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는 스피드스케이팅 강국이다. 겨울올림픽 때 스피드스케이팅에서만 총 121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2위가 노르웨이(84개)인데 격차가 꽤 난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 때도 네덜란드는 스피드스케이팅에 걸려 있던 42개 메달 중 16개를 획득했다.
그런데 네덜란드가 겨울올림픽 때 따낸 메달 중 11개(금메달 5개, 은메달 5개, 동메달 1개)는 ‘이 선수’ 혼자 거머쥐었다. 겨울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4개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린 뷔스트(36)가 그 주인공이다.
뷔스트의 경력은 아주 화려하다. 가히 ‘스피드스케이팅의 전설’로 불릴 만하다. 2006 토리노겨울올림픽 때 그는 만 19살 나이에 3000m에서 1위에 오르며 네덜란드 겨울올림픽 역사상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2010 밴쿠버겨울올림픽 때는 15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14 소치겨울올림픽에서는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를 따냈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 때도 1500m 금메달을 비롯해 단체 추월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런 활약 덕에 뷔스트는 ‘네덜란드 올해의 스포츠우먼’에 두 차례나 뽑혔고 네덜란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아이스링크장까지 있다.
뷔스트는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에서 또 다른 ‘역사’에 도전한다. 베이징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면 여름, 겨울올림픽 선수 통틀어 사상 처음으로 5개 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유일무이한 선수가 된다. 네덜란드 대표 선발전에서 개인 3위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 개인 종목에서는 다소 힘들게 느껴지지만 팀 추월에서는 충분히 금메달을 노려볼 만하다.
뷔스트는 올림픽 채널과 인터뷰에서 “나는 더 큰 레이스에서, 더 권위 있는 레이스에서 내 몸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정말 중요할 때 스케이트 타는 것을 좋아하고 결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2019년 1월 대표팀 동료이자 친구였던 파울리엔 판 듀데콤이 폐암으로 37살 나이로 사망한 뒤에는 더욱 ‘현재’가 간절해졌다. 뷔스트는 “친구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면서 “어렸을 적에는 나이가 들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당장 모든 게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에 충실하고 작은 것도 즐기려고 한다”고 밝혔다. 뷔스트는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한다. 올림픽 기간 투표가 이뤄지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회 후보로 나선 상황이다.
한편, 양성애자인 뷔스트는 2014년 소치 대회 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포옹을 했는데, 당시 러시아는 올림픽 개막을 몇 주 앞두고 반 동성애(LGBTQ)법을 통과시킨 터였다. 이들의 공개적 포옹을 두고 동성애 혐오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한 행동이라는 해석이 있기도 했다.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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