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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 달리는 ‘악바리 줌마’…또 하나의 기적 꿈꾼다

등록 2014-01-15 19:40수정 2014-01-21 10:57

이채원이 지난해 12월31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에서 오전 훈련을 하고 있다. 평창/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채원이 지난해 12월31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에서 오전 훈련을 하고 있다. 평창/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소치올림픽 D-22] 크로스컨트리 이채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지난해 12월30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만난 한국 크로스컨트리 여자대표팀의 ‘작은 철인’ 이채원(33)은 한달 남은 2014 소치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지난 아시안게임을 회상했다. 그는 2011년 2월2일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아스타나-알마티 겨울아시안게임 크로스컨트리 여자 10㎞ 경기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36분34초6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한국 크로스컨트리 사상 첫 아시안게임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그때 제가 금메달을 딸 거라고 누가 예상을 했겠어요? 이번에도 소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마치 또 한번의 기적을 바라고 있는 듯했다.

이채원은 한국 크로스컨트리의 상징이다. 중학교 2학년이던 1996년 동계체전을 시작으로 2013년까지 무려 51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동계체전 역대 최다 금메달 기록 보유자다. 19살에 처음 태극마크를 단 이후 지금까지 여자대표팀의 간판으로 활약하고 있다. 아직까지 국내 여자선수 중 적수는 없다.

19살부터 14년간 대표팀 간판
아시안게임 사상 첫 금메달도

‘153㎝ 45㎏’ 작은 체구 극복하려
단 하루도 안 쉬고 훈련 또 훈련
임신 9개월 될 때까지 숨기기도
“30위권 목표…평창서도 뛰고파”

하지만 이채원의 현재 국제스키연맹(FIS) 포인트 랭킹은 222위. 국제무대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에 처음 출전해 15㎞ 프리스타일에서 46위, 10㎞ 클래식에서는 54위에 그쳤다. 2006 토리노올림픽과 2010 밴쿠버올림픽에서도 하위권에 그쳤다. 그러나 다음달 러시아 소치에서 4번째 올림픽에 출전하는 이채원은 마치 첫 올림픽인양 의욕을 보인다. “국내에서는 1인자라고 하지만 올림픽에 나가면 항상 하위권이었어요. 그렇지만 세계무대에서 정상권의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요. 제가 이번 소치에서 30위권을 달성하면 후배들은 20위권 진입에 도전할 거고,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들도 세계 정상에 설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런 끊임없는 도전이 올림픽 정신 아니겠어요?”

이번 올림픽에 이채원과 함께 출전하는 남자 대표팀의 황준호(21) 역시 그 끈질김이 12살 선배를 빼닮았다. 강성태 감독은 “이채원은 단 하루도 운동을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끈질긴 선수다. 황준호 역시 끈기가 대단하다. 체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는데 자기 체력보다 더 먼 거리를 간다”고 평가했다. 강 감독은 “유럽 선수들과 견줘봤을 때 우리 선수들이 테크닉은 오히려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체력은 한계가 있다. 지상에서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해도 눈 위에서 쓰는 힘은 다르다. 설상훈련을 많이 하면서 길러야 되는데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채원(오른쪽), 황준호가 지난해 12월31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경기장에서 오전 훈련을 마친 뒤 활짝 웃고 있다. 평창/이정아 기자
이채원(오른쪽), 황준호가 지난해 12월31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경기장에서 오전 훈련을 마친 뒤 활짝 웃고 있다. 평창/이정아 기자


‘설원의 마라톤’으로 불리는 크로스컨트리는 영하의 추위에서 수십㎞를 질주하는 극한의 스포츠다. 겨울종목 중 가장 먼 거리를 가장 오랫동안 달리는 만큼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수다. 그래서 평균 170㎝ 중후반대의 외국 선수들 틈에서 키 153㎝, 몸무게 45㎏ 작은 체구의 이채원이 더욱 돋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이채원은 “남들 한 걸음 갈 때 나는 두 걸음을 간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운동을 해왔다”고 했다. 주말에도 쉬는 날 없이 운동을 해왔다. ‘남보다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신 9개월이 될 때까지 감독·코치에게도 말하지 않고 운동을 계속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강성태 감독은 “갑자기 운동을 쉰다고 하기에 그제야 임신한 걸 알았다. 한달 뒤 아이를 낳더니 산후조리 3개월 하고 다시 운동을 시작하더라. 모두들 놀랐다. 정말 끈질긴 선수”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채원에게는 자신의 삶 자체가 긴 마라톤이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처음 올림픽에 출전했던 21살의 대학생은 이제 아이 엄마가 됐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멈출 줄을 모른다. 2011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뒤 “체력이 된다면 소치올림픽까지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던 이채원은 지금도 “2018 평창올림픽에도 꼭 도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2018년이면 37살이 된다. 이채원은 “나도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2018년 평창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끝났나요?” 인터뷰가 길어지자 안절부절못하던 이채원은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급한 일이 있는 듯 급히 신발을 챙겨 신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강성태 감독은 “너 또 운동하러 가지? 쉬라니까 또 운동하러 가고 있어, 이 녀석아”라고 소리쳤다. 그날은 훈련이 없는 휴식일이었다. 소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할 때, 이채원은 마냥 기적을 바라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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