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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녀’ 피아비 “내 당구는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등록 2022-06-29 08:00수정 2022-06-29 08:57

[별별스타] 캄보디아 특급 피아비
관행이나 상식 초과해 ‘개선점’ 찾아내
최근 스트로크 변화로 안정성 급상승
좋은 글, 명언 보면 즉시 적어놓고 봐
‘큐 돌리기’ 세리머니 “예쁘게 봐줘요”
스롱 피아비가 지난 26일 2022~2023 프로당구 여자부 개막전 결승에서 이미래를 상대로 경기하고 있다. PBA 제공
스롱 피아비가 지난 26일 2022~2023 프로당구 여자부 개막전 결승에서 이미래를 상대로 경기하고 있다. PBA 제공

“삼촌, 삼촌.” 인터뷰 도중 건네는 그 말엔 정감이 있다. 스스럼없고 적극적인 태도에 주변마저 환해진다. 하지만 당구 철학을 얘기할 땐 확고하다. 그는 당구를 요리하는 “칼”에 비유하기도 하고, “눈 감고 칠 때 팔은 내 마음이요, 내 머리다”라며 시적인 표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것은 배워서 하는 말이 아니다. 삶과 경험에서 얻은 것이다. 캄보디아의 결혼 이주여성으로 당구 스타가 된 스롱 피아비(32·블루원리조트). 시즌 첫 대회 우승을 거머쥔 그를 경주 블루원리조트에서 그의 부모님과 함께 만났다.

피아비는 26일 열린 2022~2023 프로당구 엘피비에이(LPBA) 개막전인 블루원리조트배 결승에서 이미래(TS샴푸)를 꺾은 뒤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두손을 합장했다.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는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떨어져 있으니까 더 소중해졌다. 부처님 말씀 들으러 멀리 절까지 갈 필요도 없다. 당장 옆에 계신 부모님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부모는 불심 깊은 ‘효녀’ 맏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흐뭇한 표정이다. 심장이 좋지 않은 아버지는 딸의 도움으로 이달 말 국내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다. 뿌듯해진 딸은 어린아이처럼 재잘(?)거린다. “삼촌, 신기해요. 마음속으로 그리면 자기도 모르게 꼭 이뤄지는 것 같아요. 부모님 모시고 그 앞에서 우승하고, 정말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어요.”

피아비의 개막전 우승은 당구 전문가들한테도 놀라움을 안겼다. 임정완 피비에이 경기위원장은 “피아비의 구질이 달라졌다. 스트로크 동작 끝부분에 비트는 것이 줄어들면서 직진성이 살아났다. 결승전 매 세트에서 하이런(5점 이상의 연속 득점)이 나오는 등 여자 당구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평했다.

스롱 피아비가 27일 경주 블루원리조트 앞에서 부모님과 함께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창금 기자
스롱 피아비가 27일 경주 블루원리조트 앞에서 부모님과 함께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창금 기자

피아비는 통산 3승을 일궜는데, 기복이 사라지면서 앞으로 우승 가능성은 더 커졌다. 그는 “3월부터 스트로크 하는 법을 바꿨다. 맞히는 것은 똑같지만 부드럽게 치려고 한다. 그 리듬을 깨달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피아비는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그는 이런 성격의 단면을 “거꾸로” “반대로”라는 말로 표현했다. 모르는 것은 배워야 하지만, 관행처럼 돼 있는 것도 의심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옛날엔 “호텔에 묵는 것도 아까워”서 친구가 운영하는 당구장에서 자며,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대회를 준비했다. 지금은 다르다. 그는 “몸과 마음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비용을 아끼기보다는 투자해서 더 큰 수익을 내는 게 현명한 일”이라고 했다. 우승하면 큐대를 풍차처럼 돌리는 세리머니는 칼싸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본인이 직접 만든 것이다.

승부와 관련해서는 사소한 것에도 엄격하다. 그는 “항상 내 행동에 조심한다. 음식도 적게 먹으면 정신이 깨끗해진다. 커피도 맛있지만 잠 못 잘까 봐 잘 마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명언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적어두고 확인하는 것은 자극을 주기 위해서다. 그는 “남에게 인정받기보다 자신한테 인정받으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소개했다.

스롱 피아비가 부모님과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김창금 기자
스롱 피아비가 부모님과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김창금 기자

스스로에게 가혹하지만 바탕에는 순수한 영혼이 있다. 그는 “당구만 잘하는 것보다 자기 인생을 잘 만들어야 한다. 살아 있는 동안 좋은 일 많이 하는 게 진짜 행복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가령 캄보디아 어린이를 위해 학교 건립을 추진하는 것은 가장 신나는 일이다. 그는 3월 ‘피아비 한-캄 사랑’이라는 자선단체를 만들었고, 후원사인 에스와이(SY)그룹도 그의 캄보디아 봉사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어디에 살든 아이들은 다 똑똑하다. 이들에게 배울 기회는 주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하고, 실망해서 운 적도 한다. 하지만 승부사 피아비는 강하다. 어려울 수록 이를 악물고 경기에 몰입하고, 상금은 알뜰살뜰 모으고, 틈이 나면 청주에서 운영하는 당구장에 나가 생계를 돕는다. 소형 아파트(월세)로 옮긴 뒤 짧은 기간 부모님을 초청해 함께 지내면서 마음의 짐도 벗었다.

피아비의 부모는 “우리 딸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그래도 조심하고 안전하게 지내야 한다”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부모님 얘기할 때 눈시울이 불거지기도 한 피아비는 “걱정하지 말라”며 둘을 꼭 껴안는다.

경주/글·사진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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