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속에 불안하게 출발한 2020 도쿄올림픽은 선수들의 땀과 눈물 속에 17일간의 뜨거웠던 여정을 마쳤다. 국적, 성별, 나이, 종목과 관계없이 선수들이 보여준 열정과 투지는 코로나로 지쳐 있던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사진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안산(한국·양궁), 나탈리아 파르티카(폴란드·탁구), 일레인 톰슨헤라(자메이카·육상), 황선우(한국·수영), 케일럽 드레슬(미국·수영), 니시야 모미지(일본·스케이트보딩), 김연경(한국·배구), 우상혁(한국·육상).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외신종합 연합뉴스
2020 도쿄올림픽이 8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전대미문의 관중 함성 없이 치러진 대회였다. 애초 지난해 7월로 예정됐던 대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사상 초유의 대회 연기를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회가 시작됐지만, 선수촌에서 확진자가 계속 발생하는 등 방역 문제가 드러났다. 일본 내 코로나 감염자도 급속도로 늘어났다. 대회 기간에도 중단론이 흘러나올 정도였지만, 결국엔 17일간의 여정을 모두 완수하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벼랑 끝 등불 같던 도쿄올림픽을 선수들은 굵은 땀방울로 채우며 또다른 역사를 만들어갔다. 한국 양궁 대표팀은 쏟아지는 부담감 속에서도 침착한 모습으로 여자 단체전 9연패라는 대업을 썼다. 첫 올림픽 도전에서 3관왕을 기록한 안산(20)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줬다. 연신 “파이팅”을 외치는 김제덕(17)의 모습에 많은 이들은 힘을 얻었다.
마지막 올림픽 도전에 나선 여자 배구 대표팀 김연경(33)은 연일 기적을 썼다. 대회 내내 “원팀”을 강조했던 대표팀은 4강 진출이라는 빛나는 기록을 쓰면서 하나가 되면 어떤 어려움도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높이뛰기 우상혁(25)과 수영의 우하람(18) 등은 메달 없는 결과도 자랑스러울 수 있다는 교훈을 깨우쳐줬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준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잠시 코로나19의 엄혹한 현실을 잊었다.
국경을 뛰어넘는 환희와 감동도 있었다. 케일럽 드레슬(25·미국)은 수영에서 대회 5관왕을 차지하며 마이클 펠프스에 이은 새로운 왕의 등장을 알렸다. 일레인 톰슨헤라(29·자메이카)는 2016 리우올림픽에 이어 육상 2관왕을 차지하며 명실상부 육상 최강자임을 증명했다. 오른손이 없는 탁구선수 나탈리아 파르티카(32·폴란드)의 활약과 최연소 금메달을 획득한 스케이트보딩의 니시야 모미지(14)의 열정은 스포츠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번 대회는 한국 사회가 올림픽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메달과 관계없이 선수들이 보여주는 헌신과 투지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 대한 관심도 어느 대회 때보다 뜨거웠다. 금메달 개수가 중요했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올림픽을 계기로 직접 스포츠를 즐기겠다는 사람도 늘어났다. 올림픽이 국가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닌 개인의 정체성과 우정, 연대를 확인하는 축제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스포츠의 심장이 힘차게 뛰고 있음을 확인했다. 거리두기가 최고의 선으로 자리잡은 시대. 이번 대회는 우리가 되찾아야 할 보통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또 정치적·경제적 이권을 넘어 올림픽과 스포츠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도 가감없이 드러냈다. 수많은 의문과 숙제를 남기고 바이러스 시대의 올림픽은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장애인 선수들이 참가하는 도쿄패럴림픽은 24일부터 시작된다.
도쿄/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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