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위협 속에 치러진 이상했던 도쿄올림픽. 우리에겐 메달보다 진한 감동을 안겨준 4위의 그들이 있었다. 여자 배구(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근대5종에서 자신을 일깨우는 정진화, 배드민턴 여자 복식 이소희-신승찬, 한국 신기록으로 올림픽 4위를 한 높이뛰기 우상혁, 체조 차세대 간판 류성현, 남자 탁구 대표팀, 25m 속사 권총 한대윤, 다이빙 3m 스프링보드 우하람, 역도 이선미. 도쿄/연합뉴스
“목표는 우승이다. 난 할 수 있다.”(육상 남자 높이뛰기 우상혁)
“첫 올림픽이니까, 실망하지 않겠다.”(역도 여자 87㎏ 이상급 이선미)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는 이유로 고개 숙이지 않았다. 대신 당당하고 의연한 태도로 3년 뒤 2024 파리올림픽에서의 승전보를 예고했다.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 대표단은 수영, 높이뛰기 등 기초 종목에서 한국·아시아 신기록을 냈고 사격, 역도, 다이빙, 탁구에서도 ‘희망’을 쏘았다. 도쿄올림픽은 선수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인한 축제였다.
‘포스트 장미란’ 이선미(21)와 한명목(30)은 이번 대회 역도 여자 87㎏ 이상급과 남자 67㎏급에 출전해 모두 4위에 올랐다. 5㎏ 차이로 동메달을 놓쳤지만, 이선미는 경기 뒤 “다음에는 긴장하지 않고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여유를 잃지 않았다. 1㎏ 차이로 시상대에 서지 못한 한명목 또한 다음 올림픽에서 설욕을 다짐하고 있다.
높이뛰기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4위에 등극한 우상혁(25)은 경기가 끝난 뒤 “나는 아직 어리고 2m35를 이미 뛰었기 때문에 이제 그 선수들이 내가 무서워서 은퇴하지 않을까 싶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3m 스프링보드 결선에서 4위를 차지해 ‘다이빙 불모지’ 한국에 새 역사를 연 우하람(23)은 “메달 딸 때까지 도전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고, 남자 마루에서 0.533 점수 차로 4위에 오른 ‘체조 샛별’ 류성현(19)은 “앞으로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탁구에서는 ‘신예’ 신유빈(17)의 폭발적인 잠재력과 성장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최연소 탁구 국가대표인 신유빈은 개인 단식에선 백전노장 니샤롄(58·룩셈부르크)을 만나 역전승을 거뒀고, 중국 출신의 독일 귀화 선수 한잉(38)을 단체전에서 만나 분전하며 부족했던 국제 대회 경험을 쌓았다. 운동선수로서의 기량이 절정을 향해 가는 20살에 파리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면 한층 더 성장한 실력을 선보일 것으로 탁구계는 보고 있다.
수영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낸 황선우는 ‘파리 기대주’ 중에서도 0순위로 꼽힌다. 18살인 황선우는 처음 출전한 올림픽 남자 자유형 100m 준결승에서 아시아 신기록(47초56)을 세웠다. 수영 선수로서는 어린 나이에 근력운동을 체계적으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얻은 성과라 전세계 이목이 쏠렸다. 이번 대회 5관왕 케일럽 드레슬(26·미국)은 “내 18살 때보다 빠르다”며 황선우를 치켜세웠다.
서채현(18) 또한 파리올림픽부터 유력한 우승 후보로 거듭날 수 있게 됐다. 이번 대회 스포츠 클라이밍(암벽타기)은 스피드, 볼더링, 리드 등 3가지 세부종목을 합산해 순위를 매겼는데, 파리에서는 스피드 종목이 따로 분리돼 경기가 진행된다. 리드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며 메달권에 진입했던 서채현은 스피드 종목에서 고전해 종합 8위에 올랐다.
한국은 이번 대회 33개 종목 중 29개 종목에 출전해 총 20개의 메달(금6, 은4, 동10)을 획득했다. 리우 대회(금9, 은3, 동9) 때보다는 성적이 하락했지만, 여러 종목에서 신기록이 쏟아졌고 선수와 시청자 모두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는 등 질적인 측면에서 한층 성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인화 선수단장은 8일 일본 도쿄 메인 프레스센터(MPC) 콘퍼런스홀에서 열린 결산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이) 은메달을 따고도 ‘금메달을 못 따 죄송하다’던 과거 선배들과 달리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 만족하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기량을 겨루는 자체를 즐겼다”며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거침없이 기량을 발휘한 10대 선수들을 바라보며 다음 올림픽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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