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어요.”
표정이 밝다. 400m 트랙을 12바퀴 반 돌고 나온 김철민(22·사진·한국체대)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이따금 숨을 몰아쉬었다. 고글과 후드를 벗어재낀 김철민의 몸에는 무럭무럭 김이 난다. 싱싱한 젊음이 살아 있다.
8일 소치의 아들레르 아레나 스케이팅경기장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 이날 5000m 출전 선수 26명 가운데 24등(6분37초28)을 한 김철민은 기가 죽거나 실망한 표정이 아니었다. 김철민은 “첫번째 올림픽 출전이었고 관중들도 많아서 월드컵이나 국내대회와는 뭔가 다른 기분이었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기록에 대한 아쉬움이 없냐고 묻자, “같이 달린 일본 선수만 이기자는 생각이었고 이겨서 만족한다”고 답했다. 김철민은 이날 호주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일본 국적의 셰인 윌리엄슨과 보조를 맞춰 달리다 막판 치고 나가 5초60 차이로 크게 따돌렸다. 윌리엄슨은 6분42초88로 꼴찌.
옆에서는 일본 기자들 20여명이 북적였다. 김철민을 취재하는 한국 기자는 3명. 썰렁했다. 일본 기자에게 꼴찌 선수에 대한 열띤 취재 경쟁의 이유를 물어보았다. 일본 기자는 “메달 가능성이 없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윌리엄슨은 일본 선수 중 유일하게 남자 5000m에 출전한 선수다. 당연히 관심을 받을 만하다. 메달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김철민은 2010년 최연소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발탁된 뒤 1년 만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전향했다. 그리고 3년 만에 최고의 무대인 올림픽에 섰다. 체격 조건이 좋은 서양 선수들의 전유물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에서 이 정도 비집고 들어온 것이 놀랍다. 막판 4바퀴를 남기고 폭발적으로 내달릴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 세상엔 본선에도 오르지 못하는 선수가 수두룩하다. 메달 순위에 집착해 경기를 볼 때와는 달리 새롭게 시야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김철민은 15일 남자 1500m, 22일 팀추월 경기에 출전한다. 한국은 팀추월에서 메달권을 노린다. 하지만 못 따더라도 실망할 일은 아니다. 김철민이 흘린 땀과 열정에 박수를 보내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철민, 힘내세요.
허승 기자. 사진 뉴시스
※하라쇼는 러시아어로 ‘좋다’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