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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아시안게임 금메달 못 딴 이유가…”

등록 2013-03-31 19:33수정 2013-04-01 11:49

이상화는 “나는 스케이팅의 완성을 추구하고 싶다. 시합을 치를 때마다 보완될 부분이 계속 발견되고 그 부분을 훈련으로 채워 나간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 스피드스케이팅 센터에서 이상화가 훈련 도중 김양수 트레이너(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허승 기자
이상화는 “나는 스케이팅의 완성을 추구하고 싶다. 시합을 치를 때마다 보완될 부분이 계속 발견되고 그 부분을 훈련으로 채워 나간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 스피드스케이팅 센터에서 이상화가 훈련 도중 김양수 트레이너(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허승 기자
난 아직 미완성…한 치의 오차도 없이 스케이트 타고 싶다
[한겨레가 만난 사람] 빙속 세계선수권 2연패 이상화

이상화를 지도하는 케빈 오벌랜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코치에게 이상화가 잘하는 비결을 물었다. 영어로 답했다. 한마디로 “멘탈이 갑”이라는 거다. 멘탈(mental). ‘정신의, 정신적인, 마음의’ 등으로 번역되는 형용사. 이상화 멘탈의 비밀을 풀어본다.

3월24일 오후(현지시각)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 스케이팅 센터. 수천명의 관중은 숨죽이고 있었다. 장내 아나운서가 빙판 위에 들어선 선수를 호명했다. “상화 리 프롬 코리아!”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이상화(24·서울시청)는 여자 500m 1차 레이스에서 37초69의 기록으로 2위 올가 팟쿨리나(러시아·38초14)보다 0.45초 앞선 압도적인 1위를 달렸다. 스타트라인에서 2차 레이스를 준비하고 있던 이상화는 이 함성을 들었을까? 경기가 끝난 뒤 이상화는 “출발선에 서면 관중들의 환호성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오직 자신의 몸을 떠받치고 있는 칼날 같은 스케이트에 온 신경을 집중할 뿐이다. 총성이 울리고, 이상화는 스타팅부터 마지막 스퍼트까지 500m를 완벽하게 질주했다. 37초65. 1차보다 기록이 더 단축됐다. 이상화는 경쟁자를 크게 따돌리고 20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500m 우승을 거머쥐었다. 관중의 환호성에 끄떡하지 않는 ‘초인간적인 집중력’, 지금의 이상화를 있게 만든 비결이다. 그를 소치 현지에서 만났다.

인터뷰/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소치에서 이 선수를 만난 지 5일 만의 인터뷰네요.

“어렸을 때부터 경기 전에는 원래 안 했어요. 경기 전에 인터뷰 먼저 해서 기사가 나오면 부담감이 너무 심해지더라구요. 경기 전에는 시합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요즘 활약이 대단했어요. 이번 시즌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세계기록도 작성했고 종목별 세계선수권 2연패도 거뒀기 때문에 올 시즌은 완벽하게 치른 것 같아요. 하지만 내년은 올림픽이 열리는 시즌이라 마음을 놓기에는 이른 것 같아요. 다시 훈련 시작하면 지금까지 이룬 것들을 다 내려놔야죠.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다음 시즌에 임해야 올해보다 좋은 성적이 나오겠죠.”

국제대회 14번의 경기에서 12번 우승. 한국 여자 선수 최초의 월드컵 시리즈 종합우승, 한국 선수 최초의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2연패, 그리고 세계신기록 작성까지. 이상화가 올 시즌 거둔 성적이다.

시합전엔 너무 떨리지만
막상 레이스 시작하면 다 잊혀져
자기와의 싸움인 거죠

-올림픽 금메달, 월드컵 종합우승, 스프린트 선수권대회 우승,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딸 수 있는 상은 다 땄네요.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아직 없어요.(편집자: 이상화에게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없는 이유는 잠시 후 밝혀집니다.) 하지만 제가 트로피를 수집하려고 운동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상에 집착하게 되면 오히려 저 자신을 망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대회에 나갈 때도 ‘우승해야겠다’ 이런 생각보다는 ‘실수 없는 완벽한 스케이팅을 하자’ 이런 고민을 더 많이 해요.”

-왜 이렇게 잘하나요?

“특별한 비결은 없는데…. 운동하는 건 몇년 동안 똑같았어요. 달라진 것도 없고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는 것도 아니에요. 훈련에 있어서 나만의 비법이라거나 그런 건 전혀 없어요. 다만 훈련할 때든 시합에 나갈 때든 부담 갖지 않고 더 집중하려고 마인드 컨트롤을 많이 해요.”

-어떤 식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죠?

“그냥 평정심을 유지하는 거예요. ‘내가 꼭 저거를 해야만 해’ 이렇게 집착하기보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평소에 하던 대로 하는 거죠. 자신감 있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는 거예요.”

-스타트라인에 서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아무 생각 안 들어요. 어떤 잡생각도 끼어들 틈이 없어요. 사실 출발선에 서 있을 때는 관중들이 내지르는 환호성도 전혀 들리지 않아요. 경기에만 집중을 하게 되고 모든 신경을 거기에 모으죠. 스피드스케이팅은 1000분의 1초로 싸우는 운동이에요. 집중력 하나라도 흐트러지면 경기를 망치죠.”

사람들은 이상화가 거둔 성적과 트로피에 열광하지만, 정작 본인은 무덤덤하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한 뒤에도 입으로는 “기쁘다”고 말하지만 표정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다. 이상화는 “그냥 한 명의 선수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진부한 말의 책임을 견뎌내기 위해선 큰 시련을 이겨내야 했다.

