 주목했다.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느는 게 보여 더 빠져들었다. 보통 국가대표에 뽑히려면 해당 종목 시작 뒤 평균 5~7년의 세월이 소요되지만 윤지유(21·성남시청 장애인탁구팀)는 겨우 2년밖에 안 걸렸다. 그만큼 출중했다는 뜻이다. “연습경기 하다가 지면 다시 치자고 졸랐어요. 이길 때까지 계속 쳤지요. 국내에서 언니들 이기고 국제대회에서 외국인 선수를 꺾었을 때 짜릿하고 기분이 좋거든요.”
윤지유는 15살에 출전한 벨기에오픈(2015년)에서 첫 개인전 금메달을 따냈다. 2016 리우패럴림픽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김병영 성남시청 감독은 “(윤)지유를 어린 시절부터 봐왔는데 침착하고 차분하고 팔이 길어서 신체적 조건까지 좋다. 습득력 또한 빨라서 조금만 연습해도 자기 기술로 만든다”면서 “무엇보다 일찍 탁구를 시작해서 기본기가 잡혀 있다는 게 크다. 안정감이 있고 볼에 힘을 실을 줄 안다”고 했다.
“모든 게 신기했던” 리우패럴림픽은 최연소 국가대표로 참가해 서수연, 이미규 등과 단체전(TT1-3) 동메달을 따냈다. 5년을 더 갈고 닦아 참가한 도쿄패럴림픽 때는 은메달(단체전), 동메달(개인전)을 목에 걸었다. 중국 벽에 계속 가로막혔는데 어깨가 아파서 주사를 맞으면서 경기에 임했던 터라 “너무 속상했다”고 한다. 방심했다가 역전을 당한 경기도 있던 터라 “뒷심을 더 길러야 한다”는 사실도 깨우쳤다.
성남시 장애인탁구팀의 윤지유. yws@hani.co.kr
윤지유는 지난 10월 열린 전국장애인체전에서 3관왕에 오르면서 대회 최우수선수(MVP)에도 뽑혔다. 전국장애인체전에서 탁구 선수가 엠브이피가 된 것은 윤지유가 사상 처음이다. 윤지유는 “우승할 수 있는 대회는 모두 우승하고 싶다. 그런 다음 박수받을 때 은퇴하고 싶다”고 했다. 김 감독은 “장애인탁구 최초로 그랜드슬램(패럴림픽·아시안게임·세계선수권·아시아선수권을 모두 석권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선수는 윤지유”라고 했다.
승부욕과 더불어 학구열도 강해서 윤지유는 현재 한체대 특수체육교육학과에서 학업도 병행 중이다. 대학입학시험(수능) 때문에 2018 인도네시아장애인아시안게임 출전까지 포기했던 그다. 도쿄 대회 준비에 바쁜 와중에도 수업을 착실히 들어서 학점도 잘 나온다. 윤지유는 “제가 조금 악착같은 면이 있어요”라며 슬쩍 미소 지었다.
경기 내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상대를 몰아붙여 ‘아기호랑이’라는 닉네임까지 생겼지만 보통 때는 여느 20대와 같은 나날을 보낸다. 온라인 게임(리니지)을 하고 쇼핑을 하고 운전을 즐긴다. 평일에는 ‘골드’(거북이)를 돌보고 주말에는 ‘마크’(셰퍼드)와 시간을 보낸다. “아기 거북이 챙기는 게 참 어렵다”고 툴툴대면서도 단 한 줌의 자연빛이라도 받게 하고 싶어 틈날 때마다 창문 앞으로 거북이를 데려다주고는 한다.
윤지유의 눈높이는 다른 이들보다는 낮다. 하지만 매일의 힘찬 스매싱으로 그를 가로막는 탁구대 위 네트를 넘어 더 멀리, 더 높은 곳을 꿈꾼다. “탁구로 제 이름을 알렸으니까 탁구는 제 명함과도 같아요”라고 말하는 윤지유. 2022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도쿄패럴림픽의 아쉬움을 털어내기 위해 그는 오늘도 열심히 네트 밖으로 하얀 공을 튕겨내고 있다.
성남/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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