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1985년 4월6일, 일요일이었네요. 그날 제 인생의 첫 바위를 탔습니다. 북한산 인수봉이었죠! 지금이니까 편안하게 말씀드리지만, 그날의 솔직한 기억은 끔찍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기진맥진 인수봉 정상(804m)에 올라섰지만, 짜릿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른 봄의 강풍에 사지가 오들오들 떨리더군요.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네요. 딱 1주일 전인 지난 토요일 아침, 저는 인수봉을 찾았습니다. 20년 이상 바위를 쉬다가, 올봄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가슴속 그리움을 찾아 나섰다 할까요. 대학 산악부 후배들과 4명 한팀을 짰죠. 그중 1명은 그날 첫 바위를 타는 여학생(11학번)이었습니다. 장비를 갖추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인수봉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듯한 엄청난 굉음이 울렸습니다. 설악산에서 바위 떨어지는 현장을 경험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어마어마한 낙석의 에너지는 처음 느끼는 공포였습니다.
저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다른 후배는 무거운 암벽장비와 자일(로프)을 몽땅 진 채로 내달렸습니다. 구조에 나서겠다는 본능적 행동이었습니다. 사고 지점은 저희가 있던 곳에서 100m쯤 떨어진 ‘대슬랩’의 반대쪽, 취나드B 길의 출발 지점이었습니다. 소나무 옆에 비스듬히 얹혀 있던 7~8m 길이의 너럭바위가 15m쯤 아래로 미끄러지듯 굴렀습니다. 팔이 부러지고 다리를 다친 두 사람이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좀더 위쪽으로 올라가는 순간, 그만 제 눈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더이상 처참할 수 없는 모습으로 한 여성 산악인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참담했지만, 기자의 생리가 발동했습니다. 조심조심 스마트폰의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간단한 상황설명과 함께 3장의 사진을 편집국 당직자에게 보냈습니다. 가장 생생한 현장사진이 담긴 그날 <인터넷 한겨레> 기사가 그렇게 만들어졌지요.(▷ 관련기사 : 북한산 인수봉서 낙석 사고…1명 사망·3명 부상) 구조대가 출동한 것은 사고 뒤 20분쯤 지나서였던 것 같습니다. 헬기가 도착한 것은 그보다 또 10~20분 뒤였고요. 부상자들을 먼저 헬기에 태우는 것을 보고는, “아, 그 사람은 끝났구나” 탄식했습니다. 얼마 뒤 구조용 들것에 묶인 주검이 헬기에 올려지더군요.
첫 바위타기에 나선 여학생 막내가 걱정됐습니다. 다른 후배가 “암벽등반 사고는 교통사고보다 확률이 더 낮다”고 말하더군요. 암벽등반 능력이 뛰어난 그 후배는 스님입니다. 제가 아는 그 스님은 거짓말을 못합니다. ‘흔치 않은’ 암벽등반 사고는 이른 봄에 잘 일어납니다. 해빙기 균열로 낙석 위험이 커지고, 갑작스런 추위에 대비 없이 당할 수 있거든요. 바위꾼들은 1983년 4월3일을 인수봉 비극의 날로 기억합니다. 제가 처음 바위를 탔던 날보다 훨씬 더 찬바람이 몰아쳤습니다. 20여명이 정상에 올랐을 땐 이미 온몸이 얼음과 눈으로 젖었습니다. 해가 떨어지면서 저체온증과 탈진 상태로 빠져들어, 서로 부둥켜안은 채 노래를 부르면서 비극을 맞았습니다. 그날 7명의 희생자 중 4명이 성균관대 산악부원들이었습니다. 지난해 3월초에는 인수봉 낙석 사고로 1명이 숨졌습니다.
인수봉에는 80개 정도의 암벽 길이 있습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취나드 길은 A와 B 두개가 있는데, 1963년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세계적인 등반가 이본 슈나드(Yvon Chouinard)가 개척했습니다. ‘고독의 길’ ‘임을 위한 행진곡’ ‘아가씨’ ‘우리들의 만남’ 등 감성적인 이름이 많습니다. 설악산에는 ‘한편의 시를 위한 길’ ‘별을 따는 소년들’이 있고요.
제가 가장 멋지게 생각하는 산악인은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입니다. 1970~1986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의 8000m급 14좌를 완등했지요. 셰르파의 지원 없이, 하나하나 단독 등정과 무산소 등정으로 이뤄냈습니다. 기록이 아니라 전설이지요. 녹색당원이기도 한 메스너는 저술가이고 철학가입니다. “나는 그저 산을 오르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산을 오르려는 것이다. … 나는 환상 속에서 나만의 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쩌면 궁극적인 고독의 끝까지 가서 그 고독을 넘어 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검은 고독, 흰 고독>
친절하지 못하게도, 이제야 제 소개를 하게 되네요. 농업과 협동조합 기사를 쓰다가, 지난해 봄부터 <한겨레21>과 <이코노미 인사이트> 경영을 꾸리는 출판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지면에서 뵙게 되니, 더 반갑네요.
김현대 출판국장 koala5@hani.co.kr
김현대 출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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