-이미 3년 전에 올림픽 금메달을 땄어요. 하지만 정상에 오른 뒤에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은 뭐죠?

“주변에서는 ‘이미 이룬 것 많은데 왜 다시 도전하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처음부터 상에 대한 욕심이나 뭔가를 얻기 위해서 해온 게 아니에요. 원래 했던 대로 계속 열심히 할 뿐이죠. 저는 그저 한 명의 선수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자세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사실 밴쿠버올림픽 끝나고 그 1년이 정말 힘들었어요. 정상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과 긴장이 말도 못했어요. 어렸을 때는 국제대회에 나가도 아무런 걱정이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나니까 어떻게 하면 지금의 자리를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을지 불안과 걱정이 앞섰던 거예요. 불면증에 시달리고, 시합을 나가기 전에도 굉장히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죠. 올림픽 끝나고 다음해에 아시안게임이 있었는데 그때도 나 자신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겠더라구요.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이유도 그거였어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사실 그때 운동을 하면서 심리치료를 병행했어요. 불안 증세 때문에 상담을 계속 받았죠. 어느날 갑자기 좋아진 건 아니에요. 부담감, 집착, 이런 것들은 내려놓고 ‘늘 하던 대로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자세를 유지하려고 매일매일 마인드 컨트롤을 했죠. 그렇게 하루하루 단련이 된 것 같아요.”

이상화 선수
이상화 선수
세계신 수립 비결이 허벅지?
왜 그런 이야기 하는지 너무 싫어…
열심히 하는 선수로 남고 싶어

-케빈 오벌랜드 대표팀 코치가 ‘이상화는 두려움이 없다. 진정으로 레이싱을 즐긴다’고 했어요.

“사실 여전히 두려워요. 약간의 두려움도 없다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시합 전에는 너무 떨리고 걱정을 많이 하지만, 막상 레이스를 시작하면 그게 다 잊혀지고 어느새 스피드를 내면서 스케이팅을 하고 있어요. 그걸 케빈 선생님이 보고 이야기한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걸 이겨내고 운동을 즐기려고 해요. 자기와의 싸움인 거죠.”

이상화는 ‘자기와의 싸움’이란 말을 자주 한다. 그에게 ‘자기와의 싸움’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저는 스케이팅의 완성을 추구하고 싶어요. 아무리 우승을 많이 해도 아직 저한테는 부족한 부분도 많고, 다듬어져야 할 부분도 많아요. 기록이 좋든 나쁘든 시합을 치를 때마다 저에게 보완될 부분이 계속 발견되고 그 부분을 훈련으로 채워나가죠.”

-주변에서는 ‘완성형 스케이터’라고 말하는데, 어떤 부분을 더 다듬고 싶은 거죠?

“누가 그래요? 저는 완성이라고 보지 않아요.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초반 스피드를 더 키워야 해요. 500m에서는 초반 스피드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그 부분을 많이 연습했는데 마지막 월드컵 파이널에서 그게 잘 안됐어요. 2차 레이스에서도 우승을 했지만 첫 100m 기록은 저조했죠. 금메달은 목에 걸었지만 속으로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할 때 자세도 더 가다듬어야 해요. 이런 부분을 보완해서 내년 시즌에는 첫 스타트부터 마지막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스케이트를 타는 게 목표예요.”

이상화(24·서울시청)
이상화(24·서울시청)

-자신이 추구하는 완벽한 스케이팅에 얼마나 다가갔나요?

“벌써 18년 동안 스케이틀 탔는데 아직도 스케이트에 대해 모르겠어요. 스케이트는 미세한 동작으로 결과가 바뀌는데, 참 어려운 운동인 것 같아요. 잘되다가도 안되고, 안되다가도 잘되는 게 스케이트라…. 저는 아직 한참 먼 것 같아요.”

지난 1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월드컵 6차 대회 여자 500m 2차 레이스에서 이상화는 36초80을 기록해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종전 기록은 36초94. 단거리에서 0.14초를 단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상화의 종전 최고기록은 그 전날 작성한 한국신기록 36초99였다. 하루 사이에 0.19초를 단축한 것이다. 언론에서는 신기록 행진의 비결로 이상화의 허벅지를 꼽기도 했다. 2010년 올림픽 당시보다 2~3㎝가량 허벅지 둘레가 늘고 체중은 줄면서 폭발력이 배가됐다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이상화는 이를 부인했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이상화”를 치면 연관 검색어로 “허벅지”가 가장 먼저 뜨네요. 허벅지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본인은 그게 좀 불쾌한 것 같아요.

“그 이야기는 하기 싫어요. 왜 운동선수의 그거를 허벅지로 평가하나요. 그런 보도를 접하면 저도 놀라요. 왜 운동선수의 그거를…. 이야기 안 할래요.”

-스케이트 선수로서 본인의 신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키도 작고 체구도 작아요. 그래서 동양인은 안될 것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경기를 계속하면서 느끼는 게 그런 신체적 차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는 거예요. 스케이트에 저의 체중을 실어서 속도를 내면 그게 또 엄청난 기록으로 이어지거든요.”

이상화는 소치 대회를 끝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벌써 시선은 올림픽을 향해 있다.

“1년 후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요. 올림픽은 워낙 변수가 많은 시합이잖아요. 제가 밴쿠버에서 금메달을 딸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거예요. 이번에 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고…. 하지만 실력이 따라줘야 운도 따른다고 생각해요. 늘 하던 대로 해야죠. 지금까지 하던 대로만 한다면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겠어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요?

“늘 열심히 하는 선수, 그리고 꾸준히 정상을 이어가는 선수. 그냥 ‘저 선수는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라고 사람들 기억에 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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