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킹 국가대표 전지예가 19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처음엔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되고 싶었다. 한창 김연아가 빙상 위를 누빌 때였다. 쉽지 않았다. 겨우 중학교 1학년이었지만, 피겨스케이팅을 전문적으로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은 나이였다. 연예인으로 눈을 돌려 아이돌 연습생이 됐지만, 그마저도 “털털하고 활발한 성격”과 맞지 않았다. 결국 아이돌도 포기했다. 그러나 춤만은 놓고 싶지 않았다. “브레이킹을 출 때는 다른 생각 없이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9일 <한겨레>와 만난 브레이킹 국가대표 전지예(23) 이야기다.
춤은 즐거웠지만, 동시에 고됐다. 특히 전문적인 브레이킹은 부상 위험이 커 부모님도 걱정이 많았다. 몸을 지탱하는 손목이 다치기도 쉬웠고, 고등학생 때는 허리디스크까지 찾아왔다. 20대에 접어들자 부모님은 “춤은 취미로 하고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러나 전지예는 꿈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때 운명처럼 브레이킹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종목으로 채택됐다. 전지예는 2021년 열린 브레이킹K 시리즈에서 입상했고, 그렇게 초대 브레이킹 국가대표가 됐다.
브레이킹 국가대표 전지예가 19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사실 춤을 시작할 때만 해도, 브레이킹 선수로서 태극마크를 달게 될 줄은 몰랐다. 부모님은 “이제 너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며 “지금보다 더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라”고 했다. 진천선수촌에 들어가 훈련을 받고, 한국을 대표해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전지예는 “춤 자체가 스포츠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올림픽 종목이 됐다고 해서 (정체성을) 댄서나 선수 어느 한쪽으로 구분해서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면서도 “국가대표가 되면서 마음가짐은 확실히 달라졌다”고 했다.
“어린 시절 피겨를 하면서 훈련을 받았던 덕분”인지 선수촌 생활에는 빠르게 적응했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다 보니 신체능력도 좋아졌다. 다이빙·기계체조 등 다른 종목 선수들과 교류하며 시야도 넓혔다. 전지예는 지난 5일(한국시각) 캐나다에서 열린 2023 국제댄스스포츠연맹(WDSF) 인터내셔널시리즈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 메달(3위)을 목에 걸었는데, “체력이 좋아진 덕분인지 평소보다 자신감이 느껴졌다”고 했다.
브레이킹 국가대표 전지예가 19일 경기도 고양시 성사동 연습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브레이킹은 오는 9월 열리는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대형 종합스포츠대회에 첫선을 보인다. 아직 항저우아시안게임 출전을 확정하진 못했지만, 2년 연속 국가대표 자리를 지킨 전지예는 항저우행 비행기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비걸’(B-GIRL) 부문에서는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정상급 활약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아시안게임은 2024 파리올림픽 전초전이 될 전망이다.
전지예는 “모든 대회에서 목표는 메달”이라고 했다. 동시에 대회를 통해 브레이킹에 대한 인식도 바꾸고 싶어했다. 그는 “브레이킹은 ‘세다’라는 인상이 강한데, ‘(브레이킹은) 재밌게 춤으로 노는 문화구나’라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또 “브레이킹은 주관적 평가가 들어가는 영역이고, 사람마다 시선이 다르다”며 “딱 봤을 때 ‘이 사람은 음악에 흡수되어 춤을 추고 있구나’ 하는 관점으로 보시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레이킹 선수로서 스스로가 꼽는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닉네임인 ‘프레시벨라’(FreshBella)가 “신선하고 아름답게 춤을 추라는 의미”라며 “저는 어떤 동작을 할 때 그 플로우(흐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앞뒤를 꾸며주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라고 했다. 힘이 넘치는 강한 동작보다는 여러 동작이 합쳐져 만들어내는 조화에 집중한다는 면에서 그는 자신이 롤모델로 꼽는 김연아와 경기 스타일이 닮은 듯도 했다.
브레이킹 국가대표 전지예가 19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연습실에서 자신의 대표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그저 “조금 멋있게 춤을 추는 사람”으로 사람들 기억에 남고 싶다는 그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브레이킹에 대해 거부감 없이 다가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브레이킹을 한다고 처음부터 어려운 동작을 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라는 127년 된 올림픽 모토에 2021년 “다 함께”가 추가됐다. 프레시벨라라는 닉네임처럼, 이미 전지예는 스포츠에 신선한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