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원이 지난해 12월31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에서 오전 훈련을 하고 있다. 평창/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소치올림픽 D-22] 크로스컨트리 이채원
아시안게임 사상 첫 금메달도 ‘153㎝ 45㎏’ 작은 체구 극복하려
단 하루도 안 쉬고 훈련 또 훈련
임신 9개월 될 때까지 숨기기도
“30위권 목표…평창서도 뛰고파” 하지만 이채원의 현재 국제스키연맹(FIS) 포인트 랭킹은 222위. 국제무대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에 처음 출전해 15㎞ 프리스타일에서 46위, 10㎞ 클래식에서는 54위에 그쳤다. 2006 토리노올림픽과 2010 밴쿠버올림픽에서도 하위권에 그쳤다. 그러나 다음달 러시아 소치에서 4번째 올림픽에 출전하는 이채원은 마치 첫 올림픽인양 의욕을 보인다. “국내에서는 1인자라고 하지만 올림픽에 나가면 항상 하위권이었어요. 그렇지만 세계무대에서 정상권의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요. 제가 이번 소치에서 30위권을 달성하면 후배들은 20위권 진입에 도전할 거고,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들도 세계 정상에 설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런 끊임없는 도전이 올림픽 정신 아니겠어요?” 이번 올림픽에 이채원과 함께 출전하는 남자 대표팀의 황준호(21) 역시 그 끈질김이 12살 선배를 빼닮았다. 강성태 감독은 “이채원은 단 하루도 운동을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끈질긴 선수다. 황준호 역시 끈기가 대단하다. 체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는데 자기 체력보다 더 먼 거리를 간다”고 평가했다. 강 감독은 “유럽 선수들과 견줘봤을 때 우리 선수들이 테크닉은 오히려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체력은 한계가 있다. 지상에서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해도 눈 위에서 쓰는 힘은 다르다. 설상훈련을 많이 하면서 길러야 되는데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채원(오른쪽), 황준호가 지난해 12월31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경기장에서 오전 훈련을 마친 뒤 활짝 웃고 있다. 평창/이정아 기자
‘설원의 마라톤’으로 불리는 크로스컨트리는 영하의 추위에서 수십㎞를 질주하는 극한의 스포츠다. 겨울종목 중 가장 먼 거리를 가장 오랫동안 달리는 만큼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수다. 그래서 평균 170㎝ 중후반대의 외국 선수들 틈에서 키 153㎝, 몸무게 45㎏ 작은 체구의 이채원이 더욱 돋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이채원은 “남들 한 걸음 갈 때 나는 두 걸음을 간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운동을 해왔다”고 했다. 주말에도 쉬는 날 없이 운동을 해왔다. ‘남보다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신 9개월이 될 때까지 감독·코치에게도 말하지 않고 운동을 계속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강성태 감독은 “갑자기 운동을 쉰다고 하기에 그제야 임신한 걸 알았다. 한달 뒤 아이를 낳더니 산후조리 3개월 하고 다시 운동을 시작하더라. 모두들 놀랐다. 정말 끈질긴 선수”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채원에게는 자신의 삶 자체가 긴 마라톤이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처음 올림픽에 출전했던 21살의 대학생은 이제 아이 엄마가 됐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멈출 줄을 모른다. 2011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뒤 “체력이 된다면 소치올림픽까지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던 이채원은 지금도 “2018 평창올림픽에도 꼭 도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2018년이면 37살이 된다. 이채원은 “나도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2018년 평창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끝났나요?” 인터뷰가 길어지자 안절부절못하던 이채원은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급한 일이 있는 듯 급히 신발을 챙겨 신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강성태 감독은 “너 또 운동하러 가지? 쉬라니까 또 운동하러 가고 있어, 이 녀석아”라고 소리쳤다. 그날은 훈련이 없는 휴식일이었다. 소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할 때, 이채원은 마냥 기적을 바라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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