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화이트(오른쪽·미국)가 11일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 겐팅설상공원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하프파이프 결선 경기를 치른 뒤 이날 우승한 일본의 히라노 아유무와 포옹하고 있다. 2006년 토리노, 2010년 밴쿠버, 2018년 평창 등 올림픽에서 세 번 금메달을 딴 화이트는 이날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장자커우/AP 연합뉴스
‘트리플콕 1440’. 스노보드를 타고 뛰어올라 공중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세 번 돌고, 동시에 수평으로 한 바퀴, 도합 네 바퀴(1440도)를 도는 꿈의 기술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서 트리플콕 1440에 성공한 선수가 나타났다. 주인공은 일본의 히라노 아유무(24). 히라노는 이 기술을 세 번이나 성공시키며 “어차피 우승은 숀 화이트”라는 소리를 듣던 하프파이프의 왕좌를 차지했다.
히라노는 11일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 겐팅설원공원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하프파이프 결선 3차 시기에서 96점을 따내며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이미 2차 시기에서 완벽에 가까운 묘기를 선보였지만 스코티 제임스(28·호주)에 0.75점 뒤진 91.75점이 나왔다. 스노보더 출신 해설자 토드 리차즈가 미국 <엔비시>(NBC) 중계방송 도중 “(히라노의 2차 연기는) 내가 평생 본 주행 중에 최고였다. 여기에 감점 요소가 어딨나”라며 분개할 정도로 점수가 박했다. 3차 시기 표정없는 얼굴로 다시 출발대에 선 히라노는 기어코 무결점 연기로 최고점을 얻어냈다.
그는 일본 니가타현 무라카미시에서 서핑 보드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3살부터 스노보드를 시작했다. 2014 소치겨울올림픽, 2018 평창겨울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평창 대회 때는 2차 시기에서 95.25점을 기록하며 1위에 올라섰으나 3차 시기에서 97.25점을 낸 ‘보드 황제’ 숀 화이트(36·미국)에 2점 차로 밀려 목전에 뒀던 금메달을 놓쳤다. 히라노는 14살 때도 엑스(X) 게임에서 화이트에 밀려 은메달에 그친 바 있다. 둘의 나이 차는 12살. 띠동갑 제왕의 그림자는 짙고 길었다.
절치부심 끝에 필살 트리플콕 1440으로 히라노는 기어코 정상에 올랐다. 히라노는 “6개월 동안 하루에 60번씩 연습했다”고 말했다. 2017년에는 간이 파열되고 무릎 인대가 손상되는 부상까지 겪으며 죽음의 문턱에서 익힌 필살기였다. 이날 생애 5번째이자 마지막 올림픽을 4위로 마무리한 화이트는 경기 후 히라노를 안아주며 축하를 건넸다. 화이트는 2차 시기에서 85점을 받으며 메달권에 다가섰지만 3차 시기에서 착지에 실패하며 미끄러졌다. 넘어진 뒤 파이프를 천천히 내려오는 제왕에게 현장의 모든 이가 박수를 보냈다. 카메라 앞에서 화이트는 미소를 머금은 채 눈물을 글썽였다.
화이트는 “이 젊은 선수들이 나의 유산이다. 매 걸음마다 나를 쫓아왔던 그들이 마침내 나를 넘어섰고, 이야말로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원하던 일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에서만 3개의 금메달을 따낸 전설이 떠난 자리에 올림픽 3번의 도전 만에 ‘은’을 ‘금’으로 바꿔낸 새 시대의 기수가 섰다. 아유무(歩夢)라는 이름은 ‘꿈을 걷는다’는 뜻이다. 그는 꿈의 기술로 꿈을 이뤘다.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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