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에 보치아 대표로 출전하는 서민규.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서민규(
18)가 보치아라는 종목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특수반 선생님이 권유했다. 취학 전 물리치료를 다닐 때도 선생님이 한 번 해보라고 했던 터라 궁금증이 생겼다. 뇌병변 장애를 갖고 태어나 학교, 치료실로만 전전했던 그의 세상은 보치아를 접하고 넓어졌다. 공을 굴리면서 다양한 장소를 가고,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지난 17일 경기도 이천 장애인선수촌에서 만난 서민규는 “보치아는 나에게 꿈, 희망을 갖다 줬다”고 했다.
보치아는 뇌성마비 및 이에 준하는 운동기능장애인을 위해 고안된 특수 경기로, 컬링과 비슷하다. 12.5mx6m의 평평하고 매끄러운 바닥의 경기장에서 각 6개의 파란색, 빨간색 공을 가지고 매 엔드마다 흰색 표적구에 가장 가까이 던진 공에 대해 1점을 부가한다. 개인전은 4엔드, 단체전은 6엔드로 진행되며 직접 손으로 공을 던질 수도 있고, 코치의 도움을 받아 마우스 스틱이나 홈통 등을 이용할 수도 있다. BC2 등급의 서민규는 파트너 없이 직접 공을 던진다.
서민규는 비교적 빨리 보치아를 시작한 편이다. 9살 때 처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 출전했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는 성인 대회에 나갔다. 대회 때마다 늘 어머니 김은희씨가 함께한다. “믿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마음이 놓이기 때문”(서민규)이다. 김씨는 “(서)민규가 아직 어려서 경기 때 감정 기복이 있는 편이다. 아이가 예민해졌다 싶을 때 두 손을 아래로 누르는 식의 자세를 취해준다”고 했다. 더불어 “경기에 이겼을 때도 잘못된 점은 바로 얘기해주는 편이다. 그래야 다음번에 같은 실수를 안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에 보치아 대표로 출전하는 서민규(왼쪽)와 그의 어머니 김은희씨.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서민규가 생각하는 보치아의 매력은 의외성이다. 서민규는 “경기가 예측이 안 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승부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컬링의 경우는 스톤(17.24~19.96㎏) 자체가 무거워서 타깃(하우스) 지역 내에서 움직이기가 어려운 면이 있지만 보치아 공(275g)의 경우는 가벼워서 흩어지기 쉽다. 그래서 작전이 중요하고 집중도에 따라서 경기 후반부에 역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 서민규는 “가끔 초인적인 능력이 느껴질 때가 있다”며 웃었다.
서민규는 전국보치아선수권대회 등에서 우승하면서 올해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처음에는 현실감이 전혀 없었는데 이천선수촌에 입소한 뒤 부담감이 생겼는지 대회 때마다 경기 초반 긴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올해 광주시장배에서도 그랬다. 예선에서 1승1패를 거두고 와일드카드로 16강전까지 올라 천신만고 끝에 결승에 진출했다. 국가대표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첫 공을 놓을 때까지 2분 정도가 소요됐다. 제한 시간 4분 내 공 6개를 던져야 하는 터라 첫 공을 늦게 놓으면 그만큼 경기 후반부로 갈수록 시간에 쫓기고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김씨는 “아마도 심리적인 부담감이 있던 것 같다”고 했다.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10월22~28일)까지는 2개월 정도가 남은 터라 첫 공을 빨리 던지는 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서민규는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갈수록 욕심이 많아진다. 그래서 초구 던질 때마다 온갖 잡생각이 다 든다”면서 “열심히 해서 잘하고 싶은데 경기에 들어가면 ‘열심히’ 보다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생긴다. 엄마가 발목 인대가 아픈데도 계속 제 옆에 계시는데 패럴림픽까지 뛰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항저우 대회 때 개인, 단체전 2관왕에 도전하고 내친김에 2024 파리패럴림픽 때도 시상대에 오르고 싶다. 먼 훗날에는 꿈나무 지도자가 되고 싶다. “자신과 같은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한다. 그의 꿈 모두 보치아를 하고 나서 생겨난 것이다.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에 보치아 대표로 출전하는 서민규의 오른손. 반지는 어머니, 동생 둘과 함께 나눠 낀 가족반지다. 김양희 기자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쉬는 날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등을 챙겨 보는 서민규. 그는 인터뷰 내내 가족을 언급했다. 그리고 가족을 “나무”라고 정의했다. “엄마는 나무의 뿌리이고, 아이들은 잎사귀인 거죠. 엄마가 버팀목이 되어주니까 나나 동생들이 성장할 수 있었어요. 저도 뿌리가 되어 나중에 동생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아직은 18살의 어린 나이. 하지만 그는 마음 주머니가 몸이나 마음보다 더 큰 ‘맏이’였다. 그의 오른손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는데 공을 계속 던지면서 생긴 것이다. 글씨를 똑바로 쓸 수 없을 만큼 손에 힘은 없지만 보치아 공만큼은 꽉 쥔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를 위해, 동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믿는다.
맨 처음 언급했듯 서민규는 보치아를 시작하고 꿈,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장애인 아이들은 치료실-학교-치료실-학교 식으로 같은 패턴 안에서 움직이는데 보치아를 시작하면서 그 패턴을 깼어요.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운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운동이 주는 힘이 있거든요. 희열감도 느끼고, 성취감도 느끼고 그러는데 그만큼 인생의 원동력도 생겨요. 그런 기분을 같이 느껴봤으면 좋겠습니다.”
서민규의 꿈이 항저우로 향해 가고 있다.
이천/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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