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효하는 김제덕. 양궁 국가대표 김제덕(오른쪽)이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혼성 단체전 결승전에서 10점을 쏜 뒤 안산과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5년 전 텔레비전 영재 발굴 프로그램에서 눈을 반짝이며 10점 과녁을 쐈던 꼬마 궁사가 생애 첫 올림픽에서 금메달의 과녁을 쐈다.
24일 2020 도쿄올림픽 양궁 혼성 부문에서 안산(20·광주여대)과 함께 한국의 첫 금메달을 획득한 김제덕(경북일고)은 올해로 만 열일곱살, 한국 양궁의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로 기록됐다. 이날 결승전이 열린 유메노시마 양궁장에 비록 관객은 없었지만 쩌렁쩌렁한 포효가 울려퍼졌다. 김제덕 선수가 활을 쏘기 전 ‘파이팅’을 외치는 소리였다.
보통 양궁 경기장에서 듣기 힘든 이 기합 소리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김제덕이 준비한 비밀 무기였다. 황효진 경북일고 코치는 “원래는 안 그러는데, (올림픽에) 가기 전에 미리 파이팅을 외치는 연습을 하더라. 올림픽 무대가 부담이 될 걸 예상하고, 선수촌에서 특별훈련할 때부터 그렇게 준비를 했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기합이 아니라, 준비된 전략이었던 셈이다.
운동선수들은 보통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 특정 행동을 함으로써, 정신적으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긴장과 부담을 해소하는 역할도 한다. 올림픽에 처음 나서는 김제덕은 올림픽 무대의 부담감을 미리 예상하고, 활을 쏘기 전 ‘파이팅’을 외치는 것을 자신만의 루틴으로 만들었다. 치밀한 준비성이다.
효과는 대단했다. 매번 활을 쏠 때마다 기합을 넣으며 긴장을 푼 김제덕은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서 마지막까지 치열한 접전을 벌이면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4세트에 10점을 잇달아 맞히면서 금메달 획득을 일궜다. 짝을 이룬 안산은 경기가 끝난 뒤 “(파이팅 소리 덕분에) 저도 긴장이 풀리고 더 편하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짝을 이뤘던 안산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활을 잡은 김제덕은 리우올림픽이 열렸던 2016년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금메달 3관왕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출연한 티브이(TV) 프로그램 <영재발굴단>에서는 중국 고등학생 선수와의 경쟁에서 주눅 들지 않고 마지막 화살을 10점 정중앙에 쏘는 담대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양궁 신동으로 일찍이 주목받았지만 자칫 이번 도쿄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할 뻔했다. 2019년 어깨 부상으로 ‘2020년 국가대표 선발전’에 탈락했다가 코로나19로 개최가 1년 연기되면서 출전 기회를 다시 얻게 된 것이다. 그는 코로나19가 준 기회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 23일 열렸던 남자 개인 예선 랭킹라운드에서 본선 참가 64명 중 깜짝 1위에 오르면서 혼성전 금메달 사냥에 나섰고 마지막 4세트에 10점을 연이어 쏘면서 여유 있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마지막에 흔들리기는커녕 더욱 강해지는 이 당돌한 십대 선수는 경기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모든 대회의) 금메달은 당연히 다 따고 싶다. 자신감이기도 하다”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타고난 자신감에 치밀한 준비성까지 갖춘 김제덕. 그는 앞으로 남아 있는 남자 개인전과 단체전을 향해 양궁 3관왕을 겨냥하고 있다.
도쿄/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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