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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만든 한복…‘혐오정치’ 원조 경쟁이 떠올랐다

등록 2022-02-06 11:23수정 2022-02-07 14:12

[링링 베이징] 개막식 한복 '원조' 논란을 넘어서
한 여성 출연자가 4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한 여성 출연자가 4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링링은 ‘청량하다, 시원하다’는 뜻의 중국말로, 소리가 깨끗하게 잘 들리는 모양을 의미합니다. 동음이의어 가운데는 ‘춥다, 얼음이 두껍게 얼다’라는 뜻의 말도 있습니다.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부터 올림픽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 베이징 현장에서 생생하게 전하겠습니다.

2019년, 그때도 지금처럼 추운 겨울이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전시를 찾았다. 가장 눈길을 끈 건 경주 계림로 보검이었다. 1973년 경주에서 발굴된 이 보검은 옛 페르시아 양식이다. 당시 신라가 서역과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물이다. 그 이국적 아름다움에 넋을 놓았고, 이역만리 타국과의 교류가 얼마나 문화를 풍부하게 했을지 생각했다.

3년 전 전시를 떠올린 건,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식(4일)에 등장한 한복 때문이다. 오성홍기를 옮기는 과정에 중국 56개 소수민족 대표가 등장했는데, 이 중 한 여성 출연자가 한복으로 보이는 옷을 입었다. 해당 출연자는 조선족을 대표해 개막식에 출연한 듯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중국이 한국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 우기는 이른바 ‘문화 공정’을 벌이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평화의 축제가 시작한 지 하루도 안 돼, 인터넷은 전쟁터가 됐다.

분노는 일견 이해할 만하다. 모든 아시아 문화는 중국 영향을 받았고, 따라서 모두 중국 문화 아류라는 주장은 문화를 일방통행으로 보는 위험한 생각이다. 더욱이 중국 정부는 그간 다양한 역사·문화에 ‘묻지마’ 식으로 중국 딱지를 붙여왔다. 국수주의적이고 배타적인 태도에 불만이 쌓였고, 개막식 한복은 볏짚에 불을 지폈다. 갈수록 심해지는 반중정서가 논란을 더욱 키웠음은 물론이다.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풍부해진다. 방탄소년단(BTS)은 2018년 멜론뮤직어워드에서 한복 차림으로 탈춤·부채춤·사물놀이 등을 접목한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다. 블랙핑크는 2020년 ‘하우 유 라이크 댓’ 뮤직비디오에서 한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주목을 받았다. 우리가 ‘한복’하면 떠올리는 조선시대 후기 복식과는 확연히 다른 옷이었다. 서구를 비롯해 다양한 의복 문화와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한편 한복은 엄연히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조선족의 의복이기도 하다. 이들의 문화적 전통도 존중받는 게 마땅하다.

이처럼 문화는 계속 상호작용하며 흘러가는데, 중국 정부는 수천년전 역사까지 들먹이며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한다. 문화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일종의 문화 제국주의다. 위구르·티베트 등 소수민족 문화 말살 정책과 이른바 ‘재교육 캠프’ 등 인권 탄압은 그 극단적 부작용의 한 예다. 유튜브·구글 접속 제한부터 풀어주는 게 문화를 위해 진짜 필요한 일임을 모르는 시진핑 리더십의 한계다.

그러나 한복은 한국이 원조라며 분노하는 게 적절한 대응인지는 의문이다.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는 주장은 소수민족 소외를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을 받아온 내셔널리즘이나 우리가 마땅치 않아하는 중화주의의 또 다른 판본이다. 특히 반중정서에 편승해 거친 말을 쏟아내는 정치권의 모습은 서로 원조를 표방하는 오래된 족발집 간판들 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성난 민심을 자극하는 걸 보면, 서로 혐오 원조 경쟁이라도 벌이는 듯하다.

세계를 매혹한 한국 문화의 힘은 자유, 포용, 다양성에서 나온다. 굳이 배타적 소유권을 따져가며 소모적 논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 그저 문화가 자연스레 흘러가게 놔두자. 기자가 묵는 호텔에 있는 베이징 공안마저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김치를 나눠줄 수 있냐”고 묻게 만드는 힘이 우리에겐 있다.

베이징/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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