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질주 심석희 ‘기다려라 1000m’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은메달
김아랑, 위염에도 결승 투혼
조해리는 팀플레이 하다 실격

심석희(17·세화여고)의 역주가 빛났다. 김아랑(19·전주제일고)의 투혼, 조해리(28·고양시청)의 헌신도 함께 빛났다.

15일(한국시각)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베르크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ｍ 경기에서 대표팀 막내 심석희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월드컵 순위 1위인 심석희는 결승전에서 중반 이후 선두로 치고 나가 금메달에 다가갔지만, 2010 밴쿠버 올림픽 우승자인 저우양(24·중국)에게 2바퀴를 남겨놓고 역전을 허용했다. 노련함이 아쉬운 대목이었다. 그래도 성적 부진으로 침체된 쇼트트랙 팀에 활력을 불어넣은 대표팀 막내의 값진 메달이었다.

월드컵 순위 2위인 김아랑은 급성위염으로 컨디션이 최악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예선 6조 경기에서 김아랑은 내내 뒤처져 있다가 마지막 바퀴에서 가까스로 2위를 기록해 준결승에 올랐다. 경기를 마친 김아랑은 펑펑 눈물을 쏟았다.

대표팀 ‘맏언니’ 조해리는 예선 3조 경기에서 여유있게 1위를 차지하고 준결승에 올랐다. 500m에서 동메달을 딴 박승희(22·화성시청)의 부상 때문에 대신 출전했지만 기량은 여전했다. 김아랑과 준결승 같은 조에 속한 조해리는 ‘수호천사’를 자처한듯했다. 준결승 레이스 초반 6명의 선수 중 맨 뒤에서 따라가던 조해리는 2바퀴를 돌고 서서히 치고 나와 선두를 확보했다. 에밀리 스콧(25·미국)과 김아랑이 그 뒤를 따르는 상황. 곧바로 조해리는 스콧을 견제하면서 안쪽 공간을 내줬고 이 틈에 김아랑은 손쉽게 선두로 올라섰다. 컨디션이 안 좋은 김아랑을 앞세우고 조해리가 밀어주는 모양새였다. 나란히 선두권을 형성한 뒤 조해리는 ‘바람막이’가 됐다. 맹렬하게 달려드는 선수들을 재치있는 몸싸움으로 밀어내며 1위로 달리는 김아랑을 ‘호위’했다. 레이스 막판 리젠러우(28·중국)가 빠른 속도를 과시하며 1위를 차지했지만 그래도 김아랑은 조해리의 철벽방어 덕에 몸싸움 없이 2위로 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3위로 들어온 조해리는 경합 과정에서 반칙을 했다는 판정을 받아 실격 처리됐다. 맏언니의 살신성인이었다.

김태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