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핸드볼대표팀 선수들이 8월23일 일본 히로시마의 마에다 하우징 동구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아시아예선 4차전 일본과 경기에서 승리해 예선 1위를 차지한 뒤 메달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일본핸드볼협회 제공
2020년 한국 여자 핸드볼대표팀이 올림픽 본선 10회 연속 진출 신기록을 세웠을 때 올림픽닷컴은 그 업적을 기리며 이렇게 제목을 붙였다. ‘BTS, 기생충, 싸이 그리고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 한국이 배출한 문화·스포츠계 ‘월드클래스’를 열거함으로써 자부심과 소속감을 고취하는 이른바 ‘국뽕’ 놀이에 여자핸드볼을 넣어도 손색없다는 취지에서다.
단체 구기 종목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국제대회 성적이 화려한 종목은 여자핸드볼이다. 올림픽에서만 두 개의 금메달(1988년 서울, 1992년 바르셀로나)을 따냈고, 아시아에서는 늘 최정상부를 지켰다.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총 19번의 대회 중 16번 우승했고, 아시안게임에서도 1990년부터 한 번(2010년 광저우 대회 3위)을 제외하면 전부 정상에 섰다.
류은희가 8월23일 일본 히로시마의 마에다 하우징 동구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아시아예선 4차전 일본과 경기에서 슛을 던지고 있다. 일본핸드볼협회 제공
올가을 대표팀은 아시안게임 3연패의 꿈을 안고 항저우로 향한다. 주장 이미경(31·부산시설공단)이 밝힌 것처럼 “아시안게임 목표는
무조건 우승”이다. 전망은 밝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아시아선수권 6연패를 일궜고, 지난달 일본 히로시마에서 2024 파리올림픽 아시아예선 4전 전승으로
11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 대업을 달성했다.
즉, 지난 1년 새 여러 차례 꺾은 상대들과 재회다. 한국은 항저우 대회 조별예선에서 타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과 A조로 묶였고, 준결승 이후부터는 B조 1·2위가 유력한 일본, 중국을 상대할 공산이 크다. 상대전적을 보면 한국은 예선에서 붙을 카자흐스탄에 24승2패, 우즈베키스탄에 6전 전승, 타이에 4전 전승 등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한다.
이미경(왼쪽)이 8월23일 일본 히로시마의 마에다 하우징 동구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아시아예선 4차전 일본과 경기를 뛰고 있다. 일본핸드볼협회 제공
다만 변수가 있다면 일본이다. 통산 전적은 41승1무5패로 추종을 불허하지만 최근 경기 내용이 심상치 않다. 한국은 지난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 일본에 전반전 6점 차(10-16)로 끌려가다 연장 승부 끝에 34-29 역전승을 거뒀고, 지난달 올림픽예선에서도 초반 0-5 리드를 내주며 고전한 끝에 25-24로 간신히 이겼다. 다음에는 승자가 바뀐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흐름이다.
지난 두 번의 일본전에서 연달아 발군의 활약을 펼친 에이스 류은희(32·헝가리 교리 아우디)는 히로시마에서 맞대결(8월23일) 이후 “(일본의 기량이) 많이 올라온 것은 사실이다. 유럽에 진출한 선수가 많아 좋아진 것 같다”라고 평하면서도 “그렇다고 저희가 호락호락 질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류은희는 이날 경기 종료 1분 전 승부처 쐐기를 박는 결정타를 꽂았다.
강경민이 8월23일 일본 히로시마의 마에다 하우징 동구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아시아예선 4차전 일본과 경기에서 7m 던지기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핸드볼협회 제공
지난 1년은 여자 핸드볼 리빌딩의 시간이었다. 첫 외국인 사령탑 킴 라스무센(덴마크) 감독이 근무 태도 문제 등으로 대한핸드볼협회와 갈등을 빚다가 지난 2월 경질됐고, 두 달 뒤 헨리 시그넬(스웨덴) 감독이 부임했다. 급하게 손발을 맞춘 첫 국제대회에서 파리행 티켓을 쥐었다. 그는 “아직 올림픽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지만 우리에겐 1년이란 시간이 있다”라고 했다.
대표팀은 지난 7일 소집돼 진천선수촌에서 막바지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미경, 박새영(삼척시청), 신은주(인천시청) 등 베테랑과 지난 시즌 코리아리그 득점왕 강경민(광주도시공사)이 주축을 이루고 데뷔 시즌 신인상과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를 휩쓴 ‘슈퍼루키’ 김민서(삼척시청) 등이 부름을 받았다. 소속팀 시즌을 소화 중인 류은희는 항저우에서 합류할 예정이다.
김민서가 8월23일 일본 히로시마의 마에다 하우징 동구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아시아예선 4차전 일본과 경기에서 슛을 던지고 있다. 일본핸드볼협회 제공
여자 핸드볼대표팀은 오랜 시간 한국의 월드클래스로 이름을 떨치고도 여전히 19년 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4 아테네올림픽 은메달) 영화의 그늘에 가려 분투해 왔다. 항저우는 다시 쓰는 ‘최고의 순간’ 시발점이 될 수 있을까. 이미경은 지난달 귀국길 인터뷰에서 “이제는 ‘우생순’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를 저희 세대가 만들어야 할 때인 것 같다”라고 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