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곤룡포를 입은 황규연(오른쪽)이 11일 전북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아내 오선영씨, 아들 윤호군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별별 스타ㅣ 모래판 떠난 최고령 장사 황규연
옛날 임금님이 입었던 붉은색 곤룡포를 차려입은 황규연(38·현대삼호중공업)이 모래판 위에서 네 방향 관중들에게 차례로 큰절을 했다. 정든 모래판과 이별하는 순간이다. 관중석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내 오선영(34)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정든 샅바와 씨름 경기복을 헌정하는 의식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아내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떠돌이 시절엔 라면만 먹고 운동
무릎수술 두차례 받고 은퇴 고민
2009년 라이벌 이태현 꺾고 부활
“아쉽지만 씨름선수로 행복했다” 11일 전북 군산 월명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 6000여명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한 시절 모래판을 호령했던 영웅을 떠나보냈다. 은퇴식을 마친 황규연은 “아쉬운 점도 많지만 홀가분하다. 씨름선수로서 행복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어느덧 27년. 초등학교 5학년 때 몸이 허약해 시작했던 씨름이 그의 삶이 될 줄은 그땐 몰랐다. 1996년부터 17년간 프로와 실업 무대에서 천하장사 2번(2001, 2009년), 백두장사 11번 등 모두 16번의 장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최고령 천하장사, 최고령 장사 기록도 세웠다.
황규연은 씨름의 침체기와 중흥기를 함께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씨름단이 잇따라 해체되면서 떠돌이 신세도 경험했다. “돈이 없어 일주일 동안 라면만 먹고 운동한 적도 있었다.”
숙명의 라이벌 이태현(37·용인대 감독)은 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모래판의 귀공자’ 황규연과 ‘모래판의 황태자’ 이태현의 대결은 언제나 씨름 팬들을 흥분시켰다.
고교 시절 이태현의 7개 대회 연속 우승을 가로막은 장본인이 바로 황규연이다. 라이벌전의 서막이었던 셈. 그 시절 이태현은 황규연을 ‘누렁이’(이름이 황구와 발음이 비슷해서)라고, 황규연은 이태현을 ‘대가리’(머리가 크다고 해서)라고 부르며 놀렸다.
프로 초년병 시절 황규연은 이태현에게 가려 2인자였다. 2007년에는 32살 나이에 무릎수술을 두번이나 했다. 그는 “그때 가장 힘들어 은퇴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규연은 늦게 꽃이 피었다. 모래판에 복귀한 황규연은 이종격투기를 하다가 돌아온 이태현을 앞섰다. 2009년 추석장사와 천하장사 결승전에서 연거푸 이태현을 누르고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황규연은 은퇴를 앞둔 지난해 9월 추석대회 백두급에서 조카뻘 선수들을 연거푸 물리치고 최고령 장사(만 36살 9개월)에 올랐다. 27년 씨름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그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죽을 힘을 다했다. 장사에 오르고나니 이 나이에도 할 수 있구나 생각하며 스스로 대견했다”며 미소지었다.
황규연은 올해부터 소속팀 현대삼호중공업 코치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황규연의 은퇴식에 참석한 이태현은 “이제 서로 좋은 지도자로 만나자”며 새로운 경쟁을 예고했다. 황규연이 꿈꾸는 지도자상은 어떤 것일까. 그는 “선수 위에 군림하지 않고 선수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지도자가 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군산/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사진 대한씨름협회 제공
무릎수술 두차례 받고 은퇴 고민
2009년 라이벌 이태현 꺾고 부활
“아쉽지만 씨름선수로 행복했다” 11일 전북 군산 월명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 6000여명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한 시절 모래판을 호령했던 영웅을 떠나보냈다. 은퇴식을 마친 황규연은 “아쉬운 점도 많지만 홀가분하다. 씨름선수로서 행복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어느덧 27년. 초등학교 5학년 때 몸이 허약해 시작했던 씨름이 그의 삶이 될 줄은 그땐 몰랐다. 1996년부터 17년간 프로와 실업 무대에서 천하장사 2번(2001, 2009년), 백두장사 11번 등 모두 16번의 장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최고령 천하장사, 최고령 장사 기록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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