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헌이 9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전에서 1위로 통과한 뒤 포효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계속 이 벽을 두들겨서 돌파하겠다.”
쇼트트랙 편파 판정 논란으로 뜨겁던 8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만난 황대헌(23)은 담담해 보였다. 때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끓어오르는 듯했지만, 인터뷰 내내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강한 정신력 없이는 버텨내기 힘든 밤이었을 법도 한데, 그는 전날(7일)에도 “더 잘 먹고 잘 잤다”고 했다. 남은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황대헌이 두드린 벽은 단순히 편파 판정만이 아니었다. 황대헌은 2018 평창겨울올림픽 때도 불운에 시달렸다. 그는 당시 남자 1500m 결승에서 넘어지며 메달을 놓쳤고, 1000m 준준결승에서도 넘어지며 실격했다. 당시 남자 500m에서 ‘깜짝’ 은메달을 목에 걸긴 했지만, 자신의 주 종목(1000m) 등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 기회를 모두 놓쳤던 셈이다.
이번 베이징 대회를 앞두고도 어려움이 많았다. 중학생 때부터 겪어온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 그를 괴롭혔고, 코로나19로 시즌 하나를 사실상 통째로 날렸다. 더욱이 쇼트트랙 대표팀은 팀 내 험담 논란 등 대회 직전 각종 논란까지 겪었다.
모든 굴곡에도 불구하고, 황대헌은 그저 자신과의 싸움에만 집중했다. 그는 대회를 앞두고 <한겨레>와 인터뷰 때 “저는 남들과 비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라며 “그냥 저 자신을 이기는 목표를 세운다. 한계를 넘어서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고 했다. 판정, 빙질, 텃세…. 모두가 황대헌이 마주한 외부적인 벽에 주목할 때도, 그는 자기 자신의 한계라는 벽과 싸우고 있었던 셈이다. 그가 모든 변수에도 불구하고, 끝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던 이유다.
1000m 메달은 아쉽게 놓쳤지만, 그는 여전히 500m와 5000m 계주를 남겨두고 있다. 특히 500m는 황대헌이 평창 막내 시절 은메달을 땄을 정도로, 두각을 보이는 종목이다. “쇼트트랙 얘기가 나오면, 항상 제가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향해, 그는 다시금 스케이트 날을 바짝 세우고 있다.
베이징/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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