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2014]
쇼트트랙 500m 3위
16년만에 단거리서 메달 따내
스타트선 선두로 치고 나갔으나
2·3위 자리다툼에 밀려 넘어져
쇼트트랙 500m 3위
16년만에 단거리서 메달 따내
스타트선 선두로 치고 나갔으나
2·3위 자리다툼에 밀려 넘어져
강하게 펜스에 부딪쳤다. 선두로 치고 나가 금메달을 눈앞에 둔 듯했는데….
뒤따라 오던 영국의 엘리스 크리스티와 이탈리아의 아리안나 폰타나가 엉키며 박승희(22·화성시청)를 뒤에서 미는 바람에 영문도 모른 채 넘어져야 했다. 박승희는 강한 충격에도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포기할 수 없었다. 온 정성을 다해 오른 쇼트트랙 500m 결승이다. 꼴찌로 달리던 중국 리젠러우가 졸지에 맨 앞으로 나서는 것이 보였다. 박승희는 전력을 다해 다시 질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이 앞섰다. 다시 스케이트날이 꼬이며 박승희는 또다시 앞으로 넘어졌다. 불운이 겹쳤다.
그러나 박승희의 메달을 향한 집념은 헛되지 않았다. 비록 4명의 결승 진출자 가운데 꼴찌로 결승점을 들어왔지만 박승희는 16년 만에 이 종목에서 값진 동메달을 땄다.
박승희는 13일(한국시각)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베르크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승에서 54초702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승희는 시상대 3번째 높은 곳에서 꽃다발을 받고 관중들을 향해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어줬지만 이내 씁쓸함이 밀려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유리한 1레인에서 출발한 박승희는 총성과 동시에 빠른 스타트로 선두로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영국과 이탈리아 두 선수가 자리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충돌하며 넘어졌고, 박승희마저 걸려 넘어져 최하위로 처지게 됐다. 결국 박승희는 4명의 선수 중 가장 늦은 54초702 만에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경기 뒤 심판진은 크리스티에게 실격패를 선언해 박승희에게 동메달이 돌아갔다. 금메달은 45초263 만에 여유있게 결승선을 통과한 중국의 리젠러우에게 돌아갔고, 은메달은 폰타나(51초250)의 목에 걸렸다.
박승희는 18살의 나이에 대표팀 막내로 출전한 2010 밴쿠버 올림픽 1000m와 15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한국의 사상 첫 노골드 수모를 막지 못해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4년이 지나 대표팀의 ‘맏언니’가 돼 출전한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 홀로 결승에 진출하며 한국 여자대표팀에 사상 첫 500m 금메달을 안기기 위해 분투했다. 그만큼 값진 동메달이다.
애초 여자 500m는 쇼트트랙 여자대표팀의 메달 가능성이 가장 낮은 종목이었다. 여자대표팀이 500m에서 동메달을 딴 것은 1998년 나가노대회 전이경 이후 16년 만이다. 20년 넘게 쇼트트랙 최강국으로 군림해 왔지만 여자 500m 종목은 한국의 전통적인 취약 종목이었다. 지난 밴쿠버 대회까지 쇼트트랙 대표팀이 따낸 19개의 금메달 중 이름이 빠진 종목은 여자 500m가 유일했다. 나가노 때도 결승에 오른 4명의 선수 중 한 명이 실격, 한 명이 중도 포기하는 바람에 파이널 B에서 최고 성적을 거둔 전이경에게 동메달이 돌아갔다. 박승희 이전에 결승에 오른 선수는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에서의 원혜경이 유일하다.
금메달도 바라봤던 박승희는 “아쉽지만, 동메달도 저에게는 값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준결승에서 좋은 경기를 해서 금메달을 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부러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늘에서 도와 결승에서 1번 자리까지 배정받았다고 생각해 실력을 발휘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박승희는 “처음에 넘어지고 나서는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고, 마음이 급했는지 두번째 넘어졌다. 그것도 실력”이라며 담대하게 말했다.
소치/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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